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한나라당의 방송공사법 발의 및 KBS 수신료 인상 주장에 대한 논평(2009.7.16)
등록 2013.09.25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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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공사법’과 ‘수신료 인상’ 거론하는 의도가 뭔가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지난 14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뜬금없이 수신료 인상과 함께 가칭 ‘방송공사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이 법안은 지난해 말 한나라당 미디어발전특위가 제안한 공영방송법안의 연장선에 있다. 공영방송법안은 △공영방송 재원의 80%를 수신료로 충당하고 △사장 선임권을 공영방송위원회에 넘기며 △국회가 예결산승인권을 갖도록 규정한 바 있다. 당시 공영방송법안은 정부가 공영방송의 인사와 예산을 장악해 방송을 통제하려 한다는 집중비판을 받았다.
한나라당이 발의하겠다고 공언한 방송공사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지금까지는 안상수 원내대표가 △현행 한국방송과 교육방송 이사회를 대신해 ‘공영방송위원회’를 구성하고 △공영방송은 광고 수입이 전체 재원의 20%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나머지 80%는 수신료로 운영한다는 내용을 포함한다고 말한 것, 그리고 한나라당 미디어발전위원회 정병국 위원장이 예산에 대한 국회승인권은 법안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언급한 것이 전부다.
이 법안은 과거 공영방송법안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인위적 방송구조 개악, 그리고 정부의 방송장악을 위한 악법이다.
-방송공사법은 ‘MBC 민영화’로 방송장악 하겠다는 ‘악법’
이 법은 MBC를 민영화하는 인위적 방송구조 개악을 겨냥하고 있다. 이 법안에 따르면, 공영방송 재원의 80%는 수신료에 의존하게 되어 있다. 광고 등 기타 상업적 재원은 20%에 한정되는 것이다. 현재 100% 상업적 재원에 의존하고 있는 MBC에 이 룰이 적용될 경우 그 결과는 둘 중 하나다. 파산하여 문을 닫든지 아니면 민영화 하든지.
고흥길 문방위원장은 15일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 법에는 “MBC 민영화라든가 KBS2의 민영화가 한 줄도 들어가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진행자가 “20% 이상 광고를 하면 공영방송이 아니라는 내용이 그 발의안에 안 들어 있다는 것이냐”고 묻자, 고흥길 위원장은 “제가 아직 상세히 보고받지 못했다”고 얼버무렸다.
이 같은 기준의 명문화 여부는 사실 둘째 문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상업적 재원 20% 이하를 공영방송에게 법률로 강제한다는 점이다. 공영방송의 재원방식은 다양하다. 100% 수신료, 100% 광고 수입, 수신료와 광고의 적정비율 적용 등 공영방송 재원에서 수신료와 광고의 비중은 나라마다 다르고, 또 한 나라 안에서도 공영방송마다 다르다.
방송공사법으로 공영방송의 상업적 재원 비중을 일률적으로 20%로 한정하는 것은 국제적인 코미디다. 시선집중에 출연한 고흥길 위원장도 “광고를 몇 % 하느냐를 갖고 민영이다, 상업이다 얘기하기는 상당히 어렵다”며 “외국의 경우도 공영방송이라도 광고를 일부 하는 공영방송도 많기 때문에 그러한 규정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상업적 재원 20%’가 공영방송의 자격기준일 수 없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그 기준을 모든 공영방송에게 일률적으로 강제하려는 한나라당의 모순적 태도에 아연할 뿐이다. 이는 한나라당의 목표가 단순히 방문진 이사 교체를 통한 MBC 장악 정도가 아님을 보여준다.
