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정부의 수출자율규제 요청과 버시바우 대사 발언 관련 조중동 보도’에 대한 논평(2008.6.5)
등록 2013.09.2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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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 ‘자율규제’를 ‘재협상’으로 호도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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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정부가 미국 쇠고기 수출업자들에게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출자율규제’를 요청했다.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허용한 협정문은 손대지 않고 미국 업자들에게 ‘우리는 한국에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출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해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법적 효력을 가진 나라 사이의 협정문이 버젓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자율규제’는 아무런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WTO(세계무역기구)는 ‘긴급수입 제한조치 협정’에서 “WTO 회원국은 일체의 수출 자율 규제, 시장질서 유지협정, 또는 수출입에서의 기타 유사한 조치도 이를 추구하거나, 취하거나, 혹은 유지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WTO ‘농업협정’에서도 ‘수입량 제한, 자의적 수입허가, 수출 자율 규제 등을 취해서는 안된다’고 못박아놓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수출업자와 한국의 수입업자들이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출입을 하지 않겠다고 자율적으로 결의하면 이는 곧 WTO 협정 위반이 된다. 또 한미 양국 사이에 체결된 FTA 협정문에서도 ‘수출자율규제’는 금지 대상이다. 이른바 ‘자율규제’는 구속력도, 실효성도 없으면서 분쟁의 소지만 갖게 되는 셈이다.
더구나 미 쇠고기 수입개방의 문제는 30개월 이상 쇠고기만 수입하지 않으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광우병 위험물질 부위(SRM)’의 수입, 검역주권 훼손 등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그럼에도 정부가 30개월 이상 쇠고기만 들여오지 않으면 되는 양 ‘꼼수’를 쓰는 것은 국민에 대한 기만이다.

한편, 버시바우 주한미대사는 3일 외교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된 과학적 사실들에 대해 한국민들이 더 배우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 쇠고기는 안전한데 우리 국민들이 이런 과학적 사실을 무시하고 억지를 부린다는 말과 다름없다. 한국 국민을 얕잡아 보지 않는 한 외교관으로서 할 수 없는 말이다.
버시바우 대사는 지난달 21일에도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손 대표가 ‘30개월 미만 소만 수입해야 한다’고 말한 것에 대해 항의하는 외교적 결례를 저지른 바 있다.

정부의 ‘수출자율규제 요청’과 버시바우 대사의 망언이 나온 다음날인 4일, 조중동 등 수구보수신문들은 정부 방침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지적하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신문은 정부의 ‘자율규제’ 조치를 ‘재협상’이라고 호도하는가 하면, 버시바우 대사의 문제 발언을 인용조차 하지 않았다. 버시바우 대사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5일 발언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이마저도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동아·중앙일보, ‘자율규제 요청’을 ‘재협상’으로 호도
4일 동아일보는 1면 <이대통령 “30개월이상 수입중단 당연”>에서 부제를 “정부, 미(美)에 사실상 재협상 요청”이라고 달고, “정부가 3일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의 한국 수출을 보류해 줄 것을 미국 측에 요청하는 ‘사실상 재협상’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사설 <미국이 ‘30개월 이상 쇠고기’ 양보해야>에서도 정부의 ‘수출자율규제 요청’에 대해 “사실상 재협상에 해당하는 추가 협의를 추진한다는 것”이라고 과대포장했다. 이어 “한국 정부는 한미동맹을 고려해 일본 대만과의 협상에 앞서 쇠고기 문제를 매듭지으려다 곤경에 빠졌다. 미국이 한국의 쇠고기 사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해결을 위해 협조하는 것이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일본·대만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도와주려다 이렇게 된 것이니 미국도 우리 정부의 요청을 받아달라고 ‘애걸’하는 모양새다.

중앙일보 또한 1면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안 해야”>에서 부제를 “당정, 미국에 사실상 쇠고기 재협상 요구”로 달고 정부와 한나라당이 “고위당정회의를 열고 사실상 미국에 쇠고기 수입의 재협상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중앙일보는 3면 해설기사 <쇠고기 재협상 딜레마 국제 신뢰도 추락…한·미 FTA 어려워질 수도>에서는 아예 ‘사실상’이란 문구도 빼고 정부의 요청을 ‘재협상’으로 못박아, ‘재협상으로 인해 국가신인도가 추락할 우려가 크고, 한미FTA 비준도 무산돼 일자리 34만개가 사라질 듯 하다’고 국민의 불안감을 부추겼다.
중앙일보는 사설 <재협상 국면, 책임지고 내각 총사퇴해야>에서도 “정부가 결국 미국에 쇠고기 재협상을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또 “이번 재협상 요구가 궁지에 몰린 정치적 선택이란 점은 이해한다”, “원래 통상분야의 재협상은 기존 합의문을 뒤엎는 극약처방”, “이번 재협상 요구로 가뜩이나 불투명한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국회 비준은 훨씬 어려워지게 됐다”는 등 호들갑을 떨었다.

