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 관련 주요신문 사설에 대한 논평(2008.11.6)
등록 2013.09.25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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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변해도, 조중동은 요지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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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의 당선에 대한 세계의 반응은 ‘기대’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초강대국 미국에 ‘첫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는 사실 자체가 인종주의 극복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지만, 오바마에게 거는 미국 안팎의 기대는 그 이상이다.
그는 선거 캠페인 기간 내내 ‘변화’를 내세우며 경제, 외교, 복지 등 주요 분야에서 공화당과 차별화된 정책을 내놓았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가 전 세계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바마 정부는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지, 특히 경제력과 군사력을 앞세워 일방주의적 국제관계를 맺어온 ‘오만한 미국’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치, 경제, 군사적인 면에서 미국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우리의 경우는 오바마의 당선이 가져올 여러 가지 변화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오바마와 민주당이 대북 문제에 있어 ‘대화를 통한 해결’을 선호한다는 점, 한미 FTA 협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라는 점 등은 대북 강경기조를 고집하고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채근했던 이명박 정부에게 대북, 대미 정책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전문가들은 미국 민주당의 집권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대미, 대북 관계를 조언해왔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대북 강경기조로 일관해 남북관계가 파탄에 이르는 결과를 낳았다. 또 한미 FTA 비준을 약속받겠다며 ‘지는 해’라 할 수 있는 부시 정부에게 미국 쇠고기 수입조건을 완화해줘 국민적 저항을 초래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가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미국의 정권 교체를 남북 관계 개선의 기회로 삼지 못한다면 앞으로 한반도 문제에서 소외될 우려가 크다. 그러나 모든 분야에서 구시대적 마인드를 드러내는 이명박 정부가 달라지는 국제정세에 얼마나 기민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우려가 앞서는 게 사실이다. 그동안 대북 강경기조를 부추겨온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보수신문들의 달라지지 않은 행태도 이런 우려를 키운다.

‘사설’ 대신 ‘설명문’ 써낸 조선일보
6일 주요 일간지들은 오바마 당선의 의미와 한국 정부의 과제를 사설로 다뤘다. 조선일보도 <오바마의 미국, 오바마와 세계>라는 제목의 사설을 내놨다. 밋밋한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이 사설은 ‘사설’이라기보다 마지못해 써 내려간 한 편의 지루한 ‘설명문’이었다.
사설은 ‘흑인 대통령’ 탄생이 미국 사회에 갖는 의미를 건조하게 설명하는 데 사설의 절반을 할애했다. 이어 이번 선거 결과가 “지난 8년간 미국을 이끌어온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 정권에 대한 미국인들의 절대 평가”라면서도, 공화당 정권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하게 언급하지 못했다. 그저 “일방주의 외교가 덧나게 했던 세계와의 불협화음”, “‘선제공격(preemptive strike)’ ‘예방전쟁(preventive war)’이라는 용어가 빚어낸 저돌적 미국 이미지” 따위의 애매한 표현으로 슬쩍 넘어가 버렸다.
물론 조선일보도 오바마의 당선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 언급하긴 했다. “오바마 당선자의 등장은 한국에도 새로운 도전”이란다. 그러나 ‘새로운 도전’의 의미는 오바마가 한반도 문제에 전문가가 아니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조선일보는 “상원의원 3년10개월이 국정(國政)을 다뤄 본 경험의 전부인 그는 한국과 한반도 문제도 다뤄 본 경험이 없다”며 한국 및 한반도와 관련한 오바마의 발언들을 몇 가지 나열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는 한·미 동맹에 대한 종합적 재검토 과정과, 미·북 대화와 6자회담의 재조정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 그리고 한·미 FTA의 완결 문제 등에 대한 한·미 논의의 대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당부를 하는 데 그쳤다.
한마디로 조선일보 사설은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한반도 문제를 잘 모르니 한국 정부가 대비를 잘 하라’는 안일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다.

