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모니터_
‘나주 성범죄 사건’에 대한 방송3사 저녁종합뉴스 모니터 보고서(2012.9.4)- 방송3사, ‘대책’보도 부실…국민 우려만 키워
○ 모니터 기간 : 8월 31일 ∼ 9월 3일(사건 드러난 8월 31일부터 경찰 종합대책 발표한 9월 3일까지)
전남 나주에서 7세 아동이 집안에서 잠을 자다 납치돼 성폭행을 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에도 사회적 취약계층의 어린이가 범죄의 대상이 됐으며, 피의자 역시 외톨이형 성범죄자라고 분석된다. ‘성범죄 현상’의 본질이 개인보다 사회구조적 문제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성범죄 근절 대책은 ‘사전예방’보다는 ‘사후대책’에 치중해 있으며, 그마저도 처벌‧감시 강화에 그쳐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는 2008년 조두순 사건이후 전자발찌를 시작으로 성범죄자 신상정보 공개, 무기징역까지 형량 강화,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구축, 화학적 거세 등 성범죄 근절 대책을 쏟아냈다. 그러나 △2008년 이전 형이 확정된 범죄자는 대상에서 제외되고 △전자발찌를 부착한 상태에서 범행이 발생한 사례가 있으며 △범죄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발생빈도가 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성범죄 근절 대책은 별다른 효력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3일 경찰청이 발표한 강력범죄 종합대책을 살펴보면 △한 달간 특별방법 비상근무체제 △형량강화 △음란물 단속 강화 △성폭력 전담부서 설치 △불심검문 등 근시안적이거나 기존 정책을 되풀이하고 있어 실효성에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불심검문은 2년 전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기 때문에 사실상 폐기된 정책이었다. 뿐만 아니라 정부와 새누리당은 ‘화학적 거세 적용대상 확대 방안’ 추진 계획을, 검찰은 ‘보호자수용제’ 부활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지만 이마저도 한시적인 대책에 지나지 않아 국민 불안감을 감소시키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성범죄 현상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성범죄자에 초점을 맞춘 대안을 내놨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약자에 대한 폭력적 지배’를 용인하는 사회 문화 △성범죄의 원인을 ‘성충동’, ‘반사회적 기질’, ‘성도착증’ 등 개인의 특수성에서 찾는 인식의 문제 △사회적 취약계층을 아우르는 사회적 안전망 구축 등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예방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편, 경찰의 ‘성과 과시하기’식 행태와 언론의 ‘받아쓰기’ 보도가 올바른 여론형성을 방해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8월 31일 피의자 고 아무개 씨를 검거한 경찰은 연일 언론을 통해 고 씨가 부모와 잘 알고 있던 ‘면식범’이며, ‘아동 성도착증’, ‘외톨이형 성범죄자’ 등 범인의 특징을 공개했다. 언론도 경찰 발표에 맞춰 일제히 사건의 정황, 경찰의 수사 상황을 나열하며, 피해 상황의 ‘심각성’과 검거된 피의자의 ‘대담함’, ‘잔혹함’을 전달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또한 사건이 발생한 원인을 분석하면서도 경찰과 언론은 피의자 고 씨의 ‘아동 성도착증’, ‘반사회적 기질’, ‘성충동’ 등 개인의 특수성을 부각했다.
이러한 여론몰이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피의자에 대한 ‘분노’와 범죄에 대한 ‘공포심’만 자극하는 결과를 낳게 될 우려가 있다.
방송3사 보도행태 역시 다르지 않았다. 방송3사는 지난 8월 31일부터 9월 3일까지 ‘나주 성범죄 사건’을 첫 머리에 주요하게 다뤘는데, KBS 11건, MBC 20건, SBS 16 의 보도를 냈다.
