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이명박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을 위해 ‘KBS 청부감사’에 나섰던 감사원이 오늘 5일 ‘맞춤형 감사 결과’를 내놨다. ‘부실경영’과 ‘인사권 남용’ 등을 이유로 정연주 KBS 사장의 해임을 KBS 이사회에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시나리오’에 한 치도 어긋남이 없는 결과다.
감사원의 ‘해임권고’는 말 그대로 초법적이다.
감사원은 감사원법 제32조 8항을 정 사장 ‘해임요구’의 근거로 들었다. 해당 조항은 “감사원은 임원이나 직원의 비위가 현저하다고 인정한 때에는 그 임용권자 또는 임용제청권자에게 해임요구를 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방송법은 KBS 사장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권’과 이사회의 ‘임명제청권’만 규정하고 있다. 공영방송 사장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면직’에 관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감사원은 해임권한도 없는 KBS 이사회에 정 사장을 해임하라고 초법적인 요구를 한 꼴이다.
설령 KBS 이사회가 사장 ‘면직’에 관한 권한이 있다 해도 감사원이 내놓은 감사 결과만으로 정 사장의 해임을 요구할 수 없다. 감사원은 정 사장을 해임해야 할 ‘현저한 비위’를 제시하지 못했다. ‘부실경영’과 ‘인사권 남용’ 등을 내세웠지만 이를 ‘현저한 비위’라며 공영방송 사장을 쫓아낸다면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은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정 사장의 대표적인 ‘비위’로 지적된 적자경영만 해도 그렇다. 정 사장 체제의 KBS가 엄청난 적자경영을 했다는 한나라당, 뉴라이트, 수구보수언론들의 주장은 해괴한 셈법에 따른 근거 없는 것임이 드러났다. 감사원도 감사결과 발표문에서 ‘2004년부터 2007년까지 KBS가 1,172억의 누적사업손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면서 이 부분에 각주를 달았다. 이 기간 “KBS의 누적적자는 99억원이나 법인세 환급액 및 추납액 등 사업 외 손익을 제외한 누적사업손실은 1,172억”이라는 것이다. 적자경영을 부풀리기 위해 “사업 외 손익을 제외”하는 방식으로 계산했다는 말이다.
감사위원들이 정권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알 수 있다. 감사위원으로서의 임무를 저버리고 정권의 방송장악 시도에 부역한 결정에 대해 국민의 심판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한편, 감사원 발표 직후 KBS 이사회 유재천 이사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감사원의 요구를 수용할지 여부를 다루지 않을 수 없게 됐다”며 “이사회가 사장을 직접 해임할 수는 없으니 감사원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해임권고 형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감사원의 초법적인 공영방송 사장 ‘해임요구’를 초법적인 ‘해임권고’로 수용하겠다는 뜻이다. 임기가 보장된 공영방송 사장을 쫓아내려 하다보니 ‘초법’이 또 다른 ‘초법’을 부르는 꼴이다.
이사회 날짜까지 베이징 올림픽이 개막하는 8일로 맞춘 것을 보면, 국민의 눈과 귀를 올림픽으로 돌려놓고 ‘해임권고’를 밀어붙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만약 ‘친한나라당’ 이사들이 초법적인 ‘해임권고’를 밀어붙인다면 국민들은 이들을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 행동대’로 규정하고 끝까지 심판할 것이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과 함께 끝까지 싸울 것임을 다시 한 번 밝힌다. 이명박 정부는 초법적인 방송장악 시도가 정권의 운명을 가름할 수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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