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노회찬 의원 ‘통비법’ 위반 대법원 확정 판결에 대한 논평(20130216)‘통비법’ 개정으로 권력감시 기능 되살려야
그러나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황교안 법무부 장관 지명자는 뇌물을 준 혐의가 짙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수사 결과 발표 닷새 전 한 번의 서면조사를 받은 걸 전부로 해서 불기소 처분했고, ‘떡검’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수사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익적 요구에 따라 진실을 알렸던 이들을 기소해 유죄를 선고 받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는 삼성이라는 경제 권력에 굴복한 검찰은 물론이거니와 앞뒤가 맞지 않는 죄목을 들씌워 유죄를 확정한 대법원의 처사를 어떠한 이유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대법원은 노 의원의 보도자료 배포행위는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에 해당한다면서도 이를 누리집에 올린 행위에 대해 통신비밀보호법(이하 통비법)을 적용해 유죄를 확정했다. 보도자료를 배포하든 누리집에 공개하든 국민들에게 알려지기는 마찬가지인데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무리하게 법을 적용하여 의원직마저 박탈시킨 것이다.
현행 ‘통비법’은 본래 정보·수사기관 등의 불법도청을 막기 위해 만든 것으로, 이 법이 인정하는 정당행위 기준은 ‘통신 내용을 공개하지 않으면 공중의 생명·재산 등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하는 등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일 때’ 등으로 매우 까다롭게 되어 있다. 이 법은 통신비밀 보호라는 법익을 과도하게 강조해 이를 공개하려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위헌소지의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고, 특히 정치인의 경우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피선거권을 상실하게 되어 있어 이 법은 정치인의 정상적인 정치활동마저 위축시키고 탄압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어, 대폭 개정을 통해 위법성 조각 사유와 형량 등을 대폭 다듬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법률 자체의 문제점보다 더 심각한 것이 있다. 현행 ‘통비법’의 입법 취지와 내용 자체가 국가기관의 불법 도청을 막기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법이 국가기관이 아닌 언론인과 정치인에게 주로 사용돼 왔다는 점이다. 검찰과 사법부는 ‘통비법’을 엉뚱한 방향으로 과도하게 적용해, 공익적 제보자들과 이들의 제보를 이용해 보도를 한 언론인들을 처벌하는 데 악용해 왔다. 그 결과는 언론 고유의 책무인 ‘환경감시 기능’의 붕괴, 국민주권의 토대인 ‘국민의 알 권리’의 훼손, 국가와 대기업 등 사회적 강자의 성역화라는 역사적 퇴행이다.
이번 사건에서 보듯 국내 최대 재벌의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과 ‘떡값’을 이용 검찰이라는 사정기관을 제 사람 부리듯 하려는 행태에 대한 정당한 문제 제기와 같은 요구들은 어느샌가 사라질게 될 것이 뻔하다. 국가가 불법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은 엄벌하고, 불법을 저지른 자들은 비호하는 이율배반적인 법 집행을 하고 있는 참담한 현실이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1심과 2심에서 범한 잘못을 바로 잡을 기회 스스로 저버리고, 공적 영역에서조차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가 아닌 권력집단의 손을 들어 주는 중대한 과오를 범했다.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의 경우 지난 해 4.11 총선에서 공시지가 990만 원 상당의 토지 지분을 재산신고에서 누락했다는 이유로 기소돼 지난해 12월 1심에서 당선무효형인 벌금 250만 원을 선고 받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반면 민주통합당 전정희 의원은 1억8000만 원 상당의 재산신고를 누락하고 수백만 원의 재산세를 납부하지 않았음에도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상황이 이러니 재판부가 다분히 정치적인 판결을 한 것이라는 의심이 가지 않겠는가.
사법부는 공정해야 한다. 사법부가 노회찬 의원 의원직 박탈 판결을 시작으로 ‘진보정당 죽이기’라는 역사적 퇴행의 범죄에 부역하는 최악의 사태에 대한 우려가 단지 기우에 그치게 되길 바란다. 만일 그러한 우려가 현실화된다면 그것은 우리나라에서 싹틔운 지 얼마 되지 않은 민주주의가 다 자라지 못하고 종말을 맞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사법부는 그것은 우리 국민이 용납할 수 없는 심각한 역사적 퇴행이자 범죄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