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단체는 지난 9월 6일부터 두 달 여 동안 ‘방송3사 저녁종합뉴스 일일 모니터 브리핑’을 해왔다. KBS 정연주 사장 축출, YTN ‘낙하산 사장’ 투입 등 이명박 정권이 노골적으로 방송장악을 시도하는 상황에서, 지상파 방송사들이 공정한 보도를 하는지, 권력 감시 기능에 충실한지, 비판적 의제 설정을 제대로 해나가는지 등을 모니터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방송사들, 특히 KBS와 MBC가 최소한 그동안 해왔던 정도의 권력 감시와 비판, 의제설정 기능을 해주기 바랐다. 지난 정부 시절 그나마 KBS와 MBC가 권력 감시와 의제설정 기능을 확대, 진전시켜왔고, 이런 성과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KBS, MBC는 이런 기대를 저버렸고, 방송3사가 권력 감시와 비판, 의제설정 기능에서 ‘하향 평준화’ 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KBS는 정부에 불리한 내용을 보도하는 데 있어 SBS 보다 몸을 사리거나 ‘축소보도’ 하는 경우가 많았다. MBC는 전반적으로 KBS, SBS 보다 ‘그나마 낫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과거의 보도 태도와 비교하면 ‘후퇴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두 달 여 동안 일일브리핑 결과, 방송3사 보도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은 눈에 띄게 줄었으며 정권에 불리한 내용이나 민감한 현안은 아예 다루지 않거나 ‘논란’, ‘공방’으로 처리하는 경향이 늘었다. 이런 예들은 수없이 많은데, 민주주의의 기초를 흔드는 정부 여당의 행태와 정책에 대해서조차 ‘공방보도’, ‘축소보도’ 경향이 심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최시중 방송통신 위원장과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 김회성 국정원2차장이 8월 11일 ‘비밀 회동’을 갖고 방송정책을 논의한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방송3사는 이를 정치 공방, 정쟁으로 다뤘다. 유인촌 문화부 장관의 욕설파문에 대해서도 여야 정치 공방으로 접근해 ‘문화부 장관이 욕설까지 하며 기자들의 공식적인 취재를 막았다’는 본질을 흐렸다. 심각한 여론 통제법인 이른바 ‘사이버 모욕죄’ 역시 한나라당과 야당의 공방으로 몰고 갔다.
이밖에 금산분리 완화, 부동산 규제 완화, 정부의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요구, 국제중학교 설립, 수도권 규제완화 등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키고 균형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정책, 백년대계를 망가뜨릴 우려가 큰 정책,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정책들에 대해서도 정부 발표를 단순보도하거나 논란을 단순 나열하는 방식으로 보도했다.
특히 KBS의 경우는 이와 같은 경향이 두드러졌으며, 정권에 불리한 내용을 아예 보도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KBS는 ‘연속기획보도’가 확연하게 줄었는데, 지난 9월과 10월에는 치매와 우울증에 대한 기획보도가 전부였다.
반면 대통령 동정보도는 늘었다.
10월 한 달 동안 방송3사의 대통령 동정보도를 살펴 본 결과 KBS와 MBC가 대통령 동정보도를 내보낸 날은 20일, SBS는 18일에 이르렀다. 보도 내용도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 국회 시정연설 안내, 국군의 날 등 행사 참석 등 특별한 내용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통령의 라디오 주례 연설은 그 방식과 절차, 내용에 대해 비판의 소리가 높았지만 방송3사는 ‘대통령이 라디오 연설을 하기로 했다’, ‘대통령이 라디오 연설을 이런 내용으로 했다’는 무비판적 보도에 머물렀다. 또 10월 31일 이명박 대통령이 한미재계회의 참석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노조의 위법·불법 사례가 발견되면 기업보다 정부가 문제 삼을 것’이라는 발언을 해 ‘정부가 나서 노동탄압을 하겠다는 것’이냐는 비판이 거셌다. 그러나 KBS와 MBC는 대통령의 발언을 무비판적으로 전달하는데 그쳤다.
KBS는 ‘대통령 띄워주기’ 경향도 보였다. 일례로 지난 10월 대통령이 은행지원책과 함께 ‘은행들의 자구노력이 부족하다’고 질타한 뒤 은행장들이 자구책을 내놓자, KBS는 이를 첫 꼭지로 보도했다. 정부가 내놓은 은행지원 정책이 얼마나 적절한 것인지, 대통령의 ‘은행 탓’ 발언이 얼마나 타당한지 꼼꼼하게 분석 평가하는 보도는 없었다.
이처럼 지난 두 달 여간 방송3사의 보도는 ‘정권 눈치 보기’, ‘몸 사리기’로 나아갔으며, 그 중에서도 KBS의 퇴행적 행보는 두드러졌다. 물론 방송3사 보도 가운데에는 간혹 정부 정책을 비판적으로 다루는 보도가 나온다. 문제는 오히려 이런 보도들이 전체 경향에서 ‘튀는’ 느낌을 줄 정도로 전체 보도 경향이 ‘무비판’적이라는 것이다. 방송사 보도국이 정권의 눈치를 살피며 몸을 사리는 상황에서, 몇몇 ‘겁 없는’ 기자들이 ‘개인기’를 발휘해 비판적인 보도를 내놓고 있는 상황이 아닌지, 이런 보도들마저 안팎의 압력으로 곧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크게 걱정된다.
지난 독재정권 시절 방송은 국민의 불신을 받아왔다. 수 십 년에 걸친 사회전반의 민주주의 진전, 그리고 양심적인 방송인들의 방송민주화투쟁이 없었다면 방송사들은 지금과 같은 영향력과 신뢰를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어렵사리 쌓아온 영향력과 신뢰도를 방송사들은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싶은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권을 맞아 방송3사들이 ‘정권 눈치 보기’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은 나왔지만, 이토록 빠르게 무너지는 데에는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우리는 방송3사들의 이와 같은 보도 행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할 뿐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해 나갈 생각이다. 이미 시청자들은 방송 보도의 ‘변질’을 느끼고 있으며, 특히 노골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는 KBS에 대해서는 공분(公憤)을 쌓아가고 있다. KBS가 ‘영향력 1위, 신뢰도 1위’의 지위를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새로운 매체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시청자의 신뢰마저 잃어버린다면 무슨 경쟁력을 가질 것인지 심각하게 자성해 보기 바란다.
이명박 정권은 5년이지만, 잃어버린 국민들의 신뢰와 사랑을 회복하는 데에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방송3사 보도국이 이 점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지금이라도 이명박 정권 눈치 보기에서 벗어나 제 역할을 찾아가기를 촉구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