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감사원 6급 이하 직원들로 구성된 ‘감사원 실무자협의회’가 내부 전산망에 ‘어쩌다 감사원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감사원의 정치적 독립성 훼손을 자성하고 쇄신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이들은 최근 불거진 쌀직불금 감사의 문제 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감사원의 ‘청부감사’, ‘정치감사’ 행태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들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실시된 공기업 감사, KBS감사 등에 대해서 ‘죽은 권력에는 강하고 산 권력에는 약한 감사원’, ‘영혼없는 감사원’이라는 비판이 쏟아졌고, 그때마다 변명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했다”며 “과거 잘못된 부분에 대해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고 감사원의 독립성, 중립성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천명”할 것과 “감사원 내 과감한 인적쇄신”을 주장했다.
이와 같은 내부 목소리는 감사원의 정치적 독립성 훼손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보여 준다. 사실 이명박 정부가 법적 임기가 보장된 전윤철 감사원장을 압박해 사퇴시키고, 새 감사원장을 앉힌 것 자체가 감사원의 정치적 독립성을 흔드는 일이었다. 전윤철 감사원장이 사퇴한 후 감사원이 이명박 정부의 코드를 맞춰 일사천리로 진행한 KBS 감사, 공기업 감사 등에 대해 감사원 내부 공무원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번에 알려진 ‘감사원 실무자협의회’의 주장은 그동안 누적된 불만이 터져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감사원 공무원들을 집단적으로 반발하게 만든 ‘독립성 훼손’의 실체를 명명백백 밝히고, 감사원의 정치적 독립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이념과 정파를 떠나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감사원 직원들의 자성과 쇄신 목소리를 다루는 조선, 중앙, 동아일보의 보도행태는 그야말로 ‘정략적’이다.
22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신문이 감사원의 독립성과 관련한 사설을 실었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감사원 직원들의 자성과 쇄신 목소리가 오직 ‘쌀직불금 감사’ 때문인 것처럼 몰아가는 한편, KBS 감사 등 이명박 정부 아래 벌어진 ‘코드감사’와 이에 대한 감사원 직원들의 비판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아예 사설을 쓰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감사원 내부에서 나오는 반성의 소리>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사설은 “감사원의 하위직 직원들이 ‘쌀직불금 사태’와 관련해 뼈아픈 자성의 소리를 쏟아냈다”고 시작된다. 감사원 독립성 훼손에 대한 내부 비판이 오직 ‘쌀직불금 감사’ 때문인 양 사태를 호도한 것이다.
이어 사설은 감사원 직원들이 올린 글의 일부를 인용했는데, KBS 감사나 공기업 감사에 대해서는 쏙 뺐다. 그러면서 “‘코드감사’ 의혹이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감사원 설립 이래 관행처럼 계속돼 왔다”며 김영삼 대통령 시절 ‘율곡사업 특감’과 참여정부 시절 ‘쌀직불금 감사’를 예로 들었다.
한마디로 중앙일보는 ‘감사원의 독립성 훼손은 고질적인 문제’이며 ‘이번 감사원 직원들의 내부 비판은 참여정부 시절에 이뤄진 쌀직불금 감사 때문에 터져나온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 아래 벌어진 ‘코드감사’는 ‘감사원의 고질적 문제’로 덮어버리고, 감사원 직원들의 내부 비판은 ‘참여정부 탓’으로만 돌리겠다는 의도다.
동아일보는 <감사원이 ‘영혼’이 있어야 나라가 바로 선다>라는 제목으로 사설을 썼다.
사설은 오직 ‘쌀직불금 감사’의 문제점만 늘어놓았으며, 감사원 직원들의 내부 비판은 단 한 문장으로 언급했다. “감사원 내부에서조차 ‘감사원이 권력에 휘둘리고 있다’거나 ‘영혼 없는 감사원’이라는 자책의 말이 무성하다”는 것이다. 역시 감사원 직원들이 제기한 KBS 감사, 공기업 감사의 문제는 쏙 빼버렸다. 그러면서 “엄정한 자체 감사를 통해 스스로 쌀 직불금과 관련한 모든 의혹을 밝혀내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는 요구를 결론으로 내놓았다.
쌀직불금 부당 수령을 둘러싼 감사원 감사의 의혹이 말끔하게 규명돼야 한다는 동아일보의 주장은 그 자체로 옳다. 쌀직불금 부당 수령의 진실을 밝히는 일은 정파가 유리하냐 불리하냐를 따져서도 안된다. 그러나 조중동이 감사원 직원들의 내부 비판을 오직 ‘쌀직불금 감사’ 때문인 양 몰아가는 것은 명백한 왜곡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감사원이 권력에 얼마나 휘둘려 왔는지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명박 정권은 법적 임기가 보장된 전윤철 감사원장에게 압력을 행사해 결국 그를 물러나게 했다. 전 감사원장이 물러난 감사원은 노골적으로 이명박 정권의 KBS 장악 시도에 들러리를 섰다. 이른바 ‘뉴라이트’ 세력이 KBS에 대한 국민감사청구를 신청하자 감사원은 이를 받아들여 졸속 감사를 벌이더니 법적 근거조차 찾을 수 없는 ‘정연주 사장 해임권고’까지 내렸다. 공기업 임원들을 ‘이명박의 사람들’로 물갈이하기 위해 공기업 감사를 압박 수단으로 악용했다는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조중동은 이명박 정권 아래 훼손되는 감사원의 정치적 독립성을 비판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중동은 정권의 KBS 장악 시도와 정연주 축출에 힘을 실었고, 공기업 사장과 공공기관장을 ‘내 사람’으로 물갈이 하겠다는 이명박 정권의 행태에 눈을 감은 채 공기업의 비효율성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그런 조중동이 감사원 직원들의 내부 비판마저 모른 척 하거나 그 취지를 왜곡하고 있으니, 양심적인 하위직 공무원들의 자정 노력에 재를 뿌리는 격이다.
국민들은 이번 감사원 직원들의 내부 비판을 접하며 ‘감사원에 일말의 희망이 남았구다’라는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적어도 감사원의 하위직 직원들은 ‘영혼없는 집단’이라는 외부 비판에 자성과 쇄신의 목소리라도 냈다. 그러나 독자들의 비판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이명박 정권 두둔에 ‘올인’하는 조중동은 그야말로 ‘영혼없는 집단’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