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국가인권위원회 파행 관련 조중동 보도에 대한 논평(2010.11.12)
등록 2013.09.2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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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동아>, 차라리 ‘침묵’하라
 
 

이명박 정권 들어 흔들리던 국가인권위원회가 최악의 위기 상황을 맞았다.
지난 2일 유남영, 문경란 상임위원이 현병철 위원장의 독단적인 인권위 운영 방식에 반발해 사퇴한데 이어 10일에는 조국 비상임위원도 사퇴했다. 2001년 인권위가 설립된 후 위원들의 ‘줄사퇴’는 유례없는 일이다. 시민사회와 정치권은 현병철 위원장이 인권위를 파행으로 이끈 책임자라며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전직 인권위원장·인권위원들과 인권위 직원들도 현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심지어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도 현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인권위 파행은 예견된 일이나 다름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려 시도했고, 이 시도가 무산되자 인권위 조직을 축소하려 들었다. 인권 활동과 무관한 친정부 인사들을 위원장과 위원 자리에 앉혀 ‘인권위 무력화’를 꾀했다.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사들이 다수를 차지하게 된 인권위는 민간인 사찰, <PD수첩> 탄압 등 인권위가 발언해야 마땅하지만 정권에 부담이 되는 인권 사안에 대해 침묵해 왔다.
또 지난 7월 취임한 현 위원장은 국회에 출석해 북한 인권 결의안을 인권위 전체의 의견인 양 보고하는가 하면, 한국 인권 실태를 조사하러온 유엔인권보고관과 상임위원들의 면담을 가로막는 등 비상식적인 행태로 인권위의 역할을 왜곡하고 위상을 추락시켰다. 나아가 위원장의 독단적 운영에 맞서 온 상임위의 권한을 축소시키는 운영규칙 개정안을 밀어붙여 상임위원들의 사퇴를 불러왔다. 이 때문에 상임위원들의 사퇴를 촉발시킨 것은 운영규칙 개정안이지만 파행의 근본 원인은 인권위의 비판적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명박 정권의 왜곡된 인식과 이를 ‘실행한’ 현 위원장의 파행적인 인권위 운영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서도 현 위원장은 “국가기관으로서 소임을 지체하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인권위는 가장 잘 운영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메일을 보내 격려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등의 주장을 펴며 사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유남영 위원의 사퇴로 공석이 된 상임위원 자리에 고대 출신에 ‘보수단체’ 대표를 맡고 있는 변호사를 임명함으로써 인권위 파행에 아랑곳 하지 않을 것임을 드러냈다.  
더욱 문제는 인권위 사태의 심각성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등과 소수의 인터넷 매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들이 인권위의 파행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
사퇴한 문경란 상임위원이 기자로 일했던 중앙일보는 지금까지 단 2건의 기사를 통해 상임위원 사퇴, 새 상임위원 임명, 시민사회의 현 위원장 사퇴 요구와 현 위원장의 반응을 단순 전달하는데 그쳤다.
심지어 조선·동아일보는 인권위 파행의 본질을 왜곡하는 악의적인 주장을 폈다.
 
두 상임위원이 사퇴한 1일 이후 12일 현재까지 조선일보는 단 3건의 기사를 실었다. 그 중 하나는 이 대통령이 신임 상임위원을 임명했다는 단신이다. 인권위 파행의 근본 원인을 지적한 보도가 없었음은 물론, 9일 사설에서는 인권위 파행의 본질을 왜곡하고 나섰다. 
<인권위, 정파적 문제 손 떼고 진짜 인권기구 되어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지난 정권 아래 인권위가 ‘정파적 활동’을 했다며 “인권위의 오늘의 혼란과 실추된 위상은 과거의 정파적 행적에서 비롯된 업보”라고 주장했다.
사설은 참여정부 시절 인권위의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 이라크 파병 반대, 공무원·교사 정치활동 확대 요구 등을 ‘정파적 활동’인 양 언급한 뒤 “인권위가 보편적 인권 문제들에 대해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려왔다면 인권위는 국민의 마음속에 굳건히 뿌리를 내렸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정권이 바뀌었다고 권력이 인권위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인권위원이 전 정권파, 현 정권파로 갈려 파벌 싸움을 벌이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인권위 파행을 ‘정파 간 갈등’으로 호도하는 것에서 나아가 이명박 정권의 인권위 무력화 시도를 두둔하는 궤변이다.
조선일보는 사퇴한 문경란 상임위원이 여당 추천이라는 점, 그가 인권위는 ‘이념’이 아닌 ‘인권’에 충실해야 한다며 현 위원장을 비판한 점 등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했다.
 
동아일보는 조선일보보다는 많은 7건의 관련 기사를 실었으나 인권위 파행의 본질을 흐렸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았다. 9일 동아일보는 <중도실용이 안 통하는 인권위와 영화진흥위>라는 사설을 실었는데, 제목부터 무슨 소린가 싶다.
사설은 인권위와 영진위가 진통을 겪고 있다면서 “두 위원회는 성격이 다르지만 진통의 원인과 배경에는 닮은 점이 있다. 모두 보수 우파와 진보 좌파 진영의 이념적 대립과 이해 갈등이 근본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인권위 파행을 위원들 간의 ‘이념 대립’으로 몰고는 “위원들은 좌우의 정파주의를 넘어서 인권 문제에 헌법적 가치로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퇴한 두 상임위원을 비롯한 인권위 내부 구성원들은 ‘정파’나 ‘이념’이 아닌 ‘인권’ 기준에 따라 인권위를 운영해야 한다며 현 위원장의 ‘정권 코드 맞추기’를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도 동아일보는 이런 객관적인 상황을 외면한 채 인권위의 ‘정파주의’를 탓하면서 이명박 정권과 현 위원장의 인권위 파행 책임을 은폐한 것이다.
 
조선‧동아일보는 인권위원들을 향해 ‘정파를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 ‘파병 반대’ 등 인권위가 그야말로 인권의 잣대로 내놓은 의견들을 ‘좌편향’, ‘정권 코드맞추기’로 몰아붙이고 있다. 말로만 ‘정파를 넘어서라’고 주장할 뿐 실제로는 인권위의 ‘우편향’을 주문하는 것이자, 정권 차원의 ‘인권위 손보기’를 부추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조선‧동아일보가 인권위 파행의 본질을 제대로 보도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도 ‘모범사례’로 꼽혀왔던 인권위를 ‘좌편향’으로 몰아붙이고, 정권의 인권위 무력화 시도를 ‘자업자득’으로 몰아붙이는 집단이 무슨 인권 개념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차라리 인권위 문제에 침묵하라. 수구족벌신문이 인권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어 보인다.  <끝>
 

2010년 11월 12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