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모니터_
국정원 직원의 정치글 게시 사건에 대한 방송3사 저녁종합뉴스 모니터보고서(2013.2.5)○ 모니터 기간 : 1월 31일 ∼ 2월 4일
한편, 국정원은 한 발 더 나아가 김 씨의 변론을 자처해 비난을 사고 있다.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일관하던 국정원은 31일 김 씨의 정치글 게시 사실이 드러나자 “북한 찬양·미화 등 선전선동에 대응하기 위해 작성한 것으로 대북심리전 활동을 위한 글”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국정원은 김 씨가 올린 정부·여당 옹호글과 야당 비판글이 ‘국정원의 대북심리전’과 어떤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결국 국정원의 해명은 정부여당 옹호와 야당비판이 대부분인 김 씨의 정치 글 작성이 국정원 업무의 일환이었다는 점, 김 씨 외 국정원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개입됐을 가능성을 부각시킨 셈이 됐다. 이를 입증하듯 이후 추가된 언론보도에 따르면 누리집에 남아있는 김 씨의 글 중 북한을 비판하는 내용을 제외하고 정부옹호글, 이정희 후보 비판 글 등 80건이 넘는 글이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대선이후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던 국정원 직원의 정치개입 사건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언론 취재의 힘이다. <한겨레>는 특정기간(8월 28일~12월 11일)동안 김 씨가 올린 게시글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김 씨의 선거법·국정원법 위반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정작 수사당국은 부실수사로 의혹에 휩싸였다. 김 씨의 ID나 닉네임 추적, 컴퓨터의 IP 분석을 마치지 못했으며, 김 씨가 제출하지 않은 휴대전화와 이동식 저장장치, 타인 컴퓨터를 이용한 접속 여부 등을 분석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경찰은 김 씨의 사무실, 집, 휴대전화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지 않았다. 또한 부실수사라는 비판여론에도 대선을 사흘 앞둔 시점에서 중간수사결과를 무리하게 발표했다. 당초 수사의지가 없다, 박근혜 후보에 대한 노골적 줄서기라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방송3사는 이러한 경찰의 부실수사 결과 발표를 비판 없이 중계하거나, 부실수사 논란을 여야공방을 다룬 보도에 끼워넣는 식으로 축소해왔다. 특히 MBC는 지난해 12월 17일자 <“비방 댓글 흔적 발견 못해”>에서 “최근 석 달 간의 인터넷 접속기록 천여페이지, 그리고 인터넷 아이디와 닉네임 40개로 작성된 저장 기록 3천여 건을 분석”했고, “경찰청과 서울경찰청 정예 사이버 수사관 10명 투입돼 나흘 동안 진행된 결과”라며 경찰 수사의 정당성을 부각시키는 설명을 달기도 했다(※해당기사는 ‘2012대선보도민언련모니터단’의 대선 최악보도 중 하나로 선정됐다). 취재를 통해 사실을 확인하거나, 수사당국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해야할 언론이 경찰수사과정의 의문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침묵한 채 수사에 별 문제가 없는 양 호도하고 나선 것이다. KBS와 SBS도 대선당시 국정원 직원 정치글 게시 의혹을 검증하기보다는 ‘여야공방’으로 치부하면서, 해당 사안을 ‘여성인권침해’ 문제로 몰아가는 박 후보와 새누리당의 주장을 여과없이 중계했다.
이후 국정원 직원 김 씨의 정치글 작성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자, 방송3사는 수사 결과를 번복한 경찰에 책임을 전가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그마저도 사안이 폭로된 당일(31일) 1건씩, KBS 14번째, MBC 24번째, SBS 18번째로 후반배치해 사안의 중요도를 떨어뜨렸다.
SBS도 <‘정치 글’ 120건 작성 드러나>에서 “논란이 일자 경찰은 문재인, 박근혜 등 자신들이 설정한 키워드 6개가 들어 있지 않아 대선 관련 글로 해석하지 않았다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 놨다”고 비판했다. 보도는 김 씨 글에 이정희 후보를 비판하는 내용도 있다면서 “경찰이 국정원 직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적극적으로 밝힐 생각이 없었다는 비난을 받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SBS도 보도 말미에 “국정원이 보도자료를 통해 김 씨의 활동은 정상적인 대북심리 업무이기 때문에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고 비판없이 전했다.
색깔론으로 사안을 회피하려는 국정원의 해명은 오히려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심리정보국 요원이 일반 누리집에 투입된 사유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일면서 논란의 불씨가 됐다. 일각에서는 국정원의 누리집 무차별 사찰 의혹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방송 보도가 적극적인 취재로 의혹을 해소에 나서기는커녕 무비판 전달로 혼란만 가중시킨 셈이다.
더구나 31일 이후 김 씨외 제3자의 출현, 게시글 삭제 의혹 등 국정원의 조직적 개입이 의심되는 추가 정황이 포착됐음에도 방송3사는 보도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이는 김 씨 개인에게 책임을 한정하고, 사건을 축소하려는 국정원과 수사당국이 보여 온 행태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 가운데 국정원이 언론과 경찰수사에 재갈물리기를 시도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1일 국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직원 김 씨의 인터넷 아이디를 불법으로 기자에게 제공한 혐의(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인터넷 누리집 관리자 또는 경찰 관계자를, 이 아이디를 이용해 불법으로 누리집에 접속해 기록을 열람한 혐의(개인정보보호법 위반)로 <한겨레>기자를 김 씨 명의로 고소한다”고 밝혔다. 혐의 당사자인 김 씨가 정치 게시글 작성을 보도한 기자와 수사 중인 경찰을 역고소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국정원은 김 씨의 입장을 내세워 “경찰이 기소 전 수사상황을 언론사에 제공한 사실이 밝혀지면 형법상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경찰 수사팀을 수사요청할 방침”이라며 경찰 수사를 사실상 압박하고 나섰다.
그러나 방송3사는 국정원의 언론 재갈물리기에 대해 대부분 침묵했다. 2월 2일 MBC가 17번째 꼭지로 단신을 낸 게 전부였는데, 그마저도 국정원 여직원의 한겨레 기자 고소사실을 단순전달한 데 그쳤다.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 직원 정치글 게시 사건이 여성인권침해로 호도돼 사건이 묻힐 뻔한 데는 사건의 진상을 취재·검증해야 할 언론이 본연의 책무를 잊고 사안을 ‘정치권 공방’으로 호도하거나 경찰발표 중계로 일관한 탓이 크다. 이같은 비판에서 방송3사도 자유로울 순 없다. 그럼에도 방송3사가 어렵게 부상한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에 대한 취재를 소홀히 하고, 국정원의 적반하장에 대한 비판을 외면한 것은 방송3사가 최소한의 비판저널리즘마저 상실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2013년 2월 5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