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KBS <시사 360>이 첫 방송을 내보냈다.
KBS가 <시사투나잇>을 폐지하고 그 ‘대체’ 프로그램으로 내놓은 것이 이 프로그램인 만큼 <시사 360> 첫 방송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역시 <시사 360>이 민감한 사회 현안을 회피하거나, 다루더라도 기계적 중립만을 따르며 ‘수박 겉핧기’로 흐르지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물론 첫 방송만 보고 이 프로그램의 방향을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첫 방송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일단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17일 방송은 모두 다섯 꼭지로 구성됐다.
<갈팡질팡 종부세 개정안>은 종부세 개정안을 둘러싼 정치권의 입장을 정리했으며, <생카 360>이라는 코너에서는 ‘민생탐방’을 위해 구로공단에 총출동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모습을 담았다. 이어 <미네르바 신드롬, 왜?>에서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를 둘러싼 논란을 다뤘다. 기획시리즈 <SOS 불황의 현장 서글픈 청춘, 대학생 취업 대란>은 대학생 취업난 실태를 다룬 것이다. 마지막 꼭지에서는 뉴욕 특파원을 연결해 뉴욕증시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했다.
<갈팡질팡 종부세 개정안>은 종부세 개정안을 둘러싼 각 정당 및 여당 내부의 엇갈리는 주장과 쟁점 등을 정리했다. 쟁점이 되고 있는 개정안의 내용은 무엇인지, 각 정당은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지, 여당 내에서는 어떤 이견이 나오는지 등을 요약한 것이다. 이렇게 정치권의 엇갈리는 주장을 나열한 후 진행자는 “해답은 역시 민심에서 찾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여야 정치권 모두 다수의 국민의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살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마무리했다.
종부세를 어떻게 개정하느냐에 따라 납부 대상, 세수 등이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으며, 정부와 지자체의 살림살이, 나아가 대다수 서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한나라당이 밀어붙이는 종부세 개정안이 ‘부자감세, 서민증세’의 기조를 강화해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과 중산층에게 더 큰 부담을 지우는 것이 아닌지 우려가 크다. 각 당의 주장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며, 그로 인한 혜택은 누가 보게 되는지, 개정안에 따라 발생하는 세수 감소는 어느 정도이며 그 부작용은 무엇인지 등의 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치권의 입장과 공방을 단순하게 요약, 비교하는 데 그친 <시사 360>의 보도는 아쉬움이 남는다.
<생카360>은 YTN ‘돌발영상’과 같이 짧은 영상으로 메시지를 담으려는 기획으로 보인다. 첫날 아이템은 “민생탐방을 위해 구로공단에 총출동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모습을 다뤘는데, 한나라당의 ‘활동보고’로 보일 뿐 특별한 메시지나 ‘정치풍자’를 담았다고 보기 어렵다. 혹시, 제작진들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하는 중소기업인들에게 한나라당 의원들이 “Slow help is no help”라는 말을 반복하면서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는 메시지를 담으려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제작진의 의도가 무엇일까’ 깊이 고민하면서 방송을 보는 시청자가 아니라면 이런 메시지를 쉽게 전달받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미네르바 신드롬, 왜?>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을 비껴갔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스러운 보도였다.
보도를 시작하면서 진행자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를 소개했는데 그가 “돌연 절필을 선언했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보도 내용에서는 ‘미네르바’가 왜 절필을 선언했는지 그 배경과 문제점을 전혀 다루지 않았다. ‘미네르바’에 대한 정부의 압박과 신상정보 노출 등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고, 다만 최재성 민주당 대변인이 “미네르바가 국가가 침묵하라니 입 닥치겠다고 선언 했습니다”라고 발언한 화면만 나왔다. 시청자로서는 미네르바 절필의 배경을 알 수 없었다.
