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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학부 ‘학교자율화 추진계획’ 관련 조선·중앙·동아일보 사설에 대한 논평(2008.4.17)
등록 2013.09.2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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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은 ‘책임감 있는 보수’ 될 수 없나
-정치 선동과 ‘낙인찍기’로 백년대계 망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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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육부)가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을 내놓았다. 학교 운영의 권한은 학교장에게, 초·중등교육에 관한 권한은 시·도 교육감에게 넘기겠다고 한다. 교육부는 ‘다양하고 질 높은 교육’, ‘학교 중심의 자치기반’을 모토로 내세웠지만, 그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면 우려가 앞선다.
3단계 계획의 첫 단계는 29개의 지침을 즉각 폐지하는 것이다. 학교의 자율성을 저해 한다는 게 치침 폐지의 이유인데, ‘무작정 폐지’해서 될 내용들이 아니다.
강제적·획일적 보충수업 금지, ‘0교시 수업’, ‘우열반’ 금지 등 입시경쟁이 더 가열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규제들이 이 지침들에 포함돼 있다. 또 ‘학습 부교재 선정지침’, ‘교복 공동구매 지침’, ‘촌지 안주고 안 받기 운동계획’, ‘초등학교 어린이신문 단체 구독 금지’ 등 학교 비리를 예방하고, 학부모들의 불필요한 교육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지침도 들어있다. 그밖에 특정 종교교육을 강요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학생의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지침, 학교들이 성적을 부풀리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지침 등이 있다. 철폐 후의 부작용은 논외로 하더라도, 이런 지침을 모두 없애는 것이 ‘다양하고 질 높은 교육’이라는 궁극적 목표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궁금하다.

이명박 정부는 ‘규제는 나쁜 것’으로 낙인을 찍어 우리 사회 거의 모든 영역에서 규제를 없애겠다는 태세다. 그러나 ‘규제는 나쁘다’는 식의 선동적 접근은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 복잡한 사회경제적 상황에서는 ‘경쟁’과 ‘자율’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일어난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조정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개인과 기업의 활동을 규제하는 경우가 생긴다.
독과점을 막아 경쟁을 활성화하는 경제 규제, 무분별한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한 환경 규제, 차별을 금지해 인권을 보호하는 사회적 규제 등등 한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규제들이 있다. 또 어떤 시점에 반드시 필요했던 규제가 조건이 바뀌면서 불필요해 지는 경우도 있다. 핵심은 ‘규제’ 자체가 아니라 꼭 필요한 규제는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불필요하거나 부작용이 더 큰 규제는 고치거나 없애면 된다는 얘기다. 그리고 규제를 만들거나 혹은 없앨 때 그 ‘목적’이 무엇인지부터 따져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교육부가 내놓은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은 규제 철폐의 목적이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학교 자율화’는 ‘학교 규제철폐’의 동어반복일 뿐이지 규제 철폐의 목적이 될 수 없다. 규제를 철폐하고 학교에 자율권을 주었을 때 얻을 수 있는 장점과 혜택이 무엇인지를 따져야 한다.
29개의 지침 가운데는 폐지해도 괜찮은 지침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모든 지침을 폐지하겠다는 교육부의 방침에 동의할 수 없으며, 면밀하게 검토하고 사회적으로 토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론들도 정부가 폐지하겠다는 규제의 내용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 그러나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에 대한 수구보수신문들의 주장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좌절감을 느낀다.

오늘(17일) 동아일보 사설은 논평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하게 만들 정도로 수준 미달이다. 동아일보가 진정 ‘보수신문’이라면 ‘보수의 합리성’을 담은 교육 가치와 미래 비전을 갖고 정부 정책을 판단하고 평가해야 옳다.
그러나 이 사설은 이번 교육부 계획에 대한 최소한의 객관적 검토도 없이 ‘규제가 없어지면 전반적인 교육 수준이 향상된다’는 앞뒤 설명 없는 단순 논리에만 기댔다. 그러면서 ‘교장이 최고 경영자가 되어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오라’, ‘전교조는 딴죽 걸지 말라’는 등의 구호 수준의 주장을 폈다.

