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5월 24-25일 미 쇠고기 수입반대 가두시위 관련 신문보도’에 대한 논평(2008.5.26)
조중동, 현장에 있긴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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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청계광장 촛불문화제에 참여했던 일부 시민들이 청와대로 행진을 하려다 경찰의 폭력진압에 부상을 입고, 37명이 연행됐다. 25일에도 촛불문화제보다 적극적으로 의사표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시민들이 새벽까지 거리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시민들이 다치고 31명이 연행됐다. 전주에서는 시민 한 사람이 분신을 시도해 중태에 빠져 있다.
시민들의 분노에 귀를 틀어막은 정부가 시민들을 거리로 내몰고,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항의의 뜻을 표출하게 만든 것이다. 그동안 시민들은 정부를 향해 ‘전면재협상’, ‘고시철회’ 를 요구하며 정부의 성의 있는 태도를 기대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국민의 바람을 무너뜨렸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송구하다’고 했지만, ‘어떻게 하겠다’는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국민의 분노를 키웠다.
지난 이틀 동안 서울 도심 곳곳에서 벌어진 거리 시위는 촛불문화제만으로는 정부의 태도를 바꿀 수 없겠다는 시민들의 절박함이 자연발생적으로 표출된 사건이었다. 주최 측이 촛불문화제 행사의 종료를 선언했음에도 시민들은 귀가하지 않고 거리 행진에 나섰으며, 25일에는 예정된 촛불문화제가 없었음에도 다시 광장으로, 거리로 모여들었다. 시민들의 분노는 범국민대책위조차 어쩌지 못하는 새로운 저항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시민들의 저항을 폭력적으로 봉쇄하려든다면 사태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른바 ‘대책회의’라는 것을 열어 경찰과 검찰, 그리고 국가정보원 관계자까지 참석한 가운데 ‘불법시위에 대한 엄중처벌’ 입장만 내놓고 있다. 수구보수신문들 역시 정부의 강경 대응에 발맞춰 주말 시위의 ‘불법성’을 부각하는가 하면 거리시위 등이 일부 ‘운동권’에 의해 계획적으로 이뤄진 것처럼 왜곡하기도 했다.
‘불법성’ 부각해 ‘강경대응’ 부추겨
26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주말 시위와 관련해 1면에 각각 <차도로 뛰어든 ‘촛불집회’>와 <촛불, 끝내 차도 불법점거>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도로점거’, ‘불법’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조선일보는 “촛불집회가 24~25일 이틀 연속 서울 도심 차로를 점거하고 경찰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불법 폭력 집회로 변질됐다”며 “주말 도심 도로가 무법천지를 방불케 하며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촛불시위 참가자들이 24, 25일 서울 시내 도로를 불법 점거해 도심교통을 마비시키며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비록 도로를 점거하긴 했으나 분명히 평화 시위였다. 오히려 경찰이 방패와 주먹으로 시위자들을 가격하는 등 폭력을 행사했으나 이들 신문은 경찰폭력에 대해 아무런 지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선일보는 “경찰은 이들을 막지 못했고, 막으려는 강한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경찰은 당초 ‘도로 점거는 사회적 약속을 깬 것’이라며 ‘철저하게 막겠다’고 장담했지만 교통정리에만 열을 올렸다”며 더욱 강도 높은 폭력진압을 부추기기까지 했다.
중앙일보는 사설 <시험대에 오른 새 정권의 법 집행 의지>에서 “우리는 이번 사건이 새 정부 들어 공권력이 행사된 첫 대규모 불법시위라는 점에서 검찰의 대응에 주목한다”며 “법에 허용된 대응수단은 아낌없이 활용해 공권력의 권위를 세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민들이 거리로 나오게 만든 정부에 대해서는 단 한 줄의 비판도 없이 ‘공권력의 권위를 세워야 한다’며 강경진압을 선동한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 등장한 색깔론
시민들의 분노에 색깔을 덧씌워 탄압의 명분을 찾으려는 시도도 드러냈다.
