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청와대 에릭슨 투자유치 ‘뻥튀기 브리핑’ 관련 언론보도에 대한 논평(2009.7.15)그런데 에릭슨사가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와의 인터뷰(14일자)에서 청와대의 이 발표를 부인했다. 에릭슨코리아의 비엘른 알덴 사장은 인터뷰에서 “에릭슨이 한국의 4세대 무선통신 기술에 투자할 의향이 있는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투자규모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permature)’”라고 발언했으며, “투자에 대한 성격에서 ‘적격센터’ 대신 ‘R&D센터’로 규정한 것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불만을 표했다고 한다.
청와대도 14일 해명자료에서 “구체적인 투자 금액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시인하면서도 “투자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11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에릭슨 회장이 만났을 때 ‘에릭슨이 한국에 1000명 규모의 R&D센터를 둔다는 계획을 금액으로 하면 얼마나 되느냐’고 배석한 실무자가 질문하자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시장 상황에 따라 15억 달러도 될 수 있고 20억 달러도 될 수 있다’고 답변했다며 12일 보도자료는 “이에 기초해 대략적인 예상규모를 적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15일자 한겨레신문에서는 에릭슨 측이 ‘1000명 고용, 15억 달러 투자’ 등의 사전 협의조차 부인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점을 차치하고 청와대의 해명만으로도 에릭슨이 구체적인 투자 금액을 확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뻥튀기 브리핑’, ‘일방적인 투자 애원’이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으며, 그로 인한 국제적 망신도 톡톡히 당하게 됐다.
같은 날 MBC와 SBS는 각각 <“타결 기대”>(이주승 기자)와 <사실상 타결>(김우식 기자)에서 한-EU FTA 관련 소식을 주요하게 다루며 에릭슨사의 ‘5년간 2조원 투자계획’을 짧게 다뤘다.
그러나 파이낸셜 타임즈 보도가 나간 14일에는 방송3사 어느 곳도 관련 보도를 하지 않았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모두 관련 기사를 실었는데, 특히 중앙일보는 13일 1면 <“한·EU FTA 타결 기대>과 13면 <2조 투자 할 에릭슨 회장 “지금이 바이코리아 적기”>에서 에릭슨의 투자 계획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14일 <토종 와이브로와 경쟁하는 LTE(유럽 4세대 이동통신)원천기술 확보 기대>(8면)에서는 “에릭슨이 한국에 15억 달러(약 2조원) 규모의 연구소를 설립 한다”며 ‘적진에 뛰어든 에릭슨의 노림수’와 ‘연구소 설립을 수용한 한국 정부의 저의’를 분석하기도 했다.
그런데, 조중동은 청와대의 브리핑의 문제가 드러나자 관련 소식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아예 관련 보도를 싣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15일 칼럼 <분수대/ 덕률풍>(예영준 정치부문 차장)에서 구한말 ‘전화’를 지칭하던 ‘덕률풍’을 처음 놓아준 에릭슨이 “이제는 한국에 1000명 규모의 연구개발센터를 설립한다고 밝혔다”면서 “한국이 세계 IT산업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는 뜻”이라며, “자만하지만 않는다면 우리가 이룬 성과에 대해 가끔은 긍지를 가져도 괜찮을 듯하다”고 거듭 ‘에릭슨의 한국 투자’만 강조했다. ‘투자 계획 발표가 잘못됐다’는 에릭슨 측의 주장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한 술 더 떠 15일 <“한국이 세계로 통하는 테스트베드” 미래산업 투자 잇단 ‘노크’>(5면)에서 에릭슨과 관련된 파이낸설 타임즈 기사를 언급하면서 “‘대한민국 정부와 에릭손은 이번 협력 부문과 투자계획에 대해 완벽한 이해와 합의를 했다’는 내용을 남은 긴급 보도자료를 한국 언론사에 전달했다”, “이례적으로 발 빠르게 진화에 나선 것”이라고 주장하며 “대 한국 투자 계획에 영향을 받을까 신경 쓰는 모습이 엿보였다”고 해석했다. ‘구체적 금액은 언급하지 않았다’는 에릭슨 측의 핵심적인 주장은 쏙 빼고 사태를 축소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조중동과 달리 정부 브리핑의 문제를 지적해 차이를 보였다. 두 신문은 15일 각각 <‘김칫국 외교’ 국제적 망신>(8면)과 <에릭슨 “15억 달러 약속 안했다”>(2면)에서 파이낸셜 타임즈의 기사 내용을 자세하게 보도하며 청와대의 성급한 발표를 비판했다.
다른 한편으로 언론의 보도태도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방송3사가 청와대의 ‘에릭슨 투자계획 브리핑’이 부풀려진 것으로 밝혀졌는데도 관련 보도를 하지 않는 것은 의아하다. 심지어 KBS는 에릭슨의 투자계획을 별도의 꼭지로 대대적으로 보도하기까지 했다. 청와대의 ‘부풀리기 브리핑’으로 방송3사 모두 결과적으로 ‘오보’를 하게 된 마당에 침묵이 능사가 아니다. 정권이 내세우고 홍보하고 싶은 것은 그대로 받아쓰면서 정작, 문제가 드러났을 때는 모르쇠로 넘어간다면 어떻게 시청자들이 방송보도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특히, 공영방송 KBS의 보도행태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병순 씨가 청부사장으로 온 뒤 급격하게 후퇴하기 시작한 KBS의 보도가 최근에는 노골적인 ‘땡이뉴스’, ‘땡박뉴스’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번에도 KBS는 다른 방송사들보다 더 노골적으로 대통령의 ‘순방외교 성과’를 두드러지게 보도하는데 앞장섰으면서도, 정작 문제가 드러나자 입을 닫고 있다. 공영방송의 본령을 저버리고 노골적인 ‘친정권 방송’, ‘정권의 나팔수’임을 자임하는 KBS가 무슨 낯으로 시청자들에게 ‘수신료 인상’을 거론하는지 참으로 뻔뻔할 따름이다.
조중동의 교활한 보도행태는 더 이상 말 할 필요조차 없다. 지난 정부 시절 툭하면 ‘아마추어 정부’, ‘아마추어 외교’ 운운하며 비난하고 깎아 내리는데 앞장서 왔던 이들 신문이 정작 이명박 정부의 거듭된 외교적 실책에 대해서는 제대로 비판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 아전인수식 해석까지 동원해 감싸기에 앞장서는 눈물겨운 보도행태까지 보이고 있다. 무조건 숨기고, 감싼다고 이명박 정부의 ‘헛발질’이 감춰진다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오히려 조중동의 이런 보도행태야 말로 이명박 정권의 몰락을 자초하는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