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KBS ‘백선엽 미화 방송’을 규탄하는 논평(2011.6.27)
등록 2013.09.2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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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미화 KBS, ‘한국방송’도 ‘공영방송’도 아니다 
 
 
 
KBS가 기어이 ‘친일파 미화방송’을 밀어붙였다.
지난 24-25일, KBS는 백선엽 씨를 주인공으로 다룬 6.25 특집 2부작 <전쟁과 군인>을 방송했다. 방송 전부터 친일파 백선엽 씨가 ‘전쟁 영웅’으로 다뤄질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독립유공자 단체, 언론단체 등은 편성 취소를 요구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그러나 KBS는 이런 비판 목소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백선엽 미화 방송을 강행했다.
 
백선엽이 누구인가? 백선엽은 일제 말 일본군이 초급 장교를 양성하기 위해 세운 봉천군관학교에 들어가 만주국에서 소위로 임관한 뒤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했다. 간도특설대는 항일무장세력을 살상하는 데 앞장섰던 조직으로, 독립군 뿐 아니라 이들에게 협조한 조선인들까지 무자비하게 학살해 악명을 떨쳤다.
해방 이후 백 씨는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왔다가 ‘친일파 숙청’을 피해 남으로 내려온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친일 청산은커녕 자신들의 통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친일 부역세력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이들을 중용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과정에서 친일파들은 재빠르게 ‘친미’로 둔갑해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편에 섰는데, 백 씨 또한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런데 ‘공영방송’이라는 KBS는 백 씨의 친일 행각을 외면하고 한국전쟁 당시의 ‘공적’에만 초점을 맞춰 그를 미화했다.
<전쟁과 군인>은 백 씨가 전공을 세운 다부동전투, 평양입성, 금성전투돌출부 전투를 주요하게 다뤘다. 백 씨의 친일 경력은 1부 초반에 “이후 만주군관학교에 입학 일본군 장교가 된다. 이 전력으로 그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는 10초도 안되는 언급이 전부였다. 간도특설대 근무경력은 언급조차 없었다. 한국전쟁 시기 빨치산 토벌 작전 때 민간인 학살 의혹 역시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
<전쟁과 군인>은 프로그램 형식에서도 ‘백선엽 중심’, ‘백선엽의 시선’을 취했다. 1부 시작과 함께 어둠 속에서 문이 열리고 백 씨가 등장한다. 이어 1, 2부 내내 백 씨의 설명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2부 마지막에 백 씨가 회상을 끝내고 스튜디오를 나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마지막 멘트는 “한 인치의 땅도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피와 땀을 흘려 얻은 국토”라는 백선엽의 말이었다.
시청자들은 항일독립군을 토벌했던 일본군 출신이 전쟁 영웅으로 미화돼 ‘피땀 흘려 얻은 국토’ 운운하는 말을 듣고 있어야 했다.
 
KBS가 친일반민족 행위자를 미화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MB정권 나팔수’ 행태 보다 더 추악한 일이다. 수구기득권세력의 앞잡이가 되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헌법 정신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이 적시하고 있듯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3.1운동과 임시정부, 4.19혁명에 있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 ‘보수’를 참칭하고 있는 수구기득권 세력의 뿌리는 친일파와 독재정권이다. 수구기득권 세력들이 정권을 잡고 우리 사회 곳곳을 장악해도 대한민국의 정통성만은 가질 수 없었고, ‘역사’ 앞에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수구기득권 세력들은 친일의 역사, 독재의 역사를 온갖 궤변으로 정당화하고 미화함으로써 자신들이 갖지 못한 정통성을 억지로라도 만들려고 안간힘 써왔다. 이른바 ‘뉴라이트’가 근현대사 교과서를 트집 잡고, 조중동 수구족벌신문이 끊임없이 친일청산을 공격하며, ‘재평가’라는 궤변으로 친일파와 독재자를 미화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백선엽의 경우 지난해 중앙일보가 그의 회고록을 연재하기 시작해 책으로 묶어내는가 하면, 한 지자체에서는 그의 동상을 세우겠다고 나서 시민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더니 기어이 ‘공영방송’ KBS가 ‘미화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데에까지 이른 것이다.
수구기득권 세력의 ‘대한민국 정통성 흔들기’가 얼마나 일사분란하게 벌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자, KBS가 특정 정권을 넘어 친일파에 뿌리를 둔 수구기득권 세력의 나팔수 노릇까지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KBS는 명백한 ‘친일파 미화방송’을 두고 “전쟁에 대한 다큐”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KBS가 한국전쟁의 영웅을 조명하려 했다면 적어도 친일파는 아니었던 인물을 찾아야 마땅했다. 항일독립군을 토벌하는 일에 가담한 반민족행위자를 미화하는 순간, KBS는 ‘한국방송’도, ‘공영방송’도 아니었다.
지금 KBS는 수신료를 올려달라며 국민을 조르고 야당을 겁박하고 있다. 그러나 ‘친일파 미화’로 공영방송으로서 정체성을 내팽개친 KBS는 수신료 인상은커녕 존재의 이유를 묻게 한다.
‘특보사장’ 김인규 씨를 비롯해 친일파 미화 방송을 밀어붙인 사람들, 이들의 손발이 되어 프로그램 제작에 동참한 사람들에게 청암 송건호 선생이 남긴 글을 한 구절 알려주고 싶다.
 
“나는 글을 쓸 때마다 항상 30년, 40년 후에 과연 이 글이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라는 생각과 먼 훗날 욕을 먹지 않는 글을 쓰겠다는 마음을 다짐하곤 한다. 크게는 민족을 위해서 작게는 내 자식들을 위해서 어찌 더러운 이름을 남길 수 있겠는가”
 
당신들은 친일파 미화 방송으로 대한민국의 역사, 공영방송의 역사에 ‘더러운 이름’을 남겼다. 머지않은 미래에 공영방송 KBS를 국민의 품으로 되찾아 오는 날,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끝>
 
 
 

2011년 6월 27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