조선일보는 <미 ‘30개월 이상’ 수출 자율규제 가능성> 등에서 “광우병 불안의 진앙인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문제의 해법으로 한미 양국은 ‘추가협상(사실상의 재협상)’은 피하고 ‘민간 자율 규제’를 택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며 동아·중앙일보와는 다른 보도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수출자율규제’의 허점을 제대로 짚지 않았다. “이 방법은 양국에서 반대하는 업체가 몇 곳이라도 나오면 지켜지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값싼 쇠고기를 선호하는 군소 수입업체들이 비용부담을 무릅쓰고 자율규제에 참여할지 미지수” 정도로 언급하는 데 그쳤다. 또 “우리 정부는 (자율규제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라며 “민간자율 규제를 유도한 뒤 정부의 강력한 행정지도가 뒷받침되면 충분히 정착시킬 수 있다는 것”이라고 정부 입장을 설명했다. 미국 업체들이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표시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는 “이 방법만으로도 사실상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입을 중단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사설 <미국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에서는 “정부가 ‘재협상’이라는 용어를 쓰진 않았지만 사실상 그에 가까운 조치를 미국에 요구한 것”이라며 ‘자율규제 요청’을 ‘재협상’이라고 한 동아·중앙일보와 사실상 다르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

5일에도 수구보수신문들은 ‘자율규제’의 허점에 대해서는 거의 짚지 않고, 정부의 ‘자율규제’ 방침에 따라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들어오지 않게 된 양 호도했다.
조선일보는 1면 <국내업체들 “30개월 미만만 수입”>에서 부제를 “자율규제 추진…사실상 수입제한 효과”로 달았다. 중앙일보 또한 1면에 <국내업체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안 해”>를 실었다. 동아일보는 1면 <미 “30개월 이상 반입 안되게 노력”>에서 부제를 “버시바우 ‘쇠고기 재협상 안해도 한국민 원하는 것 얻어’”로 달았다. 1면에서부터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들어오지 않게 됐다’며 부각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또 4면 <민간결의 받쳐줄 양국 정부 보증있어야>에서 국내 수입업체들의 자율규제 추진에 대해 미국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며 “쇠고기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고 보도해 ‘민간결의’로 쇠고기 문제가 해결이라도 될 것처럼 다뤘다. 또 “한미 양국 민간업자들끼리의 자율결의가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자율결의 내용을 문서로 확인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며 정부 방침을 뒷받침할 조언도 내놨다.
동아일보 또한 5면 <‘자율규제’ 교감… 기간-구속력이 관건>에서 “양국 민간기업의 ‘결의’가 쇠고기 사태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며 “‘국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최근 미국 정부의 태도로 볼 때 ‘재협상’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다시 한 번 ‘자율규제’에 힘을 실었다. 다만 동아일보는 “결의문은 협의회의 권고사항일 뿐 개별 회사에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민간 차원 자율규제의 구속력 여부와 규제 기간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예상된다”며 ‘자율규제’의 허점을 비교적 비중있게 다루긴 했다. 하지만 WTO 협정과 한미FTA협정에 위반되는 부분 등 ‘자율규제’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지적하지 않았다.