중앙일보, ‘경제도 북핵도 한미동맹 우선’ 당부
조선일보가 ‘오바마의 당선이 탐탁지 않다’는 감정을 쓰나 마나 한 사설로 드러냈다면, 중앙일보는 새롭게 등장한 오바마와 민주당 정부를 추켜세우며 ‘경제도 북핵도 한미동맹을 우선해달라’고 당부하는 사설을 썼다.
중앙일보는 두 개의 사설을 썼는데, <역사를 바꾼 미국의 선택>에서는 “오바마 후보의 당선은 개인과 소속 정당인 민주당의 승리를 넘어 미 국민의 승리요, 미국 민주주의의 승리”라며 “오바마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면서 우리는 미국과 세계를 위해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과감하게 변화를 택한 미 국민의 용기 있는 선택에 경의를 표한다”고 미국 국민과 오바마를 한껏 추켜세웠다. 조선일보가 오바마 당선에 대해 어떤 감성적인 표현도 쓰지 않으며 긍정적인 평가에 인색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오바마의 당선을 이렇듯 축하하려다보니 공화당 정부의 실정을 술술 쏟아내기도 했다. “무모한 전쟁의 후유증으로 유일 초강대국의 권위는 실추되고, 남을 의식하지 않는 오만과 독선으로 민심을 잃었다”, “공화당 정부는 시장 만능주의에 근거한 감세와 규제완화, 작은 정부를 절대선으로 신봉해 왔다”는 등의 비판이 등장했다. ‘무모한 전쟁’을 일으킨 미국의 파병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탈규제’, ‘감세’, ‘작은 정부’가 선(善)이라고 몰아왔던 중앙일보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주장들이다. 사설은 이런 주장을 늘어놓은 후 오바마에게 “통합의 리더쉽으로 미국민과 세계의 기대에 부응해 달라”며 맺었다.
이어 또 다른 사설 <한반도의 긍정적 변화를 기대한다>에서는 구체적으로 한반도 정책과 관련한 ‘간곡한 당부’를 내놨다. 중앙일보는 오바마와 민주당의 대북 정책이 “대북 압박 일변도가 아니라 북·미 관계를 개선해서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내겠다는 입장”이라며 이것이 “남북한 모두에 새로운 외교적 도전”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오바마 정부가 북미 관계를 개선하더라도 “한·미 관계에 심각한 부담을 주는 선에서 이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당부했다. 한미 FTA에 대해서도 “한·미 동맹 강화라는 대국적 측면에서 접근해주길 바란다”며 예의 ‘한미동맹’을 들고 나왔다. 반면 대북 강경기조로 일관해 왔던 이명박 정권에 대해서는 별다른 주문이 없다.
미국을 향해 ‘대국인 미국이 한미동맹을 고려해 달라’는 중앙일보의 이런 ‘읍소형’ 접근이 국익에 따라 냉정하게 움직이는 국제관계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미국의 정권교체를 남북관계 개선의 호기로 삼아 국익을 키울 적극적인 생각을 하기는커녕 ‘북미 관계 진전의 속도를 조절해 달라’는 식의 주문이 국익에 어떤 도움이 되는 것인가? 미국발 금융위기의 불똥이 어떻게 튈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한미 FTA 체결의 영향을 면밀하게 검토해보지도 않고, 무작정 ‘한미동맹을 위해 한미 FTA를 그대로 체결해달라’고 채근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동아일보, ‘오바마 시대’ 왔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대로 가면 된다?
동아일보의 사설은 어정쩡하다. 공화당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고 오바마의 당선을 추켜세우면서, 오바마 정부에 대한 불안감도 감추지 못했다.
사설은 “조지 W 부시 정권 8년간 피로가 누적됐다. 9·11테러와 이에 대한 미국의 일방주의적 대응은 그 정점(頂點)”이라며 “미국은 국제사회와의 충분한 소통·공감 없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뛰어들었고 그 후유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부시 정부를 비판했다. 미국 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방만한 미국식 자본주의의 불행한 중간 결산”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세계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염증을 내면서도 ‘약한 미국’이 초래할 혼란과 비효율을 원하지 않는다”는 게 동아일보의 주장이다.
또 오바마가 “북한과 직접 대화할 의사를 밝혔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북-미 간의 어떤 대화도 북핵 폐기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고 전제를 깔았다. 역시 이명박 정부가 대북 강경기조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오바마 정부가 한미FTA 재협상 요구를 할 수 있다며 “정부와 한나라당이 최근 ‘우리라도 먼저 비준하자’고 나선 것도 그래서다. 초당적인 대처가 긴요하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막기 위해 국회가 한미 FTA 비준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정부 논리를 똑같이 반복한 것이다.
이렇듯 동아일보는 남북 관계든 경제 문제든 이명박 정부의 행보를 합리화하는 주장을 펴더니 “오바마 시대가 가져올 미국 및 세계의 변화에 차분하게 대처하면서 한미관계를 국익(國益) 극대화의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한다”는 원론적인 말로 사설을 맺었다.