또 이 법은 연말에 도입할 것으로 검토되는 미디어렙법과 더불어 MBC를 공영의 범주에서 밀어내어 민영화를 압박하는 도구로 쓰일 공산이 크다. 정부에 순종하면 수신료를 주어 공공서비스가 대폭 축소된 무비판적 공영방송으로서 근근이 연명케 하고, 정부에 순종하기 싫다면 민영화시켜 사적 자본의 먹잇감으로 내몰아버리겠다는 겁박이다. 기득권 세력에 대한 MBC의 완전한 노예화를 강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이 법은 ‘공영방송위원회’를 통한 방송장악을 노리고 있다. 이 법은 국회의 예산승인권을 배제하여 과거 공영방송법보다는 조금 나아 보인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공영방송위원회는 △KBS·EBS·아리랑TV 사장 선임 △각사 예산 승인 △경영방침 결정 및 감독 △수신료 책정과 배분 등의 기능을 갖는다. 현재의 공영방송 이사회보다 훨씬 강력해질 전망이다. 문제는 공영방송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이다. 정부와 여당 측 위원이 다수를 차지하여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과 통제의 전위대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본래, 공영방송의 사장과 감독기구(이사회 또는 공영방송위원회)는 정부여당과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사장은 자율과 책임으로 경영권을 행사해야 하고, 감독기구는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는 경영방침을 결정하고 사장의 경영행위를 엄정하게 감독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방송공사법에서 사장은 공영방송위원회를 통해 ‘무력화’되고 있다. 정부여당이 공영방송위원회를 통해 인사와 예산을 휘둘러 공영방송을 실질적으로 장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수신료 인상을 ‘당근’으로 언론악법 밀어붙이려는 정치적 의도
또한, 한나라당의 이번 방송공사법 추진은 미디어악법 강행을 반대하는 언론계를 분열시키려는 비열한 계책이기도 하다. KBS 노조는 미디어악법 저지와 공영방송법 쟁취 두 가지를 내걸고 있다. 수신료 인상과 KBS 중심의 공영방송 재편을 미끼로 KBS노조를 미디어악법 반대전선에서 이탈시키려는 책략이다. 한나라당은 법제정의 1차적 이유가 수신료 인상에 있다고까지 말하면서 KBS 구성원들을 유혹하고 있다.
KBS 이병순 사장은 지난 13일 “3년 반 만에 상반기 흑자를 이루었다”고 자랑하면서 “수신료 인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병순 사장은 “경영개선과 흑자전환은 수신료 현실화의 가장 실질적인 기반이자 도덕적 명분”이라고 주장한다. 도대체 공영방송이 무엇인지나 알고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공영방송의 목적이 흑자를 내는 것인가? 또 ‘흑자를 냈으니 수신료 올려 달라’고 국민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국민의 공영방송으로서 역할을 하는 데 재원이 부족하면 당연히 수신료는 인상해야 한다. 하지만 수신료 인상의 도덕적 명분은 흑자전환이 아니라 신뢰받는 공영방송의 위상을 찾는 것이다. 한 사회의 여론 형성 뿐 만 아니라 문화와 의식 전반을 형성해가는 중심축 역할을 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본래 역할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병순 사장이 들어선 뒤 공영방송 KBS의 신뢰도와 영향력은 어떻게 되었는가? 신뢰는커녕 취재를 거부당하고 시민들로부터 쫓겨나고 있다. 이렇게 KBS가 국민들에게 불신당하는 이유가 수신료가 부족하기 때문인가?
수신료는 국민들의 너무나 소중한 돈이다. 정치권력의 시녀로 전락하여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방송을 위해 쓰일 돈이 아니다. 지금 국민들은 오히려 수신료거부 운동이라도 벌이자는 판이다. 그런데 뚱딴지 같이 수신료 인상이라니, 국민들 생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과연 국민의 소리에 철저하게 귀 막은 이명박 정권의 충실한 대변자답다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도 공영방송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 재원이 더 필요함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재원은 ‘땡이방송’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방송이 아니라 신뢰받는 공영방송을 위한 것이다. 권력의 손에서 독립하여 참된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날 때에야 수신료 현실화는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방송공사법과 수신료인상 논란은 방송구조 개악을 겨냥한 정략적 꼼수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 법안을 발의하여 BBC나 NHK 같은 방송을 만들겠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KBS가 세계적 공영방송은커녕 국민들에게조차 외면 받는 방송이 된 이유를 한나라당과 정부가 모를리 없다. 방송공사법은 권력이 통제하는 공영방송과 돈벌이에 빠진 민영방송으로 사회적 감시와 비판이 거세된 방송구조를 만들뿐이다.
아무리 그럴 듯하게 포장을 해도 국민들은 속지 않는다. 국민 신뢰만 잃을 뿐이다. 한나라당은 정치적 노림수를 감추고 거짓주장을 하면서 방송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개편하려는 시도를 중단하라. 국민적 불신을 받는 방송사를 위해 정치적 꼼수로 수신료를 인상하려는 시도는 국민적 저항에 부딪칠 것임을 명심하라.
<끝>
2009년 7월 16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