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입’만 쫓는 조중동… ‘내란음모’ 혐의 단정
28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당직자․시민단체 활동가 등 10명이 형법상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압수수색을 받았다. 국정원과 검찰이 제시한 압수수색 영장에는 이 의원이 통합진보당 간부들과 함께 ‘RO(Revolution Organization)’라는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며 남북간의 전쟁을 대비해 ‘유류시설 등 기간시설 위치 파악하자’는 등의 주장을 펼칠 것으로 되어있다. 이로 인해 이 의원 등은 ‘내란음모’ 수사 대상에 올라 파문이 일었다.
‘내란죄’는 형법 87조에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자”로 규정하고 있다. ‘내란 음모죄’는 내란을 모의한 혐의에 적용한 것으로 지난 1980년 전두환 정권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것이 마지막이다. 당시 신군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하는 과정에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기획한 바 있다. 군부독재 시절 공안정국을 조성하기 위해 등장했던 ‘내란음모죄’가 33년만에 부활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과 국정원이 ‘공안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한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 있는 조처 등을 요구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9월 정기국회에서 국정원 개혁을 위한 대수술이 예고된 시점에서 벌어진 수사라 논란은 더욱 거세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는 “부정선거의 실체가 드러남에 따라 초유의 위기에 몰린 청와대와 해체 직전의 국정원이 유신시대의 용공조작극을 21세기에 벌인다”며 “국정원의 범죄에 대한 진실이 드러나고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지라는 ‘촛불의 저항’이 거세지자 촛불시위를 잠재우려는 공안탄압”이라고 반발했다.
전국 민주노동조합총연맹‧한국진보연대‧통합진보당‧정의당 등 20여 개의 시민사회단체와 진보정당은 ‘국정원 내란음모조작 공안탄압 규탄 대책위(가칭)’을 결성하고 국정원의 내란음모죄 수사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29일 모든 주요일간지는 국정원의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죄’ 공개수사를 1면 헤드라인으로 뽑았다. 이어 2-5면에 걸쳐 10여건의 기사를 추가했고, 신문사마다 사설을 통해 ‘내란음모죄 수사’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한겨레신문의 경우, 국정원 수사 상황에 대한 기사 3건, 수사 배경과 전망을 분석하는 기사 2건, 여야 반응 기사 3건 등을 차지한 데 비해, 조중동과 경향신문은 기사의 절반 이상을 수사상황을 전하는데 할애했다. <표1 참조>
■ 조중동, 국정원 ‘입’만 따라간 기사 쏟아내
… 혐의 사실 단정한 제목…대부분 ‘익명의 취재원’의 발언 인용한 것
조중동은 ‘따옴표 저널리즘’의 극치를 보여줬다. 조중동은 국정원의 주장을 그대로 ‘기사제목’으로 담았는데 <“이석기 의원, 총기 마련해 국가시설 파괴 모의”>(조선, 1면), <이석기 참석 회의서 “결정적 시기 무장봉기”…출국금지>(중앙, 3면) <“이석기, 통신-철도-가스시설 파괴 모의”>(동아, 1면) 등으로 뽑아 기정사실화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내용’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중동은 ‘국정원 관계자에 따르면~’, 혹은 ‘알려졌다’, ‘전해졌다’는 서술어를 사용하며 국정원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쓰기 하면서 ‘내란음모’에 힘을 실었다. 또한 ‘익명의 취재원’의 발언은 취재원 보호 등의 목적을 수반함과 동시에 기사의 신뢰성을 위해 최소화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조중동은 익명의 취재원을 동원해 이 의원이 도주한 것으로 몰아가거나 확인되지 않은 국정원의 주장이 모두 진실인 것처럼 기사화 했다.
익명의 취재원을 동원하는 행태는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에서도 일부 나타났다.
