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휴먼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까지 대통령의 ‘선행’을 부각해 ‘정권홍보’ 논란을 빚고 있다. 지난 8일 <현장르포 동행>(이하 동행)은 지난 1년간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사람들의 현재 보습을 보여주었는데, 이 가운데 출연자 최승매 씨가 청와대에 초청 받은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고 최 씨 딸에게 대통령 편지를 읽히는 등의 장면을 넣었다.
‘정권홍보’ 논란이 일자 KBS 외주제작국 EP는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국정 최고 책임자가 격려를 하는 것이고, 자연스럽게 소개한 것”, “미화라고 보는 시각이 문제”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프로그램을 직접 연출한 외주제작사의 PD 역시 <미디어오늘> 인터뷰를 통해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이 청와대까지 초청됐다는 건 이채로운 하나의 이벤트로 볼 수도 있어 그저 ‘재미있겠다’ 싶어 제작한 것”, “청와대로부터는 촬영을 위한 허가 정도의 협조를 받았다”며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밝혔다.
우리 역시 대통령이 소외계층을 돕는 일 자체를 탓할 마음은 없다. 대통령이 등장한다고 무조건 ‘정권홍보’, ‘정권미화’ 프로그램이라고 비난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번에 <동행>이 ‘대통령의 선행’을 다룬 방식은 여러 측면에서 ‘튀고’, ‘어색해’ 정권을 홍보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우리는 <동행>에서 ‘대통령의 선행’을 다룬 부분이 프로그램 내용상 꼭 필요한 것이었다고 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출연자를 ‘동행취재’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선행’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갔다고 볼 수도 없다.
출연자 최승매 씨의 가족은 첫 방송이 나간 후 수많은 시민들로부터 후원과 격려를 받았다고 한다. <동행>은 이 사실을 언급한 뒤, 후원자들 중에 대통령과 영부인이 있었다며 대통령이 보낸 편지를 클로즈업해 보여주었다. 또 편지의 한 대목을 최 씨 딸에게 읽게 한 뒤 ‘이명박 할아버지처럼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인터뷰까지 넣었다. 최 씨 가족을 후원한 많은 사람들 중에 대통령과 영부인이 있었고, 꼭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면 간단하게 언급하면 되지 않았나? 굳이 대통령의 편지를 클로즈업해서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최 씨의 어린 딸에게 ‘대통령처럼 되고 싶다’는 인터뷰를 받아낼 필요가 있었는지 의아하다.
최 씨가 청와대에 초청받았다는 내용을 다룬 부분도 어색하다. <동행>은 이 부분에서 ‘특이한’ 편집을 보였다. 또 다른 출연자인 민경이 가족이 TV를 보는 장면이 나오고, 그들이 보는 TV 속 뉴스(KBS <뉴스광장>, 12/24)에서 최 씨가 청와대에 초청을 받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동행>은 TV 화면을 잠깐 비추더니, 이어 실제로 청와대 행사를 촬영한 영상으로 슬쩍 넘어갔다. 최 씨를 자연스럽게 동행취재 했다면 굳이 이런 편집을 할 필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한편, 청와대 행사장에서 최 씨의 얼굴이 나온 장면은 24일 <뉴스광장>이 보도한 장면과 육안으로는 구분이 안될 만큼 구도와 내용이 흡사했다. 최 씨가 왼쪽 눈썹 쪽에서부터 손을 들어 머리를 쓸어내리고, 뒤로 남자가 지나가는 장면이었는데, 뉴스에 나왔던 화면의 앞부분을 조금 길게 쓴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똑같아 보였다. 이 장면은 ‘민경이네 TV’를 통해서 한 번, 실제 청와대 행사 촬영 영상으로 한 번, 모두 두 번 나왔다. 눈으로 구분이 안될 만큼 비슷한 장면을 두 번씩이나 노출한 것이다. 또 <동행>은 대통령과 영부인이 각각 초청받은 사람에게 목도리를 매어주는 장면도 보여줬는데, 이 부분은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KTV 영상물과 각도가 매우 흡사했다.
만의 하나, <동행> 제작진이 최 씨를 동행취재한 것이 아니라 다른 영상물을 조금씩 이어 붙여 ‘대통령 장면’을 만들어낸 것이라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어떤 이유에서든 ‘대통령 홍보 부분을 억지로 끼워넣은 것’이기 때문이다.
<동행>은 가난으로 고통 받는 ‘대한민국 하위 1%’의 삶을 조명하고 이들도 한국사회의 ‘동반자’라는 사실을 시청자들과 공감하겠다는 취지로 지난 2007년부터 방송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기획취지처럼 매회 방송마다 어렵고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의 삶을 보여주며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이런 ‘비정치적’인 프로그램마저 ‘변질’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이병순 씨를 KBS 사장으로 앉힌 후 KBS의 보도·시사프로그램이 권력에 대한 비판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교양, 오락 등 여타 분야의 프로그램들이 ‘정권 홍보’의 수단으로 악용된다면 KBS가 어디까지 추락할 것인지 앞이 캄캄하다.
KBS가 <동행>의 ‘정권홍보’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시청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소개한 것”, “미화라고 보는 시각이 문제"라고 일축할 일이 아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대통령 장면은 확실히 ‘튀고’, 부자연스러웠다. 시청자들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왜 이런 편집이 나가게 된 것인지 납득할만한 해명을 해주기 바란다. 아울러 앞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에 이와 같은 ‘정권홍보’ 논란이 벌어지지 않도록 각별하게 신경 써주기 바라며, 행여 부당한 압력이 있을 때에는 강력하게 저항해줄 것을 촉구한다. ‘공영방송 KBS’의 미래를 위해서도, 제작진의 ‘명예’를 위해서도 그래야 마땅한 일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