‘미네르바’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미네르바는 어떤 사람이냐’, ‘미네르바의 경제예측이 정확하냐 아니냐’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성찰해야 할 대목은 누리꾼이 인터넷 공간을 통해 경제 상황과 정부 경제정책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한 것이 왜 이토록 큰 사회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는지, 누리꾼 한 사람의 입을 통제하려는 정부의 시도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이며 반민주적인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시사 360>은 전자의 문제, 즉 ‘미네르바의 글이 왜 신드롬을 일으켰나’에 대해서는 일부 언급했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해 ‘미네르바’의 글이 설득력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네르바’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여론통제 시도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시청자로서는 이 대목을 <시사투나잇>과 <시사 360>의 가장 큰 차이로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여론통제라는 핵심을 피해가다 보니 <시사 360>의 초점은 ‘미네르바의 주장이 얼마나 타당하냐’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보도는 증권가의 직장인들에게 ‘미네르바’의 글에 대한 의견을 물어 긍정적인 답변과 부정적인 답변을 각각 하나씩 인터뷰했다. 또 ‘미네르바’에 대한 경제전문가들의 시각이 다르다면서 두 사람의 인터뷰를 담았다. 여기서는 ‘미네르바’의 글을 비판하는 의견은 분명하게 전달된 반면 다른 의견은 애매하게 처리됐다.
한국경제연구원 안순권 연구원의 인터뷰는 “(미네르바의 주장이) 금융 시장의 불안을 더욱 조장시켜 우리나라 경제로서는 거의 치명적인 손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저런 분석이 확산될 경우에 우리로서는 거의 자해에 가까운 잘못된 분석이 아닌가...”라고 명확하게 ‘미네르바’의 주장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반면 성균관대 김태동 교수의 인터뷰는 “어디에 가면 어떤 자료가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가를 알아야만 자기의 주장, 자기의 예측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아주 단 시간 내에 필요한 자료를 쏙쏙 빼낼 수 있는 실력이 있지 않고는 할 수 없는…”이었다. 시청자들로서는 김 교수가 ‘미네르바’를 그런 실력이 있는 사람으로 본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사실관계가 다른 경우도 있었다. 보도는 ‘미네르바’가 리먼브라더스 파산, 환율폭등을 예견했다고 전한 뒤, “그의 말이 모두 맞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은행과 IMF의 달러 스와프를 예측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네르바는 한국은행과 IMF의 달러 스와프 체결을 예측한 바가 없다.
앞서 언급했듯 ‘미네르바’의 주장을 ‘쪽집게 도사’ 평가하는 듯한 기준으로 접근하는 자체가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그는 수많은 인터넷 논객 중 한 사람일 뿐이다. 문제는 그의 글이 영향력을 얻으면서 정부가 ‘위험’으로 느꼈고, 그 때문에 ‘미네르바’를 통제하려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네르바의 주장이 100% 맞느냐 맞지 않느냐’는 논란의 핵심을 비껴가는 것이며, ‘미네르바로 인해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느냐 그렇지 않으냐’라는 접근은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책임을 일개 누리꾼에게 덮어씌우는 마녀사냥으로 흐를 우려가 크다.
<SOS 불황의 현장 서글픈 청춘, 대학생 취업 대란>은 청년실업을 비관해 자살한 사건, 취업에 도움이 되는 ‘스펙’을 넓히기 위해서 헌혈을 하는 대학생, 청년실업에 대한 정부 대책 등을 다루고, “정부가 처음부터 그리고 근본적인 대책부터 다시 내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마무리했다. 자살 사건의 현장을 찾아가는 등 청년실업의 심각한 실태를 보여주려는 취지는 이해되었으나, 이후 보도에서는 청년실업에 도움이 될 만한 대안들을 찾아보는데 좀 더 노력 해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시사 360>은 ‘범람하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놓치고 있는 사안의 본질을 360도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하겠다’는 기획 취지를 밝혔다. 또 KBS 9시 뉴스의 앵커였던 김경란 아나운서를 진행자로 투입해 프로그램에 ‘공’을 들이는 노력이 엿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17일 첫 방송의 내용은 중요한 사회 현안을 심층적으로 다루기보다 현상을 소개하고, 핵심을 비껴갔다는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시사 360>이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우리사회 현안들을 다뤄, ‘혹시나’ 했던 시청자들이 ‘역시나’ 하고 돌아서지 않도록 분발해주기 바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