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교육과학기술부와 국세청 1급 공무원 10명에게 일괄사표를 받았다. 공직사회 ‘물갈이’, ‘인사쇄신’이 정부가 내세운 명분이지만, 일괄사표까지 받은 배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략적 의도가 뻔히 드러난다. 이른바 ‘좌편향 교과서 수정’ 작업 등 ‘MB식 교육개혁’을 일사분란하게 처리하지 못했다는 것이 교과부 1급 공무원 7명에게 일괄사표를 받은 ‘핵심’ 이유라고 한다.
잘못된 정책을 ‘개혁’이라 밀어붙이며 공무원들에게 ‘일하지 않는다’고 질타하는 것으로도 부족해, 일괄사표라는 극단적인 방식까지 동원해 정권에 ‘찍힌’ 고위 공무원들을 쫓아내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MB식 인사쇄신’이 경제관련 부처, 통일부 등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공직 사회에서 ‘정권 눈치보기’, ‘정권에 대한 충성경쟁’ 분위기가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일부 수구보수신문들이 정권의 이런 행태를 ‘인사개혁’으로 포장하면서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18일 대부분의 신문들은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인사쇄신’을 주요하게 다뤘다.
<‘시스템’보다 ‘코드’ 강요 공무원 과잉충성 부른다> (한겨레, 1면)
<무원칙·무철학 뒤죽박죽 인사> (경향, 1면)
<1급 물갈이 통일부 등 他부처 확대> (동아, 1면)
<“5~6개 부처 인사쇄신 할 것”> (조선, 1면)
<여권 속도전 “이것저것 잴 여유가 없다”> (중앙, 2면)
기사 제목만 봐도 각 신문들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이 정부 인사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한 반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물갈이”, “인사쇄신” 등의 표현으로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담았다. 더 나아가 중앙일보는 왜 정부가 이런 ‘인사쇄신’에 나설 수 밖에 없는가를 제목으로 뽑았다.
기사의 내용에서도 이런 경향은 마찬가지다.
한겨레·경향, “방향도 내용도 잘못된 인사정책” 조목조목 비판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교과부·국세청 1급 공무원들의 일괄사표 사실과 함께 이명박 정부 인사정책의 의도와 문제점 등을 비판적으로 다뤘다.
한겨레신문은 ‘일괄사표’가 전례를 찾기 어려운 강압적 방식이라며, “개별 공무원의 잘잘못 평가가 아니라, 정권 핵심부와 뜻이 맞지 않는다며 일괄책임을 묻는 데 따른 부작용”을 우려했다. 무조건적인 충성문화, 눈치보기와 줄서기, 정책논의의 획일화 가능성 등이 부작용으로 지적됐다. 또 “현행법에 따라 신분 보장이 되어 있는 1급 공무원들한테 일괄사표를 내라고 한 점도 평가시스템 등 제도적 절차를 무시한 것으로 지적된다”며 부작용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한겨레신문은 사설 <방향도 내용도 잘못된 공무원 물갈이>에서도 ‘일괄사표’ 등 정부의 인사정책을 비판했다. 사설은 “공무원들을 이념전쟁의 최전선에 내몰고자 인사쇄신을 추진하면, 어느 누가 그걸 이해하고 따를 수 있겠느냐”고 지적하는 한편, 정부를 향해 “자신들이 추진하는 정책이 시대의 흐름에 맞는지를 먼저 되돌아봐야 한다”, “공무원 무능을 질타하기 전에 공무원을 제대로 부릴 수 있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앉히는 인사를 먼저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경향신문 역시 정부 인사정책과 이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함께 전했다. 특히 경향신문은 청와대가 일괄사표에 대해 “전혀 몰랐던 일”이라고 한 것과 달리 정진곤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이 지난 주말 안병만 교과부 장관과 전화통화를 하고, 교과부 간부 사표 제출 계획을 사전에 논의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명박식 국가 개조’를 위해 민심과 다른 물갈이를 추진하려 한다는 게 ‘일괄사표’ 사태에 대한 경향신문의 분석이다.
경향신문은 사설 <고위공직 물갈이, ‘우편향’ 불러선 안된다>에서도 “일괄사표라는 권주의 방식으로 코드맞추기 물갈이를 하는 것은 공직사회의 안정성을 해칠 수밖에 없다”며 “각종 우편향 정책 밀어붙이기에 무리가 없었는지, 대통령 리더십의 문제는 없었는지부터 자성하는 게 먼저”라고 꼬집었다.