△ <표2> 수사 상황 관련 주요일간지 기사 제목
조선일보 1면 <“이석기 의원, 총기 마련해 국가시설 파괴 모의”>는 ‘국정원 관계자’를 등장시켜 “이들의 내란 음모 혐의 등을 입증할 5건의 녹취록이 확보됐다”며 “녹취록엔 ‘RO’의 총책인 이 의원이 조직원들을 교육한 내용과 핵심 조직원들의 회의 및 대화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2면 <“이석기, 압수수색 눈치채곤 ‘아’하고 자리 떠”…오피스텔서 1억 돈다발>에서도 ‘수사관계자’의 말을 빌어 “그 사람(이석기 의원)이 전혀 국회의원 같지 않은 행색을 하고 현장에 나타났다가 상황을 눈치채자 ‘아’ 하며 자리를 떴다”고 전했다. 또 “체포영장 없이도 압수 수색 진행 중 구체적인 범죄 증거가 나올 경우 그 자리에서 바로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도 있다”, “이 의원이 이 같은 알고 도주했을 수 있다”는 ‘(익명의) 공안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의 말을 전해 이 의원이 해당 혐의로 ‘도주’한 것인양 몰아갔다.
중앙일보도 1면 <“애국가 거부 이석기, 적기가는 불렀다”>에서 ‘수사당국의 한 관계자’라는 익명의 취재원이 “경기동부연합 인사들이 북한과 직접 접촉했다는 단서를 잡고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한 것이나 “이석기 의원은 당 공식행사에서 애국가 제창을 거부해 물의를 일으켰는데 북한 군가인 적기가를 제창했다는 것은 이들의 이념을 잘 드러내주는 증거”라는 발언을 실었다.
동아일보 1면 <“이석기, 통신-철도-가스시설 파괴 모의”>는 “국정원과 검찰에 따르면 RO는 남북한 간의 전쟁이 벌어질 경우 KT혜화지사와 분당인터넷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국가 통신시설을 파괴하고 군수물자 이동과 민간인 이동을 차단, 지연시키기 위해 경부선 호남선 등 주요 철도 시설을 파괴할 계획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의 미군기지 위치와 규모 등 현황파악이 필요하다는 점을 전체 회의에서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과 조직원들은 전체 회의 때마다 북한의 군가이자 혁명가요로 알려진 ‘적기가’를 제창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하면서 발언의 출처를 불분명하게 처리했다.
경향신문은 3면 <국정원, “총기 준비” 녹취록 확보…김재연 의원도 내사>에서 “국정원 등의 말을 종합하면 산악회 형식을 띤 ‘RO’라는 조직은 004년 쯤 이 의원의 주도로 결성됐다”며 “이 조직에는 과거 민혁당 사건 관련자와 통합진보당 내 경기동부연합으로 분류되는 인사 중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 출신이 여럿 포함돼 있다”,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도 이 조직에 소속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또 “이 조직은 엄격한 심사를 거켜 구성원을 선발했고, 이 조직이 통합진보당 내 경기동부연합을 사실상 움직인 것으로 국정원은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겨레신문은 2면 <국정원 영장에 ‘내란․통신파괴․인명살상’ 담겨>에서 “구체적인 혐의 내용에 대해서는 국가정보원이나 검찰이 공식적인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면서 국정원이 압수수색 영장에 적시한 혐의를 중심으로 보도했다. 기사 말미에 “국정원이 기본적인 범죄 사실관계를 특정해서 검찰과 협의를 해왔다”, “공안사건은 압수수색에 들어갈 때 범죄 구성이 될 정도로 준비해서 진행한다”는 ‘익명의 검찰관계자들’의 발언을 전한 뒤 “국정원에서 이미 상당한 자료 등을 확보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 <한겨레>․<경향> “왜 하필 지금 수사?” 미묘한 시기 의문 제기
… “남재준 국정원의 행태를 보면 순수하게 봐주기 힘들다” 꼬집어
- <조선><동아> “‘주한미군 철수’ 주장하는 통진당은 북한 대변인” 마녀사냥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미묘한’ 수사시기에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 수사에 나선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한겨레신문은 4면 <개혁 내몰린 국정원, ‘종북’ 장부 꺼내 존재이유 과시?>라는 기사에서 “국정원은 9월 정기국회에서 수술이 예약돼 있다”며 “이른바 ‘셀프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지만, 여야는 큰 범위에서 국정원 개혁에 공감하고 있는 상태”, “야당이 국정원 개혁을 내건 원외투쟁을 이어가고, 종교계․학계의 시국선언과 일반 시민들의 촛불집회가 계속되는 상황”을 지적하며 “국정원 개원이래 가장 큰 위기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은 국면”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 때문에 국정원이 국면전환을 통한 위기 탈출을 위해 언제든지 걸면 걸 수 있는, 통합진보당과 경기동부라는 ‘손쉽고 약한 고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고 전했다.