방송3사의 보도를 살펴보면 ‘예방’, ‘제도‧문화적 개선’보다는 사건 전개 과정, 피의자의 ‘잔혹성’, 피의자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에 치중한 자극적인 보도가 많았다. 흉악범죄를 사회적 현상으로 정리하거나, 사회적 약자 및 취약계층이 범죄 대상이 되는 ‘성폭력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뒤따르지 않아 국민의 불안감만 가중시킨 셈이다.
아울러 매년 흉악범죄가 늘고 있지만 근시안적 대안에만 머무르는 정부에 대한 비판도 소홀했다. 주로 정부차원의 ‘처벌‧감시 강화 방안’을 전달하거나 ‘실효성 논란’을 언급하는 데 그쳤을 뿐, 사회안전망 구축, 취약계층 복지 강화 등 중장기적인 대책에 대한 논의역시 부족했다.
경찰의 초동 대처를 비판한 보도는 SBS가 1건을 냈을 뿐, KBS와 MBC는 이를 지적하는 보도를 내놓지 않았다.
KBS와 MBC는 사건전개 과정을 반복 설명하거나, 필요 이상의 자극적인 설명을 덧붙인 보도가 많았다. 1일 나주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 발표를 전했는데, ‘술을 마시면 성적 충동 강해진다’, ‘아동 음란물’을 즐겨봤다는 점을 강조하고, ‘아동 성도착증’에 대한 설명을 부연하는 등 자극적인 설명을 달았다. 또 이전 아동성범죄자들이 같은 질환을 갖고 있다고 강조해 범죄의 원인을 특수한 몇몇의 왜곡된 성인식에 한정하는 양상을 보였다.
아울러, 고 씨에 대해 ‘외톨이형 성범죄자’라고 분석하면서도, 사회적 ‘소외’보다는 개인의 방탕함을 부각하는 보도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이에 비해 SBS는 사건의 흐름을 따라 설명하는 방식 대신 경찰 발표와 고 씨의 진술을 통해 사건을 전달해 차이를 보였다. 또 후속보도를 통해 경찰의 초동대처를 비판하기도 했다. KBS‧MBC와 달리 고 씨에 대해 ‘사회적 외톨이’라는 점을 부각해 ‘성범죄 현상’을 사회적 문제로 끌어오기도 했다.
한편, 방송3사는 나주사건 외에도 동대문구, 인천, 동두천, 천안, 춘천 등 각지의 성범죄 사건을 묶어 전달하면서 “면식범, 성추행 전과범” 등 공통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해결방안이 미흡한 상황에서 사건을 나열한 데 그쳐 ‘공포심’만 부각한 셈이다.
‘자극적 묘사’는 현장검증과 경찰 수사 발표가 있던 1일 보도가 심각했다.
<현장검증…큰딸 노린 계획적 범행>은 “고성이 오가는 소란 속에서도 침착하게 범행을 재연했다”, “고 씨는 죄송하다면서도 검증이 끝날 무렵엔 ‘후련하다’는 말까지 했다”고 기자멘트로 덧붙였다. <아동 대상 왜곡된 욕망>은 불필요한 질문과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고 씨가 “아동음란물 보며 뒤틀린 욕망 키웠다”면서, 연행되는 고 씨에게 기자가 “몇 번이나 보셨어요?”라고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보도는 경찰의 설명을 전달하면서도 “아동 포르노를 보며 어린 여자와 성행위를 하는 뒤틀린 환상을 키워왔고”, “술을 마시면 성적 충동을 강하게 느낌”, “피해자의 마음속에는 큰 딸이 그려져 있었다”는 등 경찰 관계자의 자극적인 멘트를 그대로 전달했다. 보도 말미 피해 어린이 상황을 전하면서 “나영이처럼 심하게 다친 것은 아니”라는 불필요한 설명을 달았다.
