“우리 모두가 사회 현상의 주체”
서수정 회원 l kristallsuh@gmail.com
쟁점들은 밀려오고 사라지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나는 그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기준과 관점의 성(城)을 만들어왔다. 성벽을 근거로써 다지고 있을 때면, 새로운 쟁점이 빠르게 밀려들어온다. 견고할 줄 알았던 성은 금세 허물어져 새로운 논리를 내게 요구한다. 바람이 해안에 이르러 파도를 만들어내고, 파도는 연안에서 부서지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나의 작은 모래성은 쉴 새 없이 변해왔다.
그렇게 사회과학이라는 것을 공부한 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지금 나는 모래알만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빈약한 논리로 섣불리 관(觀)을 세워 아는 척 기웃대는 것이 부끄러운 일임을 알게 되면서 가치 하나, 논리 하나를 내 것으로 만들기 조심스럽다. 신중함을 핑계로 느릿느릿 거닐다 모래 한 줌 쥐어볼 참이면 어느새 새로운 바람이 불곤 한다. 튼튼한 성을 완성해나갈 줄 알았건만 아직 무엇을 기둥으로 삼을지 갈팡질팡하는 중이다.
사회현상은 참으로 복잡다단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분석하는 프레임과 주장은 대개 완전하지 못하며 상충하는 것들이다. 그 중 억센 주장들을 볼 때면 내 관(觀)을 관(棺) 속으로 숨기고 싶은 충동에 이끌리기도 한다. 서로의 다양하고 소중한 생각들을 공동체적 삶에 잘 녹여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맞는다면, 자신의 프레임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타인의 생각 역시 공동체가 안고 있는 자산임을 잊어선 안 된다. 모두가 자기 이익과 정체성에 걸맞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인데, 여기에 선악의 잣대를 대뜸 내밀거나 공론의 장이 싸움판으로 돌변하는 모습을 목격할 때마다 나는 입과 눈을 닫아버리고 싶었다.
어물쩍대며 중립을 취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우리 사회가 지금껏 치러온 갈등 비용이 아까울 뿐이다. 사회 문제는 저절로 해소되는 것이 아니며 갈등은 필연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 해결의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문제가 되어버리니, 본질은 흐려지기 일쑤다. 우리 사회의 공공철학이 무엇인지 혹은 어떻게 세워나갈 것인지 차분히 탐구하고 공동체의 결속력을 지키려는 노력들은 이내 묻히고 만다. 공론의 장은 특정 연령층과 소수의 가치관들의 이권 다툼으로 고착되어 그 외 다수의 주체들은 오히려 소외되는 것이다. 나같이 갈팡질팡하는 20대들은 말할 것도 없다.
진흙탕 싸움 속에 모래성 하나 들이밀어 봤자 당장 가시적인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아직도 나 하나가 뭘 할 수 있을지에 의심이 가고 서글프다. 하지만 사회현상에 대한 집단적 무기력만큼이나 공동체를 썩게 만드는 것은 없다. 피로해져 관조하고 있는 나부터가 그 병폐의 일부였다. 정치적 상투구일지는 모르겠으나 다시 되새김하고 싶은 것은 나를 포함한 우리가 바로 공동체를 이루고 만들어나간다는 것이다. 타자의 것이 아닌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 그 구성원이 주체가 돼 실익과 공익의 방향을 점검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만약 어느 프레임이 우리 사회의 가치에 어긋난다면 그것을 다시 구성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할 일이다.
여기서 언론의 역할과 임무는 중대하다. 일상에 침투한 비정상적 프레임을 캐내어 꼬집고 공론화시켜야 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 언론의 공공성 결핍은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고전적이며 고질적인 주제이다. 어디서부터 오류가 있었던 건지 골치 아픈 문제였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비판할 수 있는 창구조차 알기 힘들었다. 그 와중 민언련을 만났고, 나 같이 평범한 사람도 신문과 방송을 비판하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매력적인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는 사회과학도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해왔다. 이제는 민언련을 통해 사회현상의 능동적 주체로 거듭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