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투나잇이여
돌아오라
[가작] ‘KBS 시사360-9월30일 방영분’ l 양성민
월요일 밤 12시 15분, KBS <시사투나잇> 자리를 꿰찬
<시사360>을 봅니다. 평상시에는 TV를 잘 켜놓지 않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인기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고 잠시
뒹굴다 보면, 한 번쯤 보게 됩니다. 월요일 12시, 휴일을 마치고 새로운 한주의 고된 노동이 떠오르고 해야 할 업무들이 머리를 맴돌면서 쉽게
잠들기가 어려운 밤입니다.
지난 9월 30일 <시사360>은 4개 꼭지를 방송했습니다. 모두의
공통주제는 '추석'이었습니다. 바야흐로 민족최대의 명절, 누구나 한 번쯤은 소외된 이웃과 고향을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여기에 맞추어 이날도 쌀값
폭등으로 고민하는 농민들의 목소리와 아직 남아있는 전쟁의 상처로 시름하는 소외된 사람들의 모습을 전해주었습니다. 시사 고발 프로그램으로써
평상시에 듣고 보기 어려웠던 세상의 작은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고마운 방송 프로그램입니다.
하지만, 왠지 알 수 없는 허탈감에 빠집니다. '왜지?'하고 자문해 봅니다.
<시사투나잇> 시절에는 있었지만 <시사360>에선 없어진 무언가가 있습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오늘도 싸운다?
추석과 관련한 첫 꼭지 내용을 압축하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오늘도 싸운다',
'추석인데 왜 싸우냐' 쯤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국정감사, 4대강사업, 정운찬 총리 문제에 대한 한나라당의 입장 한 번 보여주고,
민주당의 답변 한 번 보여줍니다. 주요 정치인들의 활동을 보여주고는 여느 보도기사와 다를 바 없는 한나라당 민주당의 대결구도를 다시 강조합니다.
대개의 언론들이 가장 선호하는 정치 보도의 흐름입니다. 청코너 김홍만과 홍코너 밥샙이 오늘도 만나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오늘은 누가 어떤
테크닉으로 상대를 코너에 몰았다. 뭐 이런 식입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양당 대결구도의 신물 나는 반복입니다. 이것을 굳이 밤 12시
15분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재방송한다는 것은(새로운 화면 구성일 뿐, 이건 분명 재탕에 삼탕에 중탕입니다) 불필요한 일입니다.
차라리 추석을 앞두고 정치권의 주요 이슈들에 대한 소수의 비판 시각이라든지,
추석을 앞두고 임금을 체불당한 노동자, 이주노동자의 추석 등에 대한 여당 야당의 대책 등이 우선 되었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세력을
충분히 가진 두 개 정당의 이미 충분히 보도된 활동만을 보여 준다는 것은, KBS가 공영방송으로써 소수의 목소리까지 들려주는 자기 목적을 잃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그런 흐름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진행자의 마지막 멘트는 더욱 씁쓸함을 던져다
줍니다.
진행자는 이 꼭지의 마무리 말로 "여야는 이번 추석연휴기간동안 민심잡기에 총력을
벌일 것이라 보입니다. 여야가 정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여야가 함께 국민의 대표로써 행정부의 한해 살림을 제대로 감시하는 것, 이것이 국민이
바라는 것일 겁니다"라고 한마디 던집니다.
뭐랄까요. 짜증이랄까요, 그런 것이 훅 솟구칩니다. 숱한 정치세력들의 이야기를
모두 잘라내어 버리고, 이를 김홍만과 밥샙의 억지 대결구도로 만들어 놓고는,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는 옹졸한 놈들'이라고 한마디 하면 그것이
언론의 중립적 태도이며 공영방송의 편향되지 않은 미덕이 되는 것일까요? 추석을 앞두고 온 국민을 정치적 무관심에 적극적으로 빠지게 만드는
일일까요?
나는 후자라고 봅니다. 시사 프로그램이 시사 문제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 세상
문제에 대해 국민의 관심을 끌어내고 국민이 더욱 적극적으로 정치와 세상 문제에 토론하고 참여하도록 만들지 않고 도리어 국민들을 세상과 정치문제에
외면토록 유도하는 셈이라 봅니다.