MBC는 31일~2일까지 매일 사건 전개과정을 설명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자극적인 묘사’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아동 음란물 보며 성충동”>은 제목부터 보도내용까지 고 씨가 “아동 음란물에 심취”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기자멘트와 경찰 발표에서 “일본 음란물”이라는 표현을 3차례 반복하거나 “어린 여자와 성행위를 원했다”고 반복해서 전했다. 뒤이은 <술 마셨지만‥계획적 범행>에서는 “평소 아동 음란물을 즐겼던 고종석은 순간 큰 딸을 떠올리며 성폭행 계획을 세웠다”며 고 씨의 범행 계획부터 사건 전개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아동 성도착증은 정신병>은 “병적 성도착증”, “병적인 욕망을 토로했다”, “조절이 안된다”는 등 과도한 부연설명을 달았다.
방송3사는 현장검증 상황을 전하며, 고 씨를 둘러싼 주민들이 고성을 지르거나, 고 씨를 향해 비난하는 모습을 전달했다. 이에 앞서 MBC와 SBS는 경찰이 고 씨를 압송하는 과정에서 한 시민이 아무런 제지 없이 고 씨가 머리에 쓰고 있던 겉옷을 벗겨내는 장면을 그대로 내보내기도 했다.
아울러 방송3사는 2차 피해를 우려할 만한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사건현장과 현장검증 상황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피해어린이의 집과 주변, 피의자가 다니던 PC방, 인근 상점 등이 일부만 모자이크 처리하거나 그대로 노출했다.
피의자와 피해자 가족에 대한 보호도 허술했다.
KBS는 <술 취해? 우발적?>에서 고 씨의 평소 성향을 묻는다며, 범죄현장 인근 고 씨가 기거했던 친척집을 찾아가 고 씨의 사촌과 작은 어머니를 인터뷰했다.
또 KBS <과정‧동기 의문점>은 “피해어린이 어머니가 진술을 번복했다”며 보도 말미에 “경찰이 어머니에 대해서도 범죄분석 상담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덧붙이는 등 피해어린이 어머니에 책임을 묻는 듯한 설명을 부연했다. MBC도 <이웃 청년이 여아 납치‧성폭행>에서 피해어린이 어머니를 녹취인터뷰하면서 육성을 그대로 내보내기도 했다.
방송3사는 ‘처벌‧감시 강화’에 집중한 보도가 대부분이었으며, 사회적 문제로서 ‘성범죄 현상’을 분석하고 장기적 대안을 모색한 보도는 미흡했다. 그마저도 3일 경찰이 종합대책을 내놓은 뒤 그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일고 나서야 보도가 나왔다.
KBS는 예방과 문화‧제도적 개선을 주문하는 보도에 가장 소홀했다. 전체 11건 중 대책을 모색한 보도는 2건에 그쳤으며, 그 중 1건은 경찰대책이 발표된 3일에 나왔다.
MBC는 사건이 알려진 31일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급조된 대책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범죄를 막을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며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보도를 냈지만, 이후 보도에서는 정부의 근시안적 ‘처벌감시 강화’ 방침을 비판하기보다 ‘처벌 대 인권’구도로 논쟁을 부각했다.
SBS도 ‘처벌강화’를 강조한 반면 사전예방에 대한 논의는 미흡했다. 정부방침에 대해서는 ‘화학적 거세’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지적했으며, ‘불심검문’은 범죄예방과 전시행정이라는 찬반입장을 전하는 데 그쳤다.
KBS는 31일 <또 집안에 숨어 있다…>에서 동대문구, 광진구 사건 등을 전하며 보도 말미에 “보안이 취약한 다세대 주택의 철저한 문단속이 안전의 필수 요건”이라며 개인의 ‘단속’을 주문하는 데 그쳤다.
<[집중진단] 성범죄 ‘솜방망이 처벌’ 사라질 듯>은 “대법원이 일반 국민과 전문가 천9백 명에게 ‘성폭행과 살인 중 무엇을 더 엄벌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결과 살인과 같거나 더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국민 64%, 법조인 34%”라면서 “성범죄 처벌 강화”가 국민여론이라고 강조한 뒤 법무부의 ‘보호수용제’ 도입 검토, 경찰의 ‘불심검문’ 재개 방침을 전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반발은 “근본적 대책이 아니다”,“미봉책”이라는 인권단체 입장을 설명 없이 짧게 덧붙인 데 그쳤다. “정부의 잇단 대책에 찬반 의견이 엇갈린다”고 설명했다.
