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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언론악법 관련 부작위 권한쟁의심판청구 기각 판결에 대한 논평(2010.11.25)- 헌재의 ‘기각’ 판결, ‘조중동 종편’의 정당성 확보로 착각하지 말라
지난해 10월 헌재는 ‘국회의장의 신문법 등 가결선포 행위가 야당 의원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이후 국회의장은 헌재 결정에 따른 추가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민주당 등 야당 의원 86명은 지난해 12월 헌재에 부작위에 의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그러나 재판관 4명(이공현, 민형기, 이동흡, 목영준)은 ‘각하’, 1명(김종대)은 ‘기각’ 의견을 내고 나머지 4명(조대현, 김희옥, 송두환, 이강국)이 ‘인용’ 의견을 냄으로써 결국 5:4로 권한쟁의심판청구는 기각됐다.
각하 의견을 낸 4명은 “권한침해의 원인이 된 이 법률안의 가결선포행위를 (1차 쟁의심판에서) 무효확인하거나 취소하지 않은 이상 각 법률안에 대한 가결선포행위는 유효하다”, “종전 권한침해확인 결정의 기속력이 있기 때문에 피청구인에게 종전 권한 침해행위에 내재하는 위헌·위법성을 제거할 적극적 조치를 취할 법적 의무가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언론악법이 날치기 처리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위법 사항을 국회의장이 바로잡을 법적 의무가 없다는 얘기다.
기각 의견을 낸 재판관은 “권한쟁의심판에 대한 기속력의 본래적 효력은 권한침해를 확인하는데 그친다”, “법률안 가결선포행위에 내재하는 위헌·위법성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국회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밝혔다. 국회의장이 위법을 바로잡을 의무는 있지만 ‘강제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인용’ 의견을 낸 4명의 재판관들만이 국회가 ‘법률안 심의·표결절차 중 위법한 사항을 시정할 의무가 있다’면서 ‘국회는 다양한 방법 중에서 선택해 이 사건의 각 법률안을 다시 적법하게 심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가 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잘못이 있으니 이를 바로잡을 책임이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명쾌한 판단이 왜 헌재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인가?
한편으로 헌재의 이번 판결은 ‘정치적 판단의 산물’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조중동 종편’을 막을 수 없다는 정치적 판단에 따라 끼워 맞추기식의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결과가 유효하니 절차상 문제를 바로잡을 책임이 없다’는 판단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가?
그러나 헌재의 기각 판결이 ‘조중동 종편’에 정당성을 부여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조중동 종편’의 근본적인 부당성을 누차에 걸쳐 지적해 왔다. 헌재 판결이 나오기 전에 ‘조중동 종편’을 밀어붙이는 것은 최소한의 절차를 짓밟는다는 점에서 부당하다는 것일 뿐, 헌재가 기각 판결을 내렸다고 해서 ‘조중동 종편’ 자체가 정당성을 얻는 것은 아니다.
‘조중동 종편’이 민주주의와 여론다양성을 훼손하고 미디어산업을 파국으로 몰아갈 대재앙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를 외면하고 기어이 ‘조중동 종편’을 밀어붙인다면 그에 따르는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조중동 종편’ 강행에 앞장서온 최시중 씨 등 여당 추천위원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야당 추천 위원들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야당 추천 위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헌재 판결이 내려지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식의 태도가 아니라, ‘조중동 종편’이 초래할 민주주의와 미디어산업의 재앙적 결과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것임을 명심해주기 바란다. 야당 추천 위원들이 직을 걸고 소임을 다해 ‘조중동 종편의 공범’이 되지 않기를 거듭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