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정책 미래부 몰아주기, ‘언론장악 세습’선언인가
지금 국회에서 행정안전위원회가 주최하는 정부조직개편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정부조직개편 논의에서 통상기능과 산학협력업무 관할변경, 원자력안전위원회 흡수‧폐지, 중소기업부 신설, 우정사업본부 승격 등 여야 간 이견이 있는 부분 중에서도 최대 쟁점은 역시 방송통신 정책의 미래창조과학부로의 이관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새누리당은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 진흥과 방통융합 업무를 독임제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로 넘기고, 방통위는 방송통신 분야의 제한된 규제기능만을 담당하는 ‘합의제행정위원회’로 위상을 격하시켰다. 오늘 공청회에서도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 업무를 포괄하며 ‘공룡부처’로 등장한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요한 논의 대상이 될 것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언론3단체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내놓은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국민이 요구하는 언론장악체제의 청산을 거부한 것이자 거대자본에 의한 방송통신의 공공성 파괴 위험성을 방관하는 잘못된 조직개편’임을 밝히며 이에 반대한다.
우리는 박 당선인의 ICT 정부조직 개편의도가 방통융합환경 하에서 방송과 통신 분야의 구분이나 진흥과 규제 기능의 분리가 어려운 점을 악용하여 방송통신 관련 대다수 정책을 ‘산업논리’ 동원과 ‘진흥업무’로의 분류를 통해 미래창조과학부로 몰아줌으로써 방송과 정보소통서비스를 더욱 강력하게 통제하려는 기도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숱한 실정(失政)과 부패에도 불구하고 방송장악을 통해 권력을 비호해왔고, 박 당선인 역시 대선과정에서 그 수혜를 입었다는 점을 부인키는 어렵다. 여기에 박근혜 당선인이 정부부처 중의 중심부처이자 엘리트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에 방송통신 정책을 담당하게 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체제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권력의 통제에 자본의 개입까지 허용함으로써 더욱 치밀하게 언론의 관제화(管制化)를 관철해 가겠다는 의도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또한 사회문화적 목표가 다르고 이해관계 역시 복잡다단한 방송과 방통융합 업무까지 독임제 부처가 관장하도록 하는 것은 조직 생리상, 방송과 방통융합 정책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공공성’과 ‘형평성’을 근본적으로 배제하게 될 것이다. 권한과 책임이 장관 1인에게 쏠려 있는 상황에서 국민의 민의가 반영될 수 있는 여지는 권력자와 자본, 그에 결탁한 관료들의 벽에 막혀 협소해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박 당선인이 ICT 정부조직 개편의 이유로 내세운 방통위의 실패에 대한 진단 역시 근거가 부실하고 사뭇 자의적이다. 언론인들과 학계는 방통위의 실패가 ‘이명박 정권의 정책의지 부족,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의 부패와 무능력, 그로 인한 잘못된 정책의 실행’에 기인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정권의 실세와 그에 부역한 구 정통부 출신 관료들이 방통위를 독임제 방식으로 운영하면서 합의제 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했고, 방송통신을 진흥하고 공공성과 공공복지를 강화해야 할 본연의 목적 역시 매몰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박 당선인은 현행 방통위의 파행을 불러온 근본적인 원인을 무시한 채 ‘산업논리’를 빌미로 더 악화된 방송통신 총괄부처를 만들려 하고 있다. 이는 박 당선인이 언론공작과 인사개입, 정권홍보와 보도통제 등을 통해 언론을 좌지우지했던 구 공보처와 다름없는 ‘조직’을 부활시키고 ‘자본’에 의한 무한경쟁까지 부추김으로써 더욱 견고하게 언론을 접수하려는 저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박 당선인이 주장하는 국민대통합의 실체가 장악된 언론에 의해 일방적으로 동원된 ‘한 목소리’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우리 언론3단체는 박 당선인이 지금까지 보여준 언론관은 구시대적인 오판(誤判)에서 발로한 것이자 국민의 요구를 외면하는 불통(不通)에 다름 아니었음을 지적하며, ICT 조직개편은 방통위의 합의제 기능이 올바로 작동되도록 재정립되고 기관의 독립성이 더욱 강화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즉 방송의 공공성과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고, 정치적‧경제적 이해와 사회적 갈등이 민감하게 대치하는 업무를 공정하게 조정하고 해결하며, 국민의 커뮤니케이션 주권과 이용자 권익 보호에 더욱 충실할 수 있도록 방통위를 개편하여야 하며, 순수한 의미의 통신진흥 업무만이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되어야 한다.
우리는 어제(4일) 방송의 공공성을 보장하고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기 위해 방통위의 합의제 기능을 명확히 확립하고 그 독립성을 강화한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청원했다. 언론인, 학계, 시민사회가 지난 2년간 논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개정안이다. 현재 진행 중인 ICT 정부조직개편 협상에 있어서 중요한 판단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언론3단체는 입법청원을 시작으로 ICT 정부조직개편에 대한 정치권의 논의를 국민들과 함께 주시하고 있다. 박 당선인은 공공성과 사유화, 정치적‧경제적 이해와 사회적 가치가 대립하는 방송통신 영역에서 선진국들이 합의제 위원회를 통해 사안을 협의하고 정책을 결정하도록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또한 독임제 부처가 가져올 독선과 불통이 국민들의 삶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를 다시 성찰해 보기 바란다. 아울러 여야는 언론장악 청산과 표현의 자유 보장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그 열망을 담은 ICT 조직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여야가 국민을 위한 ICT 정부조직 개편에 최선을 다해 줄 것을 촉구하며, 정치권이 끝내 이를 외면할 경우 사회의 양심세력들과 연대하여 그 책임을 끝까지 묻고 심판할 것이다.
2013년 2월 5일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국언론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