중앙일보, “일괄사표는 고육직책”이라며 두둔
반면 중앙일보는 노골적으로 정부의 인사정책을 두둔하고 나섰다.
중앙일보는 2면 기사의 리드를 “‘일하는 2009년’, 여권의 지상과제다”라고 뽑고, “내년 1년이 전부다”, “이제 승부수를 띄울 때다”라는 등등 대통령 주변의 ‘일하려는 의지’를 전했다.
그러더니 “정부와 한나라당의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우선 공직사회가 ‘속도전’ 체제로 바뀌고 있다”며 교과부와 국세청 1급 공무원들의 일괄사표 사실을 언급했다. 정부가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고위공무원들을 ‘물갈이’하는 양 몰아간 것이다. 기사의 작은 제목들도 <“내년 1년이 MB정권 5년의 성패 좌우” 인식>, <고위 공직 물갈이, 당정청 인재 재배치 나서>로 달아 정부 인사정책에 ‘인재 재배치’라는 의미까지 부여했다.
나아가 정부 여당이 ‘속도전’을 강조하는 이유를 상세하게 ‘대변’해 주기도 했다. ‘경제위기 상황을 극복하려면 적기에 정책을 집행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도 1급 공무원의 일괄사표가 정권의 ‘고육지책’이라고 두둔하고 나섰다. 제목도 <1급 일괄사표는 정권의 고육지책인가>로 달았다. 사설은 “일각에선 무리수에 따른 부작용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그동안 이명박 정부의 개혁작업이 지지부진한 이유 중 하나로 공무원 사회의 복지부동이 꼽혀온 점을 감안할 때 개혁의 고삐를 조이기 위한 정부의 고육지책으로 이해된다”, “특히 교과부 등 몇몇은 이념·국정 방향과 밀접하다. 정권으로서는 김대중·노무현 10년 정권의 색깔과 정책을 대폭 바꿔야 하는 현실적 필요가 있을 것이다” 등등 대놓고 이명박 정권의 ‘코드맞추기 물갈이’를 감쌌다.
이렇게 고위 공무원들의 ‘물갈이’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늘어놓더니 사설 마지막에 “정권의 이런 고민을 이해할 수 있지만 이번 사안엔 공무원 신분 보장이라는 원칙도 걸려 있다”, “사표 해법은 정권의 고육지책이라 하더라도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정권을 노골적으로 두둔하면서 ‘면피성’ 언급을 슬쩍 끼워넣은 것이다.
동아일보, ‘MB정부 인적쇄신 과정’ 도표까지 그려가며 ‘대변’
중앙일보보다는 덜하지만 동아일보 역시 비슷한 보도 태도를 보였다.
1면 톱기사에서는 ‘일괄사표’ 사실과 함께 정부 여당의 입장만 다뤘다. 3면 기사 <교육개혁 미적대다? 소폭인사 하려다 일파만파?>에서는 정부의 교육정책을 “교육개혁”으로 전제하면서 교과부가 이런 교육개혁을 미적대다 1급 공무원들에게 일괄사표까지 받게 됐다는 분석, 당초 2~3명의 소폭인사를 하려했으나 언론에 알려지면서 사태가 확대됐다는 분석을 실었다.
정권의 무리한 ‘코드맞추기 물갈이’를 비판하기는커녕 3면의 또 다른 기사 <“일 제대로 안하면 일 난다” 개혁 긴장감 유도>에서는 정부의 ‘개혁의지’를 강조했다. 기사는 아예, △왜 1급이 타깃인가? △왜 이제와서인가? △DJ-盧 정권 땐 어땠나? 로 나누어 이명박 정부의 입장을 자세히 설명했다. 우선 1급이 타깃이 된 이유에 대해서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총력전을 펴고 있는 상황에서 공직사회의 느슨해진 고삐를 죄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1급 간부를 교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지금 나서게 된 이유는 집권 초에 장차관만 바꾸면 될 줄 알았는데 “막상 이 대통령이 취임한 뒤에도 좌파 정권 10년을 거친 관료사회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그런데도 최근까지 공직사회 다잡기를 위한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DJ, 노무현 정부 때도 임기 초반에 1급 공무원들을 물갈이했다’는 “여권의 한 관계자”의 말을 실었다. 그러나 이전 정권에서 ‘일괄사표’ 같은 무리한 수단이 동원된 바 없다는 사실은 어디에도 없었다.
