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이명박 대통령의 영어몰입교육 불가능 발언’ 관련 언론보도에 대한 논평(2008.3.21)
혼란스러운 영어교육정책, 왜 비판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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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20일 교육과학기술부 업무보고에서 “영어 몰입교육이라는 것은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며 “모든 과목을 몰입해서 영어로 한다든가, 이런 과도한 정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대선 기간부터 강조해오고, 당선 뒤 인수위 시절 끊임없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영어몰입교육’ 방침을 순식간에 뒤집는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2007년 10월 5일 학부모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국어와 국사 등 일부 과목을 영어로 강의하면 어학연수를 따로 받지 않아도 된다”며 ‘영어몰입교육’을 통한 ‘영어교육 개혁’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 당선 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2008년 1월 24일 ‘2010년부터 모든 고등학교에서 영어과목은 영어로 수업’, ‘영어 이외 과목 영어몰입교육은 연내 농어촌 지역 고교에서 시범사업 실시’ 등의 내용이 담긴 ‘영어공교육완성프로젝트’를 내놓았다. 그 직후 각계의 반발이 빗발치자 이경숙 인수위원장이 직접 나서 “기러기아빠를 더 두고 볼 수 없다”며 “새 정부는 막대한 투자를 감당할 각오가 돼 있다”고 강행방침을 밝혔다. 또 1월 30일 졸속 공청회를 거쳐 인수위의 계획을 그대로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영어몰입교육’ 등에 대한 반발을 ‘역주행’으로 표현하며 “왜 요즘 역주행이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과거 관습이나 자기 이해를 따지고 해서 반대는 어디든 있다”고 인수위를 격려했다.
그랬던 이 대통령이 갑자기 ‘영어몰입교육 백지화’를 선언하며 “인수위 때 잘못 알려졌다”, “오해가 생겼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처사다. 물론, 늦었지만 ‘영어몰입교육’의 폐기는 당연하고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최소한 정부가 자신들의 정책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국민을 혼란스럽게 한 데 대해 사과부터 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다. 또 이 대통령과 교과부가 ‘영어공교육강화방안’의 문제점을 제대로 검토하고 여론의 수렴해 개선책을 마련하려 했다면 ‘영어몰입교육’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영어 교육 확대’, ‘영어교사 충원 방안’, ‘재원마련’ 등에 대해서도 문제를 인정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과정없이 ‘오해’ 운운하며 순식간에 말을 바꾼 이 대통령의 처사는 순수하지 않아 보인다. ‘영어몰입교육’ 자체의 문제를 깨닫고 폐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총선을 앞두고 비판 여론이 높은 ‘영어몰입교육’이 여당 득표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이 이번 총선 공약에서 ‘대운하’와 ‘영어공교육강화’를 제외시키기로 했다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무책임한 ‘말바꾸기’와 혼란스러운 영어교육 정책에 대해 대다수 언론은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하지 않았다. 특히 수구보수신문들은 “영어몰입교육은 불가능하다”는 이 대통령의 말을 정부의 정책혼선을 교통정리하는 결단처럼 부각하기도 했다.
