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모니터_
3월 5일자 주요일간지 일일 모니터 브리핑(2010.3.5)
등록 2013.09.24 10:15
조회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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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브리핑
1. 범야권, 지방선거 후보단일화 원칙 합의… <조선> “교육감선거, 진보는 뭉치는데 보수는 난립” 우려
2. 조선일보, 또 낯 뜨거운 ‘민족지’ 분칠
 
 
 
조선일보, 또 낯 뜨거운 ‘민족지’ 분칠
 
 
1. 범야권, 지방선거 후보단일화 원칙 합의…
<조선> “교육감선거, 진보는 뭉치는데 보수는 난립” 우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등 야5당과 ‘희망과 대안’ 등 4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지방선거 공동승리를 위한 야5당 협상회의’가 4일 선거연합 방식과 일정에 합의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야 5당은 지방선거에서 광역·기초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을 불문하고 공동 승리를 위하여 연합의 정신을 구현하며, 유권자의 의사가 반영되는 연합의 방식을 모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15일까지 후보 단일화와 관련한 논의를 벌여, 합의를 이룬 지역은 단일후보 정당을 확정하고 나머지 지역의 경우 단일후보를 뽑을 경쟁방식과 절차 등을 정하기로 하는 등 ‘협상 시한’도 제시했다.
단일 후보 선출 방식 등 난제가 많아 최종적으로 단일 후보를 내는 데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범야권이 단일후보에 최종 합의해 지방선거에 나선다면 그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5일 한겨레신문은 1면에서 야권의 선거연합 방식 및 일정 합의 소식과 그 내용을 전했다.
 
 
<‘5+4’ 범야권, 후보단일화 원칙 합의>(한겨레, 1면)
<야권 후보간 ‘경쟁방식’ 난제…‘여론조사+α’ 모색>(한겨레, 3면)
<한 걸음 나아간 야권연대, 다음 단계가 중요하다>(한겨레, 사설)
 
이어진 3면 기사에서는 합의의 의미와 향후 전망을 자세하게 보도했다.
기사는 이번 합의로 “구체적인 후보를 놓고 머리를 맞대는 국면”으로 들어섰지만 “최종적으로 단일후보 합의안에 도장을 찍기까지, 곳곳에 도사린 암초는 단단하고 여울은 깊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정당 지지율’은 어느 지역에 적용할지, 유력 후보의 유무 판단은 어떻게 할지” 등을 과제로 꼽았다.
 
사설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일방적 국정운영을 견제한다는 과제를 놓고 말만 무성하던 상태에서, 야권 단일후보를 실질적으로 만들어내는 단계로 넘어가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어 실질적 연대를 위해 민주당은 “야권 연대의 맏형답게 소수 정당들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하고, 소수 정당들도 “명분에만 집착해 역량 이상의 무리한 요구를 고집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제언했다.
 
 
<고비 넘긴 ‘야 선거연대’ 갈길 멀다>(경향, 4면)
 
경향신문도 4면에서 범야권의 합의 소식을 전하는 한편 이번 합의문이 “광역단체장 후보 결정방식 등 첨예한 쟁점들을 봉합한 측면이 커서 향후 협상이 순탄하게 굴러갈지는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서울은 한명숙, 경기는 유시민? 친노 바람몰이에 민주당 ‘부담’>(중앙, 8면)
<6·2 선거 석달 앞으로 공직자 160여명 사퇴>(동아, 1면)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야권의 합의 소식을 간단히 전했고, 조선일보는 보도하지 않았다.
대신 조선일보는 14면 기사에서 수도권 교육감 선거에 진보진영은 뭉치는 반면 보수 진영은 후보가 난립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수도권 교육감 선거, 진보진영은 뭉치는데… 또 보수후보 난립…“단일화 힘들 듯”>(조선, 14면)
 
 

▲조선일보 14면 기사
 
 
기사는 서울시교육청 김경회 부교육감이 서울시 교육감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며 “각 지역 교육위원들에 이어 부교육감까지 출마를 결정하면서 보수 진영의 후보 난립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서울뿐만 아니라 인천, 경기도에도 후보가 난립하고 있고, “교육계에서는 이들 후보들 간에 단일화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진보진영에서는 서울과 인천의 시민단체들이 나서 후보 단일화 작업을 진행 중이고, 경기도는 김상곤 교육감의 재출마가 확실하다며 “지난 해 4월 경기교육감 선거에서도 보수진영은 ‘후보 난립’으로 진보단일 후보였던 김상곤 교육감에게 큰 차이로 패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2. 조선일보, 또 낯 뜨거운 ‘민족지’ 분칠
 