4면 기사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관료사회 인적쇄신 과정>을 도표까지 그려가며 상세하게 ‘대변’해 주기도 했다.
‘비판적인 척’ 조선일보, 핵심은 “잘 바꿔라”
조선일보는 역시 1면 기사와 3면의 관계 기사를 통해 정부의 “인사쇄신” 내용과 목적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1면 기사의 작은 제목들 역시 <청와대 “집권 2년차 맞아 일할 수 있는 분위기 만들어야”>, <“李대통령, 경제부처 개편의지 강해”>로 달았다. 이 기사는 “청와대 관계자”, “청와대 또 다른 관계자”, “김은혜 청와대 부대변인”의 발언 내용만을 근거로 쓰여졌다.
3면 기사 <청와대 “현안대처 소극적…시간끌며 뭉개는 경우 많아”>에서도 청와대가 왜 일부 부처를 ‘물갈이’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기사는 “대통령의 신속한 대응책 마련이나 시정 지시에도 불구,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기보다는 시간만 끌면서 미적거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주장을 실은 뒤, 금융위원회, 국토해양부, 농림부, 지식경제부의 사례를 들었다. 금융위원회에 금산분리 완화 입법을 준비하라고 주문했더니 신통치 않은 안을 내놨고, ‘다시 준비하라’고 하자 ‘의원입법으로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사례, 국토해양부 공무원 중에는 대운하는 물론 4대강 정비 사업에 까지 반대하는 공무원이 있어서 야당이나 언론에 ‘잘못된 정보’를 흘렸다는 사례 따위가 다뤄졌다. 일괄사표까지 동원한 무리한 인사에 대해서는 “정치적 입김을 없애야 한다”는 한국정치학회장의 주장을 짧게 덧붙였을 뿐이다.
이렇게 정부의 인사정책에 힘을 실어준 조선일보는 사설 <인적 쇄신 간판 아래 연줄 인사하면 정권 끝장난다>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척’ 하기도 했다. 그러나 꼼꼼히 들여다보면 “현재의 공직사회 분위기론 일하기가 힘들고 그런 공직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데 인사 쇄신이 필요하다면 1급 이상 공무원의 사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자리를 정권에 줄을 댔거나 연줄로 얽힌 사람들로 채워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끝장난다”는 따위의 과격한 표현을 동원했지만, 결국 조선일보의 핵심 주장은 ‘잘라낸 자리의 인사를 잘 하라’는 것이다. 조선일보다운 행태다.
이명박 정권이 공무원 사회를 질타하는 모습은 한편의 코미디다. 무자격, 무능 장차관들을 줄줄이 앉혀놓은 정권, 경제위기를 효과적으로 대처하기는커녕 온갖 ‘역주행’ 정책으로 국민을 고달프게 만든 정권,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악법과 독선적인 행태로 국정을 파탄으로 몰고가는 정권이 자신의 잘못은 반성하지 않은 채 공무원들만 탓하는 형국이다.
게다가 교과부와 국세청은 이명박 정부 들어 어떤 부처보다 ‘이명박식 개혁’에 앞장섰다고 비판받았다. 멀쩡한 교과서를 ‘편향교과서’로 몰아 강제로 수정하는 데 나서고, 4.19 혁명을 ‘데모’로 폄훼한 것이 바로 교과부다. 국세청은 또 어떤가? 정권에 밉보인 기관을 집중적으로 세무조사해 ‘표적’이라는 논란을 일으켰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권은 이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개혁’을 빙자해 공무원을 ‘정권의 심복’으로 만들겠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그러나 ‘코드인사’를 입에 달고 다니면서 노무현 정권을 비난했던 수구보수신문들은 이명박 정권의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MB코드 물갈이’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러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 만무하다.
우리는 조중동이 ‘방송진출’을 노리고 이명박 정권에 대해 ‘친정부 경쟁’을 벌이고 있는게 아니냐는 지적을 한 바 있다. 오늘 중앙일보가 동아일보는 물론 조선일보까지 뛰어넘어 정부 두둔에 발벗고 나선 것도 조선, 동아보다 ‘협조적’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 아닌가?
이명박 정권의 실정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사회가 조중동의 비뚤어진 ‘친정부 경쟁’으로 더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러나 조중동 역시 국민들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