반복되는 ‘버시바우의 무례’, 비판도 못하는 조중동
4일,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버시바우 대사의 문제 발언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아일보는 <국민 여론-미 협조 ‘동시 설득’ 난제>에서 정부관계자들이 “버시바우 대사의 그 같은 태도가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제한’이 생각처럼 녹록치 않은 과제라는 점을 국민에게 알림으로써 이후 정부의 노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측면도 있다고 자위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설에서는 정부 요청에 대해 ‘버시바우 대사가 실망감을 나타냈다’고 전한 뒤 “미국이 한국의 쇠고기 사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해결을 위해 협조하는 것이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며 미국의 이해를 구했다.
조선일보도 사설에서 ‘재협상 요청에 실망했다’는 버시바우 대사의 발언을 인용해 “이 대목에서 미국은 숨을 고르고 한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며 “30개월 이상 물량을 포기함으로써 미국 쇠고기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의 불안을 원천적으로 덜어주는 것이 미국산 쇠고기 소비를 늘리는 길이 될 것”이라고 미국을 구슬렸다.
중앙일보는 <버시바우 “한국인, 미 쇠고기에 대한 과학 더 배웠으면…”>에서 버시바우 대사의 문제 발언을 전했지만 아무런 비판을 하지 않았고 “강한 어조로 불만 표명”이란 부제를 달았다. 또 사설에서는 버시바우 대사의 발언을 “현지 주재 대사의 원칙적 언급이라고 받아들이고 싶다”며 “우리는 미국 정부와 축산업계가 한국 정부의 난처한 입장을 헤아려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5일이 되어서야 조선일보는 <버시바우 잇단 ‘비외교적 발언’ 논란>에서 ‘과학을 더 배우길 바란다’는 버시바우 대사의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며 “버시바우 대사가 ‘말’로 문제를 일으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버시바우 대사의 발언에 대해 “한·미 사이에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현안에 대한 언급치고는 대단히 직설적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라고 외교적 무례를 ‘직설적’이라는 표현으로 지적하는 데 그쳤다.
사설 <30개월 ‘이상’ ‘이하’ 월령 표시 미국 정부가 보증해야>에서는 버시바우 대사가 사용한 ‘learn’이라는 단어의 뜻이 ‘배우다’, ‘알다’ 등이라며 “버시바우 대사의 말을 ‘한국 국민들이 알게 되기를 바란다’고 번역했으면 어감이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또 버시바우 대사의 발언이 “외교의 한 방법일 수는 있으나 무례한 외교수법”이라며 ‘미국 국익의 대변자 입자에서도 감정적 대응을 하기보다 두 나라가 상생하는 게임으로 바꿔가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마땅하고 현명한 일’이라고 ‘조언’했다.
또 ‘자율규제’와 ‘연령표시’ 등에 대해 “결국 미국은 ‘더 비싼’ 고기를 ‘더 많이’ 팔게 되고, 미국 쇠고기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일부 한국인들도 꺼림칙한 기분 없이 미국 쇠고기를 가까이하게 되는 길이 열리게 되는 셈”이라고 미국의 ‘이해’를 구했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미국업자들의 ‘월령 표시’에 대해 “광우병 논란이 이성적이고 과학적으로 정리되기까지 한국 시장에서 ‘30개월 이하’의 미국산 쇠고기는 더 많이 팔리고, ‘30개월 이상’은 덜 팔리거나 안 팔리는 쪽으로 변화될 것”이라며 미국에게 ‘지금의 비이성적인 상황이 정리되기를 기다려 달라’는 식의 요청을 했다. 조선일보의 이런 주장은 미국 쇠고기는 안전한데 우리 국민들이 비이성적이고 비과학적인 주장을 앞세워 미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방송의 선동’과 ‘괴담’에 휩쓸려 촛불을 들고 있다는 조선일보의 근본 인식이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동아일보는 <“한국인 모독” 여야 일제히 맹비난>에서 버시바우 대사 발언에 대한 정치권과 네티즌들의 비판을 간단하게 다뤘다. 사설 <쇠고기 후폭풍 경계를>에서는 “한미 양국이 쇠고기 위기를 극복하려면 상대국 국민을 자극하는 언행은 삼가야 한다”며 버시바우 대사의 발언에 대해 “사태해결을 오히려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완곡하게 지적했다. 또 “한국도, 미국도 쇠고기 갈등을 증폭시켜 동맹관계를 손상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며 국민의 건강 문제에 뜬금없는 ‘한미동맹’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정부의 ‘자율규제 요청’ 후에도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실효성 없는 ‘자율규제’를 내놓고 국민을 설득해보려는 정부나, ‘자율규제’를 ‘재협상’이라고 부풀리고 이를 받아달라고 미국에게 ‘애걸’하는 수구보수신문들의 모습은 참으로 딱하다. 그러나 정부의 ‘꼼수’도 수구보수신문들의 ‘과대평가’도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 그것이 지금 이명박 정부와 ‘조중동’에 대한 민심이다. <끝>

 
2008년 6월 5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