이렇다 하면, 밤 12시 15분, 우리는 무척이나 '해로운' 정치방송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차라리 채널을 돌려 김홍만 밥샙의 격투기를 보는 것이 우리 세상에 유익한 결과일지도 모른다면, 너무 큰 비약일까요.
<시사투나잇>에서는 최소한의 관점이 있고, 방송의 지향이 있었다고
봅니다. <시사360>과 <시사투나잇>의 차이는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편으로 <시사360>은 그러한
관점 자체를 없앴기 때문에 더욱 공평한 방송이다 평가할 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공평한 관점이 아닙니다. 대중에게 정치적 무관심을
형성할 때 득세하는 세력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한국의 과거 군사정권은 늘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을 요구했고, 독일의 나치가 득세할 때도
그러했습니다.
부동산의 문제와 부동산 시장의 문제, 둘 사이
거리는
세 번째 꼭지를 보면, <시사투나잇>과 <시사 360>의
거리가 확연히 느껴지게 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사이의 거리는 '부동산 문제'와 '부동산 시장의 문제' 사이의 거리라 보인다는 것입니다.
추석, 고향에 대한 그리움, 보금자리 없는 사람의 설움 등등이 떠오릅니다. 당연히
시사프로그램에서는 이들의 아픈 현실과 이를 개선하기 위한 각종 노력들 그리고 그 정책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논쟁들을 쉽게 풀어 낼 것이라…
예상했는데, 어라라? 이건 재테크 방송도 아니고 알 수 없는 흐름으로 나갑니다.
국민의 절반 가까이 집이 없고, 해마다 집 문제로 자살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택보급율이 이미 10여년 전에 100%를 넘었으나, 주택 보유율은 60%를 넘지 않는 현실이 부동산의 심각한 문제이리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시사360>은 부동산 시장 전문가를 인터뷰하며, 부동산 경기 문제를 논점으로 놓고 있습니다.
1% 부자들이 전국토의 60%를 차지하고, 전 예금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1%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중동이 전체 언론시장의 70%를 장악한 현실이다 보니, 집 없는 다수의 서민들의 문제는 '집을 팔아야 하는
1%'의 부동산 경기 문제로 환원되고 있습니다. 부동산 경기가 좋아야 집도 많이 만들고 그러면 집값이 떨어진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대한민국 국민은 공급이 증가하면 가격이 떨어진다는 X자 곡선을 학교에서 배웠으니, 옳거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부동산 시장이
활성화 되어야 서민이 먹고살기 좋아진다고 믿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몇몇을 빼곤 사실 이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제 다 알고 있습니다. 집.
많이 가진 사람은 더욱 많이 가지고, 없는 사람은 여전히 없습니다. 70%를 장악한 1%의 언론은 절대로 이러한 사실을 큰 소리로 알리지
않습니다. 누가 알려야 할까. 공영방송이 해야 할 몫일 겁니다.
다수 국민의 이해와 다수 국민이 바라는 이야기들을 공영방송이 쏟아놓지 못하고,
부동산 시장의 부침에 대한 이야기와 새 아파트로 이사할 때 필요한 정보(거래 낙찰가를 살펴라, 매물현황 매도속도를 확인하라)를 제공하는 것은
시사프로그램으로써 스스로의 역할을 포기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사투나잇> 시절에는 조금 나았던 것 같은데….
월요일 밤 12시 15분, <시사투나잇>의 자리를 대체한
<시사360>을 봅니다. 평상시에는 TV를 잘 켜놓지 않는 시간입니다. 휴일을 마치고 새로운 한주의 고된 노동이 떠오르고 해야 할
업무들이 머리를 맴돌면서 쉽게 잠들기가 어려운 탓입니다.
그런데, 더 잠들기가 어려워져버립니다. <무한도전> <패밀리가
떴다> <1박2일> 등 케이블 방송에 나오는 숱한 프로그램이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도움이 될 터인데도, 그래도
<시사360>을 왜 봤나 싶습니다.
그래도 또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계속된 믿음으로 살아
갈 것입니다. 이건 왜일까요. 이건 설명이 잘 안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