21일 조선일보는 1면에 <이 대통령 “이젠 선생님들도 경쟁해야”>를 싣고 ‘그때 잘못 알려졌다. 영어몰입교육이라는 것은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을 소개하며 “(이 대통령이) 영어수업 시간을 늘리는 방안을 포함해 학교에서 영어교육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정책을 교육과학기술부가 확정해서 발표하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14면 <이 대통령 “과격한 영어 몰입교육 안된다”>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20일 교육과학기술부 업무보고에서 과거 교육인적자원부의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며 이 대통령을 추켜세운 다음 “인수위 시절 논란이 됐던 영어몰입교육에 대해 ‘인수위 때 잘못 알려져 학부모들이 오해를 했다’며 ‘과격한 몰입교육은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2면 <영어로 하는 수업 … 자사고 … ‘총선 때 탈 날라’ 조심조심>에서 이 대통령의 발언을 총선과 연결시키긴 했지만 “잘못 알려졌다”, “오해를 했다”는 대통령의 말을 나열한 채 “교육과학기술부의 업무보고에는 이런 대통령의 의중이 그대로 반영돼 있었다”, “인수위 발표 이후 너무 급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던 교육 정책이 속도 조절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보도를 보면 이 대통령은 원래 ‘영어교육 논란’에 아무런 책임이 없던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서울신문의 기사도 문제였다. 서울신문은 2면 <대학등록금 일정소득 후 상환>에서 “영어몰입교육은 할 수 없다”는 발언보다 “‘(이 대통령은) 영어는 공교육 안으로 들어와야 하며, 과외를 받지 않더라도 재미있는 영어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을 더 비중있게 다뤘다. 8면에서는 다시 “(이 대통령은) 사교육에 대해서는 ‘사교육비의 절반이 영어교육비’라면서 ‘과외를 받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편안하고 재밌게 영어교육을 받을 수 있는 안을 만들어 발표하라’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한편 김학준 지방자치부 차장이 쓴 칼럼 <아침형 대통령, 여유도 필요하다>의 경우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좋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하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며 “당선인 시절 영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니까 인수위에서는 모든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는 몰입 교육을 들고 나왔다”고 분석했다. 인수위가 대통령의 뜻을 잘못 받아들여 ‘영어몰입교육’을 내놓은 것처럼 읽힌다. 이 칼럼은 또 “이 대통령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부지런함과 의욕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다 중요한 순간에 한번쯤 호흡을 고르는 ‘여유의 미학’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라는 생각이 든다”며 그야말로 조심조심 대통령에 대한 ‘조언’을 내놓았다.
방송3사 역시 20일 저녁 메인뉴스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이 분명하게 지침을 내렸다”(SBS),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라고 선을 그었다”(MBC), “영어 몰입교육은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며 정책을 분명히 확정해 발표할 것을 지시했다”(KBS)며 무비판적 보도태도를 보였다.
반면 경향신문은 3면 <이 “영어 몰입교육 오해, 불가능”>에서 이 대통령의 발언을 짧게 전하고, 사설 <선거공약 감추면서 여당이라 할 수 있나>에서 한나라당이 대운하를 총선 공약에서 제외하기로 한 것과 “인수위 시절 그토록 강조하던 영어몰입교육을 공약에 넣지 않기로 한 것”을 “선거전략 차원”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도 이 대통령의 발언을 1면 <‘학교별 성적’ 올해안 공개한다>에서 교과부 업무보고 내용과 함께 전하고, 3~4면에서 ‘교과부 업무보고 쟁점 분석’을 실었다. 한겨레는 이 기획기사에서 “교과부가 영어교육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논란과 위험이 많은 정책을 여론 수렴이나 전문가 검토 등을 외면한 채 무리하게 추진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영어수업시간 1~2시간 확대하는 데 따를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또 “교사 자격증이 없어도 교사가 될 수 있는 ‘영어전용 교사제’”에 대한 우려도 제기했다.
이처럼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제외하면 이명박 정부의 혼란스러운 영어교육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매체는 몇몇 인터넷언론뿐이다. 이것이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프레스 프렌들리’의 ‘효과’인가. 참여정부 시절, ‘비판신문’을 자처하던 언론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또 주요현안에서 수구보수신문들과 달리 객관적인 보도를 내놓던 방송보도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국민 전체를 ‘영어 울렁증’에 빠트리고, 대다수 서민들을 사교육비 걱정으로 몰아넣으며 계층 간 ‘영어교육 양극화’를 부추기는 이명박 정부의 영어교육 정책은 ‘영어몰입교육 불가능’ 발언으로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인터넷에서는 실효성도 의심스럽고 혼란스럽기까지 한 이명박 정부의 영어교육 정책에 대해 네티즌들의 비난여론이 뜨겁다. 언론이 네티즌들보다 못한 ‘비판 정신’을 가져서야 되겠는가. 국민의 생활에 직결된 문제만큼은 객관적인 분석과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라. <끝>
2008년 3월 21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