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인터넷 카페 게시글 권고 결정’에 대한 논평(2008.6.2)
등록 2013.09.24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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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심의위까지 ‘여론통제’ 나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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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가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에 올라온 글에 대해 ‘언어순화 및 과장된 표현의 자제권고’를 결정했다. 그러나 방통심의위의 역할, 법적 근거, 해당 글의 내용 등 그 무엇을 살펴보더라도 방통심의위의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

방통심의위의 ‘자제권고’ 결정은 그 근거가 불분명하다.
‘방송통신위원회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이하 방통위법)에 의하면 방통심의위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이하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 제1항에 따른 불법정보 유통에 대한 취급의 거부·정지 또는 제한” 중 하나의 제재조치를 정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자제권고’라는 제재조치는 어디에도 없다.
방통심의위도 이번 결정이 법적 제재나 강제조치가 아닌 그야말로 ‘권고’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해당 글을 쓴 사람이 그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것이다. 방통심의위 관계자에 따르면 방통심의위 내부에서도 이번 권고 결정이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했고, 차후 법·제도를 보완할 필요성이 제기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법적 근거도 없고 논란만 일으킬 ‘자제권고’를 결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언어순화 및 과장된 표현의 자제권고”라는 애매모호한 결정이 나온 과정도 석연치 않다.
방통심의위의 심의 대상이 된 글은 ‘이명박 아주지능형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다. 이 글은 이명박 대통령을 “간사한 사람”, “머리용량 2MB” 등으로 묘사하며 네티즌들에게 ‘미 쇠고기 수입개방 반대’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공기업 민영화, 의료보험 민영화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고 있다. 애초 이 글이 심의 대상이 된 것은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가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심의를 요청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방통심의위는 이 글이 ‘명예훼손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면서도 ‘청소년들도 볼 수 있는데 과도한 표현은 자제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미로 법에도 근거가 없는 ‘권고’ 결정을 내렸다. 방통심의위가 정부의 눈치를 보고 어정쩡한 결정을 내렸다고밖에 볼 수 없다.

‘문제의 글’이 ‘자제권고’를 받을 만한 수준인지도 의문이다.
지금 인터넷 공간에 올라오는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비판 글들을 보라. 방통심의위가 문제삼은 ‘계산에 빠르고 간사한사람’, ‘머리용량 2MB’ 등의 표현이 제재를 받아야 한다면 방통심의위가 심의하고 제재를 내려야 할 게시물은 셀 수 없이 많다.
물론 거친 욕설이나 민망한 별명 등을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네티즌들의 의사 표현 하나 하나를 감시하고 규제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여론 통제’일 뿐 아니라 더 없이 어리석은 일이다.
지난 참여정부 5년 동안 네티즌들은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자유’는 거의 무제한으로 확장되었다. 이제 와서 방통심의위가 법적 근거도 없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글에 제재를 가한다면 반발만 커진다.

방통위법에는 “방송 내용의 공공성 및 공정성을 보장하고 정보통신에서의 건전한 문화를 창달하며 정보통신의 올바른 이용환경 조성을 위하여 독립적으로 사무를 수행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둔다”고 방통심의위 설치 목적을 밝히고 있다. 민간기구로서 방통심의위의 핵심적인 위상은 바로 ‘독립성’이다. 박명진 위원장도 28일 첫 기자간담회에서 “방통심의위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산하기관이 아니라 명백한 독립기관”이라며 “현재 방통위가 갖고 있는 사업자의 심의 불복시 재심 권한과 실질적인 행정처분권 등을 가져와 방통심의위의 독립성과 집행권을 확립하겠다”고 ‘독립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결정을 보며 과연 방통심의위가 ‘독립성’은 물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겠는지 의문이 든다.
지난 5월 6일 방송통신위원장 자격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한 최시중 씨는 “쇠고기 문제와 관련해서 언론의 문제 제기가 계속되면서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라며 “방송심의위원회가 제대로 구성되지 못했었는데 최근에야 구성돼서 앞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방통심의위의 결정이 최 씨의 이 같은 발언과 과연 무관한 것인가?
방통심의위는 미국의 소 도축·검역실태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안전성을 다뤄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준 MBC <PD수첩>에 대한 심의 여부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박 위원장도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방송 프로그램에 대해 “다음 주 내로 안건이 올라오면 공정성과 객관성 기준에 입각해 심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통심의위가 ‘방송 내용의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예의주시 하겠다. 만약 방통심의위가 정부와 수구보수신문들의 ‘방송탓’에 부화뇌동해 제재조치를 내린다면 네티즌과 시민들의 엄청난 반발을 초래할 것이다.
방통심의위가 출범한지 갓 보름이 지났다. 첫 출발부터 ‘언론통제’, ‘독립성 훼손’, ‘정권 눈치보기’ 등의 논란에 휘말리는 것은 스스로 권위를 실추시키는 일임을 명심해주기 바란다.
<끝>

 
2008년 6월 2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