5일 조선일보가 창간 90주년을 맞아 ‘자화자찬’으로 지면을 꾸몄다.
조선일보는 5일 104면을 발행해 △한국 이미지 국제 조사 △창간 90주년 토론회 △오라일리 세계신문협회장 인터뷰 △격동의 역사와 함께한 조선일보 90년 △100년 장수 기업의 비결 기획 등을 실었다.
이 과정에서 또 다시 일제강점기 방응모와 자사의 친일행각은 은폐한 채 조선일보를 ‘민족신문’으로 포장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13면 <‘조선일보 창간호’ 3·4·13·14면 발견/ 한국 언론사 공백 메울 귀한 자료…90년 만에 ‘세상으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자사를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를 빼앗긴 뒤 이 땅의 모든 민족신문은 사라졌으며, 그 ‘언론 암흑’ 10년 만에 가장 먼저 나온 신문이 조선일보였다”고 주장했다. 또 “조선일보는 창간호에서부터 민족 현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넘쳤고 그렇게 출발한 조선일보에 대해 온 민족이 보낸 뜨거운 성원이 창간호 지면에 넘친다”고 낯 뜨거운 주장을 폈다.
 
 
 
▲조선일보 사설
 

사설 <창간 90년에 북녘 형제자매의 고난을 생각한다>에서는 3·1 독립운동이 있었기에 조선일보가 창간될 수 있었다며 “민중의 고마움을 돌이켜보면 조선일보가 1920년 3월 5일 창간 이후 1940년 8월 10일 강제 폐간에 몰리던 날까지 핍박받는 조선 백성의 소리를 대변하면서 일제에 의해 8만8000여건의 기사를 압수당하고 500건 이상의 기사를 삭제당하고 4차례에 걸쳐 장기간 발행정지 당한 것은 조선일보의 당연한 보은(報恩)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포장했다.
또 “조선경제의 취약(脆弱)함으로 주저앉을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상재(李商在) 신석우(申錫雨) 안재홍(安在鴻) 조만식(曺晩植) 등 민족진영의 독립운동가들이 혹은 일신(一身)의 안위(安危)를 던져넣고 혹은 전 재산을 기울여 선뜻 조선일보 경영의 무거운 짐을 지겠다고 나섰던 것도 조선 민중과 우리말 민족 신문 사이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초창기 친일 자본가 단체 <대정실업친목회>의 주도 하에 예종석, 조진태 등 친일 행위로 치부한 반민족 행위자들이 차례로 사장에 올라 신문을 경영했다. 그러다가 1921년 4월 8일, 송병준이 경영권 일체를 인수하면서 더욱 심한 친일신문이 되었다.
조선일보가 ‘민족신문’이었던 시기도 있었으나 지금의 ‘방씨 일가의 조선일보’와는 관계가 없다. 1924년 9월 13일 신석우가 조선일보의 경영권을 인수한 이후, 한때 이상재, 안재홍, 조만식 등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의 인사들이 조선일보의 경영이나 편집을 맡으면서 ‘조선 민중의 신문’이라는 표어를 내걸며 민족정신과 신념을 고취하려했다.
 
 

▲조선일보 1936년 1월 1일 기사
<“우리는 대 일본 제국의 신민으로서 천황폐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신년사 중)
 
 

▲조선일보 1939년 7월 8일 기사
<조선일보는 일제의 침략 전쟁에 동원된 조선 젊은이가 전사하자 “영예의 전사”로 대서특필하며 조선 사람들을 향해 일본에 충성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들이 물러난 1920년대 후반부터 조선일보는 일본 제국주의와 그 시책에 협력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지금까지 조선일보를 소유하고 있는 방씨 일가의 방응모가 1933년 3월에 경영권을 인수하면서부터 그 친일의 정도가 극심해졌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이상재, 안재홍 선생 등이 조선일보 경영권을 인수한 사실을 두고 “조선 민중과 우리말 민족 신문 사이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펴면서 방응모의 친일 행각을 덮고 조선일보를 민족지로 포장하는 데 써먹고 있는 것이다. <끝>
 
 
 
2010년 3월 5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