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조선일보가 ‘고교별 서울대 합격자 수’까지 공개하며 고교서열화와 사교육 경쟁을 부추기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이날 1면에 <올 서울대 합격 22%가 특목고>라는 기사를 실었다. 서울대가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에게 제출한 ‘2008학년도 서울대 합격자 출신 고교별 현황’을 근거로 어떤 고교가 서울대 합격자를 많이 냈는지 소개한 기사다.
6면에는 ‘올해 서울대 합격자 출신 고교별 현황’을 좀 더 자세하게 다룬 관련 기사를 실었다. <전국 886개 고교가 서울대 합격자 1명이상 배출/특목·자사高 뺀 상위 10곳 중 7곳이 강남권 고교>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특목고의 쏠림현상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두드러졌다”고 시작했으나, 쏠림현상의 문제점과 대안을 지적하기는커녕 특목고 등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홍보하는 내용이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일보는 표까지 만들어 고교별 서울대 합격자 수를 자세하게 소개했다. 조선일보는 두 개의 표를 실었는데, 첫 번째 표에는 최고 87명에서 15명까지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한 ‘상위’ 23개 고교의 이름과 각각의 합격자 수가 나와 있다. 두 번째 표에는 첫 번째 표에 들어가지 못한, 14명에서 4명까지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한 고교들의 이름이 죽 열거되어 있다. 사실상 서울대 합격생 수를 기준으로 고교의 ‘등급’을 매긴 셈이다.
또 “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상위 10개 학교는 특목고 9곳과 자사고 1개교였다”, “서울 강남권 고등학교의 강세도 두드러졌다”, “자립형 사립고의 약진도 나타났다”며 표의 내용을 다시 한번 상세하게 설명했다. 조선일보는 이렇게 특목고와 특정 지역 고등학교의 서울대 합격자 수가 많다고 늘어놓은 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의 서울대 합격 현상이 이어진 것도 특징”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서울대에 1명 이상의 합격자를 낸 고교가 지난해 보다 3곳 늘었는데, 지방고교생들에게 유리한 ‘지역균형선발전형’을 통해 다양한 지역의 학생들이 서울대에 합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분석처럼 “서울대가 ‘지역균형 선발전형’을 도입해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해 학생 선발의 폭을 넓혔”는데도 특목고와 강남권 고교의 ‘서울대 합격자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면 이는 더욱 심각한 문제다.
사실상 ‘일반 고교에서 공교육을 충실하게 받는 것만으로는 서울대에 가기 어렵다’, ‘부모의 재력이 자녀의 학력을 결정하고 있다’는 교육 양극화의 경고 메시지가 아닌가?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이런 자료를 근거로 고교서열화를 부추기고 특목고의 ‘우월성’을 부각하는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가 ‘경쟁’과 ‘수월성 교육’을 강조해온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대놓고 고교의 ‘서열’을 매기고 공개하는 것은 조선일보의 ‘고교등급표’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수많은 고교의 학생들과 그 부모들에게 상처를 주는 지극히 비교육적인 행태다.
뿐만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 사교육 경쟁을 부추기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경쟁’도 아니다. 백번 양보해 우리 교육에서 ‘경쟁’을 강화해야 한다면 그 기준은 ‘부모의 재력’이 아니라 ‘학생의 능력과 의지’가 되어야 한다. 또 수월성 교육을 확대한다면 ‘능력과 의지의 경쟁’에서 우위에 있는 학생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사교육 경쟁을 통해 형성된 고교의 ‘서열화’를 부각하고 고착시켜 한층 치열한 ‘부모의 재력 경쟁’만을 부추기고 있다.
‘부자신문’ 조선일보가 부자들에게 유리한 교육 정책을 주장하고 지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부자신문’ 조선일보에게 꼭 한가지만은 당부하고 싶다. 사교육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지 못하는 학부모들과 학생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를 해주기 바란다.
노골적으로 학교의 ‘등급’을 매기고 서열화시키는 일만은 참아달라는 것이다. 이 정도의 ‘배려’는 조선일보 스스로의 앞날을 생각할 때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미래세대에게 조선일보가 어떤 신문으로 인식되고 있는지를 틈틈이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