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모니터_
국정원의 내란죄 수사 관련 방송3사 메인뉴스 모니터 보고서(2013.8.29)○모니터대상 : 방송3사 저녁종합뉴스
언론보도에 따르면, 국정원은 지난 5월 이 의원이 속한 RO(Revolution Organization)이 서울시내 위치한 교육관에서 이 의원이 ‘남북 간 전쟁이 발발할 경우 총기를 확보해 통신·유류시설 등 국가기간시설을 파괴하는 방안’을 모의했다고 파악하고 있으며, 해당 녹취록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수사를 주도하고 있는 국정원은 수사 내용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 발표를 하지 않고 있으며, 검찰 역시 영장발부만 했을 뿐 혐의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내란죄 수사’ 왜 하필 지금인가
국정원은 이번 ‘내란죄 수사’에 대해 3년간의 수사라며, 오랜 기간 내사를 펼쳐왔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정원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다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있는 조처 등을 요구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9월 정기국회에서 국정원 개혁을 위한 대수술이 예고된 시점에서 공개수사를 벌인 것이다. 따라서 국정원의 이같은 행보를 두고 ‘공안탄압’ 가능성과 함께 국정원 대선개입 진상규명을 위한 촛불정국을 타개하려는 ‘위기국면 전환용 카드’가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의당은 논평을 통해 “국정원의 개혁 이유를 ‘셀프증명’ 한 물타기용 압수수색은 유감”이라며 “시기와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도 논평을 통해 “국정원이 국회까지 들어와 현역 의원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이는 현 사태를 매우 엄중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전국 민주노동조합총연맹·한국진보연대·통합진보당·정의당 등 20여 개의 시민사회단체와 진보정당은 ‘국정원 내란음모조작 공안탄압 규탄 대책위(가칭)’을 결성하고 국정원의 내란음모죄 수사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KBS·MBC 국정원 發 보도…국정원 대선개입 정국 면피 의혹 언급 안 해
이 가운데, 28일 방송3사는 아무런 검증없이 국정원發 보도를 쏟아내며 ‘여론재판’을 주도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방송3사는 각각 4건의 보도를 내놨는데, △압수수색 현장 1건 △혐의내용 전달 1건 △종북논란 1건 △정치권 반응 1건으로 보도 패턴이 거의 같았다(표-1 참조).
KBS와 MBC는 혐의사실을 기정사실화하거나 수사공개 시점을 둘러싼 의혹을 보도하지 않는 방식으로 국정원의 ‘내란죄 수사’에 적극 힘을 실었다. 특히 MBC는 “이 의원이 현재 신분을 숨긴 채 도주 중”이라는 공안당국의 입장을 사실관계 확인 없이 그대로 보도하기도 했다. KBS도 “변장 도피설” 등을 전하면서 “통합진보당은 사실이 아니라고만 했다”며 이 의원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KBS와 MBC은 국정원이 ‘3년여 간의 내사를 벌여왔다’는 점을 언급하면서도, 왜 국정원 개혁이 전면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서 공개수사를 펼치는 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SBS도 사실관계에 대한 면밀한 파악보다는 국정원發 보도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KBS-MBC와 비슷한 보도를 내놓은 셈이다. 다만, SBS는 아직 확인된 사실이 없는 점, 정국이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국면인 점 등을 재차 언급했다. 또한 이날 클로징에서는 “시점과 내용으로 볼 때 국가정보원이 조직의 명운을 건 외길 걷기에 나선 것 같다”, “진실 말고는 길잡이가 없다”며 공개수사 시점의 배경을 두고 의구심을 제기하는 멘트로 마무리해 차이를 보였다.
KBS-MBC, 내란죄 혐의 ‘전면부각’
이처럼 KBS는 의혹이 제기된 현장을 취재했지만, 100여 명의 사람들이 5월에 모였다는 점만 확인했을 뿐, 이들이 누구고, 왜 모였는지에 대해서는 전부 국정원에서 나온 정보를 전달한 데 치중한 보도에 불과했다. 결국 현장의 모습을 비추는 것으로 아직 확인된 것이 없는 국정원의 ‘내란죄 수사’에 힘을 싣고 나선 것이다.