3일 <[이슈&뉴스] ‘성범죄’ 근본대책은?>에서 경찰이 발표한 종합대책이 “사건이 터질 때마다 되풀이되는 한시적 대책”이라고 지적했으나, 대체 방안에 대한 모색 없이 ‘생활 속 치안 안정망이 필요하다’는 전문가 의견을 짤막하게 덧붙인 데 그쳤다.
MBC는 제도적 문제를 언급했지만 정부의 정책도입취지를 부각하거나 찬반입장을 나열해 ‘처벌 대 인권’ 구도의 논쟁으로 다뤘다.
<흉악범 보호수용제 논란>은 7월 통영 사건을 전한 뒤, 피의자가 성범죄 전과자라고 부각한 뒤, “검찰은 이 같은 흉악범죄를 막기 위해 '보호수용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며 ‘보호수용제’를 설명했다. 이어 “적용 대상을 살인과 성폭력, 흉기 살해 등으로 한정시키면 인권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찬성 쪽 입장을 전하고는 “과잉한 처벌이 될 우려가 있고 형벌과 같이 부과됨으로써 이중처벌 논란도 있고 마지막으로는 대상이 되는 자를 누구인지를 판명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인권단체의 반박을 나열한 데 그쳤다.
2일 <판사들의 반성, “형량 높이겠다”>은 주취감경, 친고죄 등을 지적했지만, “전국의 형사법관들은 반성했다”며 법관들의 처벌의지만 전달한 데 그쳤다. 제도적 개선 방안은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불심검문 부활‥인권침해?>는 경찰의 불심검문 현장을 전했는데. “우연히 지명수배자도 적발됐다”며 불심검문의 성과를 띄우기도 했다.
SBS <불심검문 2년 만에 부활 논란>은 경찰의 불심검문 방침을 설명한 뒤, “최근 흉흉한 분위기 때문인지 시민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라고 전했다. 이어 “인권침해 논란은 피할 수 없다”며 불심검문을 반대하는 시민의 입장을 전했다. 그리고는 “간극을 줄여나가는 것이 숙제”라고 덧붙인 데 그쳤다.
3일 <[집중취재] ‘영혼살인’..한국만 솜방망이 처벌>는 프랑스, 미국, 중국의 사례와 비교하며, 한국의 처벌이 상대적으로 관대하다고 지적했다.
31일 이명박 대통령이 경찰청을 방문해 수사 상황을 보고 받은 뒤 흉악범죄에 대해 국민에 사과를 전했다. 그러나 “정부를 대신해 사과한다”, “일선 경찰들의 정신 재무장이 필요하다”는 등 책임을 관리부서에 전가하는 이 대통령식 ‘유체이탈 화법’은 여전했다. 그러나 방송3사는 이 대통령의 행보를 비판없이 전달했다. 오히려 MBC는 이 대통령의 행보를 띄우는 보도를 냈다. KBS <술 취해? 우발적?> 보도 말미에 짤막하게 관련 내용을 덧붙였고, SBS는 단신 보도했다.
MBC는 31일 <이 대통령 “국민께 죄송”>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예고 없이 경찰청을 방문해 김기용 경찰청장으로부터 수사진행 상황을 보고받은 뒤 피해 가족에게 위로를 전하고 국민께 사과했다”고 전한 뒤, “치안강화를 국정 최우선에 놓겠다고 선언했다”, “일선 경찰에게 정신 재무장을 주문했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 정부와 정치권의 협력을 당부했다”며 이 대통령의 발언을 띄웠다.
3일에는 앵커단신을 통해 이 대통령이 화학적 거세, 성범죄자 신상공개, 성범죄 조장 음란물 차단 등 법률제도를 정비하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