반면, 한겨레신문은 <새 출발 요구되는 이명박 정부 대북·대외 정책>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이명박 정부가 대북 강경정책을 청산하고 남북 관계가 북미 관계보다 앞서가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금까지처럼 “미국 내 강경파와의 공조에 초점을 둔 한-미 동맹 강화”나 “북한 길들이기”에 매달려서는 변화되는 북미 관계에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또 “비현실적인 것으로 드러난 사실상의 한-미-일 삼각동맹 구축 시도는 중단돼야 한다”며 “실체가 모호한 한-미 전략동맹에 집착한 나머지 아프가니스탄 재파병과 미사일 방어체제 참여,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 참여 확대 등에 동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미 FTA 역시 서두르지 말 것을 당부했다.
경향신문 역시 사설을 통해 “한·미동맹을 금과옥조로 여겨온 이 정부에 미국의 정권교체는 새로운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북미 관계 변화에 적극 대응할 것을 촉구했다. 사설은 “오바마 당선자가 독재국가 지도자와도 직접 대화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북·미 관계가 전보다 빨리 진전할 가능성이 높다”며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을 우려하기 보다 “미국의 정권교체를 한·미 관계 개선의 계기로 적극 활용하기 위한 지혜를 짜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미 FTA도 가변성이 한층 높아진 만큼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이런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동안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보수신문들은 부시 정부의 무모한 침략 전쟁을 비판하기는 커녕 한국이 여기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며 파병을 앞장서 외쳤다. 또 ‘시장만능’, ‘탈규제’, ‘감세’, ‘작은정부’를 주장하며 재벌과 부동산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부추겨왔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고, 미국인들이 오바마를 선택하는 상황이 닥치자, 이제야 수구보수신문들은 마지못해 공화당의 실정과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일부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수구보수신문들은 부시 정부와 네오콘, 그리고 이들만 바라본 이명박 정권의 대북 강경정책의 잘못은 끝내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수구보수세력, 조중동이 그토록 믿었던 부시 정부도 자신들의 이해 관계를 따지며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했다. 이제 새롭게 등장하는 민주당 정부가 북한과의 적극적인 대화를 시도할 것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런데도 조중동은 대북 정책 변화와 남북 관계 개선 필요성에 대해 눈감고, ‘한미동맹’에 대한 낡은 마인드로 미국 정부를 향해 ‘한미동맹’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위기를 맞아 미국인들은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정도의 ‘변화’를 선택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새로운 미국의 변화를 주창하는 오바마 당선자와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를 제기하는 이명박 정부의 비전이 닮은 꼴”이라는 자평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국민들이 경험하는 이명박 정권의 ‘변화’는 우리 사회를 10년 전으로 되돌리는 ‘퇴행’일 뿐이다. 미국이 변화하고 북미 관계가 변화하는 데 이명박 정권이 이 변화에 얼마나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국익을 챙길 수 있을지, 또 갈수록 시대에 뒤떨어지는 무능한 ‘메이저신문’들은 무슨 엉뚱한 주장을 늘어놓을지 답답할 따름이다. <끝>

 



2008년 11월 6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