MBC도 <‘내란음모’ 혐의>(김재영)를 통해 “국정원이 구체적으로 어떤 범죄혐의를 포착한 것인지 보도한다”며 “이석기 의원이 북한이 침략할 경우 경찰서 등을 습격해 공권력을 무력화시키고, 통신시설 등 국가기간시설을 파괴하라는 내용의 지령물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전시에 개개인이 1인 초소가 될 수 있도록 총포류 확보방안도 강구하라는 발언을 한 정황” 등 국정원으로부터 나온 혐의내용을 전달하는 데 치중했다. 통진당의 입장은 사실이 아니라면서 ‘피의사실 공표자체도 불법’이라고 반박한 사실을 보도 말미에 짤막하게 덧붙인 데 그쳤다.
반면 SBS는 <“총기 준비해 국가 시설 타격 계획”>(김윤수)에서 보도 후반 “국정원은 이번 사건을 3년 넘게 내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한 뒤 “국정원이 오랫동안 내사한 사건을 ‘댓글 사건’으로 정국이 꼬여 있는 시점에 공개수사로 전환한 만큼 수사 결과에 대한 부담도 피할 수 없게 될 전망”이라고 덧붙여 공개수사 전환 시점을 둘러싼 의문을 간접적으로나마 지적해 차이를 보였다. 또한 정치권의 입장을 전한 <통합진보당 “용공조작극” 강력 반발>(진송민)에서도, 보도 후반 “새누리당은 엄격한 수사를 촉구한 반면, 민주당은 신중한 입장”이라고 전한 뒤,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을 놓고 여야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정국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며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정국임을 재차 언급했다.
한편, 방송3사는 이 의원이 과거 민혁당 사건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받고, 국회의원이 된 이후 ‘종북성향’을 둘러싼 논란으로 국회에서 제명이 추진된 점을 거론하며 종북논란을 재부각하는 보도를 1건 씩 냈다.
▲ 8월 28일자 방송3사 메인뉴스 화면 갈무리(KBS-MBC-SBS 순)
그런가 하면 MBC는 정치권 입장을 전한 <“충격” “주시” “조작”>(천현우)에서는 “종북 친북 세력들의 이적활동을 낱낱이 밝히자”는 새누리당 측의 ‘색깔론’ 주장을 먼저 부각했으며, 신중한 입장을 보인 민주당에 대해서는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를 했었던 민주당은 엄중한 상황이고, 좀 더 지켜보겠다며 말을 아꼈다”고 설명하는 등 야권 전체에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줄 여지가 있는 멘트를 달았다.
‘내란’은 국가기반을 뒤흔들 만큼 중차대한 사건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진실규명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국정원이 제시하고 있는 ‘국토참절, 국헌문란, 폭동’에 대한 근거는 이석기 의원의 녹취록이 있다는 것일 뿐, 아직 국민 앞에 제대로 내놓은 것이 없다.
국기문란, 헌법파괴라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당사자이자, 개혁 대상자인 국정원이 3년 동안 내사를 벌이던 사건을 미묘한 시점에 발표·공개수사로 전환한 것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때문에 국정원 사건의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여론을 잠재우고, 국정원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현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제기된다. 국정원이 이 의원을 둘러싼 내란죄 등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한다면, ‘국면전환용 기획수사’라는 비판과 더불어 국정원 개혁을 향한 국민적 철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은 축소·누락해 국민적 공분을 불러왔던 공영방송사는 국정원의 ‘내란죄수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심과 검증도 하지 않은 채 받아쓰기 보도로 일관하며 의혹키우기에 일조하고 있다. 진실추적을 통해 국민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해야 할 언론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는커녕 피의사실 전달에만 치중하고 있다.
더구나 국정원의 선거개입으로 진실규명과 책임자처벌, 국정원 개혁 등을 요구하는 범국민적 공감대가 확산된 시점임에도, 공영방송사가 국정원의 공개수사 시점과 의도를 두고 의구심조차 제기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언론’임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 없다. 국정원이 이번 사건에 대해 혐의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 확인되지 않은 ‘의혹 키우기’에 나선 언론 역시 그 책임을 함께 져야 할 것이다. <끝>
2013년 8월 29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