사설 <미묘한 시점에 이뤄진 통합진보당 수사>에서 “실제로 내란 음모에 해당하는 수준의 범죄 행위가 있었다면 충격이 아닐 수 없다”면서도 “그러나 제도 정치에 진입한 국회의원과 정당 간부들이 과연 그런 행위를 했을지 쉽사리 믿기지 않는”다며 “지금 단계에서 섣불리 사건의 진위를 예단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한편 사설은 공안당국에 대단한 중범죄에 속하는 ‘내란 음모’에 해당하는 범죄행위가 실제로 있었는지, 왜 하필 지금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에 들어갔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저간의 사정과 과거 국정원의 행태를 종합해보면 이번 수사를 순수하게 봐주기 힘든 측면이 적잖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사설 <국정원의 내란죄 수사 지켜보겠다>도 철저한 수사를 당부하면서도 한겨레신문과 마찬가지로 ‘수사 시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남재준 원장의 국정원이 고비 때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하는 등 이슈를 만들어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전환용이라는 의심을 받을 만한 구석이 없지 않다”고 꼬집었다. 사설은 “사태가 제 아무리 중하다 한들 ‘신 매카시즘’이 돼서는 안된다”며 “이 같은 후진적 사건에 대한 수사야말로 우리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재는 척도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조중동은 사설에서 ‘수사 시기’에 대한 논란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논란이 없도록 ‘수사 허점을 보이지 말라’며 훈수를 놓기도 했다. 특히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통합진보당은 원래 종북’, ‘대한민국 타도를 이념으로 삼는 사람들’이라는 식의 ‘마녀사냥’을 이어갔다.
조선일보 사설 <충격적인 통합진보당 이석기 내란 음모 혐의>는 이석기 의원의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과 함께 “‘경기동부연합’ 출신들 상당수가 간첩 사건에 연루돼 이름이 오르 내린 사람들”이라면서 “끊임없이 대한민국을 부정하며 타도 대상으로 삼았던 사람들”이라고 단정했다. 또 “우리 사회에선 이런 사람들이 ‘대한민국 타도’라는 자신의 이념을 바꿨다는 아무런 고백이나 선언도 없이 그대로 나라의 심장인 국회로 진입하고 있다”면서 통진당이 ‘주한미군 철수’와 ‘국보법 폐지’를 주장한 것에 대해 “북한의 대변자 노릇”이라고 힐난했다.
동아일보 사설 <통진당 이석기의 내란음모 혐의, 북 연계 여부 밝혀야>도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이 의원의 국보법 위반 전력을 언급하며 “내란음모 혐의를 받는 사람이 어떻게 국회의원까지 됐는지 아연할 지경”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번 사건을 사실로 확정하는 것을 넘어 북한과의 연계성을 주장하며 “남조선 애국역량이란 곧 종북 세력을 의미하는 것”, “북한이 그동안 적화 통일을 위해 남한 내 정당이나 사회단체 등과 연계를 맺는 전술을 치밀하게 구사했음을 알수 있다”고 못 밖았다. 또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해체 등을 내세운 통진당의 강령 자체가 대한민구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며 “내란음모 사건이 사실로 드러나면 통진당의 해산까지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 사설 <‘이석기 내란음모’ 신속․정확하게 진상 밝혀라>는 “그간 경기동부연합의 핵심인물인 이 의원을 놓고 ‘종북’ 논란이 계속돼 왔다”, “그러나 무장봉기와 방송시설 장악, 통신시설 무력화를 모의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 문제”라면서 ‘정확하고 신속한 혐의 확인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국정원과 검찰에 ‘사안을 과도하게 부풀리는 일이 없도록 유념’하고 ‘사회적 분란을 키우거나 인권침해 시비를 빚지 않게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끝>
2013년 8월 29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