중앙일보는 동아일보처럼 비논리적이고 바보스럽게 사설을 쓰지는 않았다. ‘자율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육부의 계획을 ‘규제철폐-학교 간 경쟁 촉진-교육의 질 향상’이라는 시장논리로 접근하면서 바람직하고, 불가피한 조치로 평가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나아가 중앙일보는 교육부 방침에 대해 입시교육 강화, 학교의 학원화, 학생 건강 악화 등의 우려가 나오지만 “초기의 혼란은 학교가 자율을 얻기 위해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못 박았다. 또 교육청이 정부를 대신한 ‘규제기관’이 되어선 안된다는 ‘강경한 규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결국 얼핏 보면 합리적인 듯한 이 사설도 ‘규제는 나쁜 것’이라는 왜곡된 전제를 깔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전제에 따라 29개 지침이 폐지되었을 때 초래될 수많은 부작용과 학생·학부모의 피해를 꼼꼼하게 따져보지 않은 채, 몇몇 우려만 슬쩍 언급하고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16일과 17일 이틀에 걸쳐 관련 사설을 쓴 조선일보는 중앙일보와 같은 논리를 선동적으로 과격하게 표출했다.
16일 사설 <교장끼리 누가 ‘좋은 교육’ 시키나 겨루게 하자>는 표현만 다를 뿐 중앙일보의 논리와 똑같다. 교육부 방침에 따른 부작용을 지적하거나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대목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오히려 “과도기엔 그게(부작용)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대중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제목부터 선동적인 표현을 쓰면서 중앙일보보다 훨씬 노골적으로 교육부 방침을 지지한 것이다.
17일 사설 <좌파의 ‘낙인찍기’ ‘편가르기’에 놀아나선 안돼>는 교육부 방침이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반대세력에 대한 정치공세로 일관했다.
제목과 달리 ‘낙인찍기’는 조선일보가 그야말로 ‘선수’다. 이 사설에서도 조선일보는 교육부 방침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과감하게 “좌파”, “프로 선동꾼”, “좌파의 위선자”로 낙인찍었고, 반대의견을 수렴하는 일은 “좌파에 놀아나는 것”으로 낙인찍었다.
그리고 폐지된 29개 지침 가운데 이 낙인찍기를 위해 언급한 것은 ‘수준별 이동 수업’ 관련 지침 한가지다. 조선일보의 주장에 따르면 이 지침을 폐지한 것은 ‘학교가 학생 수준대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자율적으로 정하게 하는 일’인데 “좌파”들은 이걸 “우열반 하자는 거냐”고 “선동”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가장 거부감을 주는 것이 우열반 부활이라고 생각해서 “우열반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모양이다.
그러나 폐지된 29개 지침 중 하나인 ‘수준별 이동수업 내실화 방안’은 수준별 이동수업의 내실화와 관련된 세부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이것을 없앴을 때 개별 학교들이 수준별 이동수업을 사실상의 우열반으로 편성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학교가 학생 석차를 근거로 ‘우등생반’, ‘열등생반’을 만든다면 그걸 찬성할 학부모, 학생, 교사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이들한테 공부가 좀 뒤처진다고 이런 낙인을 찍는다면 그건 교육이라고 할 수도 없다”고 썼다. 규제 철폐를 주장하는 조선일보도 우열반은 반대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수준별 이동수업 내실화 방안’ 지침을 폐지했을 때 발생할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비난할 일이 아니다. 어떤 학교도 우열반을 “우등생반”, “열등생반”으로 이름 짓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사실상의 우열반이 부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를 위해 조선일보도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들 신문이 경쟁과 효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자체를 비판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시장의 논리를 무분별하게 적용하기 전에 교육 정책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해야 한다.
‘성적우수 학교’에 포상금까지 지급하겠다는 교육감이 나오는 게 우리의 교육 현실이다. 이런 조건에서 학교의 자율성 강화가 ‘교육의 다양성’ 보다는 ‘획일적인 입시교육 강화’로 이어질 우려가 더 큰 것도 사실이다.
교육부가 내놓은 정책이 큰 틀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규제완화’, ‘규제철폐’의 방향과 일치한다 해도 구체적인 내용을 하나하나 따져 반대할 것은 반대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보수의 책임감 있는 자세가 아닌가? 모든 지침을 순식간에 폐지하고 학교에 자율을 주었을 때 발생하는 피해는 학생과 학부모가 입게 되며, 부자보다는 서민 가정이, 서민 가정보다는 빈민 가정이 더 큰 피해를 보게 된다.
30만원이 넘는 교복을 싸게 마련하기 위해 공동구매 제도를 이용하고, 불필요한 ‘어린이 신문’을 구독하지 않아도 되었던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교육부의 ‘규제 철폐’는 어떤 혜택을 줄 수 있는가? 고삐 풀린 듯 치열해질 입시 경쟁에서 탈락하는 학생들에게 우리 사회는 어떤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가? 학교 비리가 벌어졌을 때 상처받는 학생과 학부모들을 어떻게 치유해 줄 것인가? 우리는 이런 문제를 함께 고민할 줄 아는 것이 진짜 ‘보수신문’이라고 생각한다. <끝>
 


2008년 4월 17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