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시론과 영리병원 도입
조건만 있었다
[가작] ‘KBS 시사기획쌈-의료산업화 영리병원을 진단한다’ l
이병원
이명박정부가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면서 내세운 경제정책들은 2년 동안 나라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서민들의 삶을 점차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제주도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도입할 예정인 영리병원 역시 의료선진화라는 미명아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연장선에 불과한 우리정부의 그늘진 자화상이다.
지난 7월 21일 방송된 KBS1 <시사기획 쌈>(이하 '쌈')은
이러한 영리병원의 득과 실을 다루며 앞으로 우리나라가 갖추어야 할 의료제도에 대해 다루었다.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한다면 '영리병원은 의료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으나 대책 없는 영리병원 도입은 서민들의 의료보장을 장담할 수 없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영리병원에 대한 논란만 본다면 지극히
보편타당하다.
하지만 대운하사업이 4대강 사업으로 이름만 바뀌었듯이 의료민영화 역시 영리병원으로
그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제주도의 영리병원은 이러한 의료민영화의 초석이 된다. 따라서 단순히 영리병원에 대한 이해득실을 따져서는 MB식
의료체계에 대한 심도 있는 접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쌈>에서 의료민영화라는 용어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도
의료민영화가 가진 어감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적인 정서를 반영한 듯하다.
태국은 OK 제주도는 NO?
이번 <쌈> 방송에서는 태국의 사례를 성공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총
방송분량 48분 중 6분 이상을 태국 영리병원의 성공사례를 다루는 데 사용했다. 물론 이번 방송이 태국 소수의 부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의료서비스 현실을 외면한 것은 아니지만 태국 보건부 고문의 인터뷰를 통해 <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태국 보건부 고문은 <쌈>과의 인터뷰에서 "영리병원이 있다는 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강력한 규제 장치와 건강보험체계가 필요하다"며 "의료비를 효과적으로 투명하게 잘 지불하려면 건강보험이 탄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인터뷰를 끝으로 태국의 사례는 끝을 맺는다. '영리병원의 도입에 규제와 건강보험체계가 선결조건이다'라는 결론이 바로
<쌈>이 태국의 사례에서 찾은 영리병원의 해법이었다. 이는 '영리병원을 도입하더라도 전(全) 병원의 건강보험적용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정부의 입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를 통해 의료불평등은 없을 것이라는 게 정부측 주장이다.
하지만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많은 병원들이 영리를 추구하기 위해 영리병원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자 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자명하다. 이에 따라 영리병원의 비싼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민간의료보험이 활성화 될 것이고 이는
국가의 의료보험 체계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영리병원 도입을 반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입장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쌈>에서는 이에 대해서조차 다루지 않았다. 뒷맛이 씁쓸한 결론이다.
<쌈>은 제주도 영리병원 도입논란은 사례로 다루지 않았다. 방송 당시
영리병원 논란의 초점은 제주도에 쏠려 있었다.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인 제주도 영리병원 도입은 이미 여야의 정치쟁점화가 되어 그 논란이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방송 당일인 7월 21일은 제주특별자치도의회가 투자개방형병원(영리법인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한
'제주도 4단계 제도 개선 5대 핵심과제 동의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해 가결시킨 날이기도 하다.
이번 결정은 특히 영리병원도입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해 온 김태환 제주지사의
주민소환을 촉발하는데 결정적이었다. 국내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영리병원 도입 논란이 지방자치제의 지향점인 풀뿌리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수 있는
주민소환제로까지 확대됐다는 점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쌈>에서 제주도의 사례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비영리병원의 수익구조 모순취재는 영리병원
도입근거
반면 영리병원도입 논란과 크게 관계없는 내용도 <쌈>의 전파를 통해
시청자들의 안방에 찾아왔다. 현재 우리나라의 비영리병원들이 사실상 영리를 추구하고 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의료가 전문적인 영역이다 보니
병원들이 과잉진료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환자들은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덫붙여 <쌈>은 비영리 병원이 수익을 내야만 하는 병원의 구조적
모순들을 파헤치고 있다. 현재 비영리병원의 수익구조의 모순은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이라는 명목의 금액을 계속해서 축척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이란 의료기관이 법령 또는 정관에 규정된 설립목적을 직접 수행하는 사업으로 수익사업 외의 사업을 말한다. 많은 사립대 비영리
병원들이 이 같은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통해 사실상 수익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자 회계장부를 만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병원의 수익구조의 개선이 영리병원도입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핵심은 병원들이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의 과다한 책정을 통해 적자회계를 만들고 이로 인해 건강보험관리공단의 보험수가가 결정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건강보험관리공단의 감시와 규제를 통해 가능하다. 방송은 이 같은 감시와 규제를 영리병원의 도입
조건이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영리병원이 도입됨과 동시에 현재 편법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비영리병원의 적자회계장부를 규제할 근거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또한 감시와 규제가 영리병원 도입의 선결조건이 아니라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현재의
감시와 규제조차도 무너질 수 있음을 간과한 취재이다. 이 역시 정부가 영리병원의 수익구조를 감시하겠다는 입바른 정책을 내놓는다면 충분히 영리병원
도입의 근거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영리병원의 도입논란의 핵심인 의료 양극화와도 빗겨간다. 이 같은 내용을 이번 방송의 마무리로 편집한
것에 유감이다.
양시론과 영리병원 도입조건만 있었다
<쌈>의 이번 방송은 전체적인 내용에서 지나치게 기계론적 중립을
강조했다. 시각에 따라 균형으로 보일 수 있으나 유보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시청자로 하여금 혼란을 가중시키지 않았나 생각한다. 어떤 주장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 양쪽의 입장을 전달하는 데 그쳤다. 일단 이러한 양시론적 판단은 시사프로그램이 가진 궁극의 역할이 '현실 바로잡기'라는 점을
볼 때 한참이나 가벼워 보인다.
한 예로 이번 방송에서 제기한 영리병원 도입에 따라 우려되는 점은 기획재정부의
의료보험 당연지정제 유지라는 입장으로 반론이 쉽게 가능하다. 시사프로그램이라면 기획재정부의 당연지정제 유지가 그들의 말마따나 과연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을 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쌈>이 시사프로그램이라는 간판을 달고 나왔다면 그 역할은
이해당사자들의 '빤쓰'마저 뒤집어 보여줄 정도의 과감성과 독창성이 필수적이다. 마치 이러이러한 문제점들만 보완하면 영리병원을 도입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정부 입장식의 조건부 시사프로그램이라면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기에 충분하다. 더 나아가 그들이 영리병원도입에 따른 문제점들을 해결하려는
정책들이 실제로 어느 정도의 실효성이 있는가를 논리적 객관적으로 취재해야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