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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주말드라마 <수상한 삼형제>의 '공권력 편들기'에 대한 논평(2009.12.22)
등록 2013.09.2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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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치적 막장드라마’인가
 
 
 
KBS 주말드라마 <수상한 삼형제>(연출 진형욱, 작가 문영남)가 집회·시위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담은 노골적인 ‘공권력 편들기’ 내용을 방송해 시청자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 삼형제의 아버지 김순경(박인환)과 셋째아들 김이상(이준혁)의 직업은 경찰이다. 20일 방송분에서 김순경은 부하인 지 경사의 아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아간다. 지 경사의 아들은 전경인데 시위 현장에서 다친 것으로 설정되었다.
김순경은 얼굴과 팔 등에 붕대를 감고 신음하는 지 경사 아들의 모습을 보고 어찌된 일이냐고 묻자, 지 경사는 오열하며 뛰쳐나간다. 지 경사는 김순경에게 아들의 한쪽 눈이 실명될지 모른다며 “시위대가 던진 돌에 정통으로 눈을 맞았다. 화염병에 팔다리가 화상을 입었다”고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또 “시위대가 너무한다”며 “지들도 자식이 있고 동생이 있을 텐데… 똑같이 자식 키우면서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지, 전경이 무슨 죄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이어 장면이 바뀌고 김순경의 막내아들 김이상(이준혁)과 그의 부하 백마탄(이장우)이 등장한다. 백마탄은 ‘경찰 동료가 과잉진압으로 몰려 옷을 벗게 될지도 모른다’며 “시위대 진압하다 사고만 나면 무조건 과잉진압으로 몰아붙이는데 화염병 던지고 돌 던지는 시위대한테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경찰도 많이 다쳤단다. 전경들도. 뉴스엔 시위대 다친 것만 크게 나오고 경찰 다친 건 아예 나오지도 않았다. 정말 속상하다”며 언론의 ‘편파보도’를 원망하기도 했다.
 
드라마 중간에 대략 4분여 간 나오는 이 장면은 드라마 전개에서 도대체 무슨 기능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뜬금없고 어색한 삽입이었다.
이 드라마에는 경찰을 직업으로 가진 주요 등장인물이 나온다. 그러나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해가 주요 내용이다. 무능한 장남, 장남을 편애하는 부모, 권태로운 부부, 고부 갈등, 아들이 원하는 결혼을 반대하는 어머니, 과거를 속이고 시집온 며느리 등등 지금까지 이 드라마를 끌어온 주요 갈등은 가족드라마의 전형이다.
이런 가족드라마에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민감한 내용을 언급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 ‘지 경사’와 ‘백마탄’이라는 경찰의 입을 빌어 공권력의 과잉진압을 합리화하는 내용이 갑자기 끼어든 것이다. 그러다보니 장면의 앞뒤 연결도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지 경사가 오열하고 이어 백마탄이 울분을 터뜨리는 장면은, 김순경의 아들 김이상이 애인에게 ‘아버지로부터 결혼 승낙을 받았다’고 알리며 기뻐하는 장면과 김 순경의 며느리들이 다투는 장면 사이에 끼워져 그야말로 ‘튀는’ 느낌을 주었다.
게다가 시위대를 비난하고 과잉진압을 두둔한 두 인물의 대사는 너무나 노골적이고 ‘웅변적’이어서 군사독재 시절의 반공드라마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한편 문제의 장면은 철저하게 경찰을 집회·시위의 ‘피해자’로, 시위대는 ‘가해자’로 몰았다. 이런 시각은 이명박 정권 아래 벌어지는 기본권 침해와 공권력 남용을 은폐하고 감싸는 현실 왜곡이다.
지금 국민들은 헌법에 보장된 집회·시위의 자유를 철저하게 억압당하고 있다. 광장은 봉쇄당했고 기자회견, 단식농성조차 집시법 위반으로 몰려 참가자들이 끌려가는 판이다. 경찰폭력은 또 어떤가. 지난 해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서는 경찰의 ‘선제적인’ 폭력진압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다쳤다. 올해 초에는 경찰의 살인진압으로 철거민 5명이 목숨을 잃었으나 그 진상조차 가려지지 않았다. 쌍용차 파업진압 때도 경찰은 전기충격 총 테이저건을 노동자의 얼굴에 쏘고, 스티로폼을 녹일 정도의 유독물질을 헬기로 뿌렸다. 그런데도 정권의 방송장악, 언론통제로 경찰의 과잉·폭력진압과 그에 따른 인권유린은 제대로 보도되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 앞에 “사고만 나면 무조건 과잉진압”, “뉴스에는 시위대 다친 것만 나온다”는 경찰의 일방적인 주장을 등장인물의 대사로 내놓았으니 시청자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이번 파문을 접하며 작가와 제작진이 무슨 생각으로 드라마를 만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권력을 ‘인격화’해서 시위대의 폭력을 비난하고 과잉진압을 정당화하는 것은 권력이 사회 갈등의 본질을 흐리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공권력을 ‘법과 제도로 통제해야 할 합법화된 물리력’이 아니라 ‘어린 전경’, ‘누구의 아들’과 같은 힘없는 개인으로 바꾸어 ‘피해자’의 위치에 놓는 것이다. 그러면서 갈등의 근본 원인, 과잉진압을 명령한 권력의 책임, 시위대의 피해 등은 은폐하고 ‘때린 시위대’와 ‘다친 전경’만 부각하는 방식이다.
<수상한 삼형제>는 바로 이 ‘공식’을 너무나 노골적으로 따랐고, 시청자들은 이것을 간파하고 분노했다. 물론 전경들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는 상황에서 다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드라마에 억지로 끼워 넣어 공권력을 편드는 것은 그 의도를 의심하게 만든다.
문영남 작가는 이른바 ‘막장 드라마’ 논란을 불러일으킨 <조강지처 클럽>(SBS)과 <소문난 칠공주>(KBS)를 쓴 바 있다. 이제 이명박 정권, 김인규 체제의 KBS 아래에서 공권력의 편에 서서 현실을 은폐하는 ‘정치적 막장 드라마’로 나아가겠다는 것인가? 권력을 꼬집고 풍자하는 드라마, 소외된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는 드라마는 쓰지 못할망정 ‘가족드라마’의 외피를 쓰고 공권력을 대변하는 억지설정이나 끼워 넣었으니 빈곤한 작가정신이 참으로 놀랍다.
제작진도 마찬가지다. 최소한의 비판적 인식이 있다면 어설프고 일방적인 ‘공권력 편들기’를 걸러냈어야 마땅하다. 더욱이 KBS가 지금 어떤 상황인가? 공영방송으로서의 기능이 마비된 상태다. KBS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마당에 드라마에서조차 노골적으로 권력의 편을 든다면 시청자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 것을 몰랐단 말인가?
시청자들을 바보취급 하지 말라. 70년대 ‘반공드라마’ 같은 방식으로 권력을 감싸고 편들어봐야 시청자들의 비난과 반발만 거세질 뿐이다. <끝>
 
 
 
2009년 12월 22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