조선일보는 1면 기사에서 “경찰 관계자는 도로 점거 불법시위가 벌어진 데 대해, 어린 학생들 위주로 20여일 끌어왔던 촛불집회가 세간에서 더 이상 확산되지 못하자, 집회 주도세력이 정파 및 사회단체를 규합한 ‘반정부 투쟁’으로 끌고 가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집회에서 “현 정부의 주요 정책을 규탄하는 구호들이 나와, 반(反)정부 시위 성격을 강하게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시위를 특정 정치세력이 사주한 것처럼 몰아간 것이다.
조선일보는 8면 <시위대 “청와대로 가자”…법 사라진 ‘서울의 주말’>에서도 “구호 중에는 ‘이명박 하야’ ‘사퇴하라’는 것이 부쩍 늘었다”며 촛불문화제 주최 측 관계자가 ‘우리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청와대로 간다. 여러분도 이 움직에 동참할 수 있느냐’는 말로 “선동”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6면 <“청와대로 가자” 구호 따라 차도로 우르르>에서 “촛불집회는 주말을 기점으로 정치적 성격이 짙어졌다. ‘정권 타도’를 주장하는 정치 구호가 자주 나왔다”며 “경찰은 촛불집회의 양상이 달라진 데 대해 시위 전문가들이 가세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고 보도했다. 시민사회단체들에게 ‘시위 전문가’라는 딱지를 붙인 것도 문제지만 이들 때문에 촛불집회의 양상이 달라졌다는 주장은 최소한의 취재도 하지 않은 것이다. 동아일보는 이 기사의 중간에 “변질된 참가자/민노총-전교조 교사 참여로 점차 과격화”, “변질된 구호들/‘대통령 하야’ ‘정권타도’ 극한표현 난무”, “변질된 시위행태/인터넷 포털에 행동지침 띄우고 분신도” 등의 제목을 큼지막하게 배치해 시위와 시위 참가자들의 순수성을 매도하는 데 열을 올렸다.
동아일보는 사설 <누구를 위해 “청와대로 쳐들어가자”고 하는가>에서도 주말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에 대해 “과연 이들이 국민 건강을 염려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려고 거리에 나선 순수한 시민뿐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라며 “특정 세력이 계획적으로 그런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또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북한이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사용한 ‘역적’이란 용어까지 써가며 ‘이명박 타도’를 외쳤다”며 미 쇠고기 수입개방 반대에 어떻게든 ‘친북’적인 색깔을 덧씌워보려 안간힘을 썼다.
중앙일보는 2면 <시위대 이틀째 도로 불법점거>에서 “일부 ‘청와대로 가자’며 선동”이라는 중간제목을 달았고, <촛불집회 17번 만에 불법시위로 변질>에서는 “사회단체가 주도…정치 구호까지 난무”라는 부제를 달기도 했다. 다만 중앙일보는 “촛불집회의 성격이 바뀐 배경에는 계속된 촛불집회에도 불구, ‘사실상 얻어낸 것이 없다’는 불만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조선·동아일보가 언급하지 않은 내용을 보도해 약간의 차이를 드러냈다.
그러나 중앙일보 역시 앞의 사설에서 “정치구호 제창과 돌발적인 집단 이탈 행위는 문화제의 성격에서 벗어난다”며 “사법당국은 불법행위자 처벌과 아울러 이번 사태에 불온 세력이 개입했는지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군사독재시절에나 봐왔던 ‘불온 세력’이라는 용어까지 등장시켜 시위에 색깔을 덧씌우려 했다.
우리는 조선·중앙·동아일보가 촛불 문화제와 거리 행진 현장을 제대로 취재했다면 결코 이런 기사를 쓸 수 없다고 본다. 청계광장과 거리에서 분출된 시민들의 분노와 저항 의지는 수구보수신문들이 말하는 ‘시위 전문가’들조차 만들어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수구보수신문들이 맨몸으로 거리로 나선 시민들이 폭력을 행사한 것인 양 호도하고, 이들의 불법성을 부각하는 것이야말로 시민들을 자극하는 선동이다. 정부에게 강경진압을 요구하는 것도 사태를 악화시키는 어리석은 짓이다. 파국을 바라지 않는다면 시민들의 분노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이명박 정부에게 전해야 한다. 그것이 이명박 정부와 조중동, 그리고 국민 모두를 위하는 길이다. <끝>
2008년 5월 26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