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국회 국방위의 ‘군 가산점제 법안’ 의결 관련 신문보도에 대한 논평(2008.2.15)
‘위헌’ 요소 여전한 ‘병역법 개정안’,
언론은 성대결 조장 말고 합리적 대안 모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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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국회 국방위원회가 군 가산점제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병역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고조흥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병역의무를 마친 사람이 채용시험에 응시하는 경우, 필기시험의 각 과목별 득점의 2% 범위 안에서 가산점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산점을 받아 채용시험에 합격하는 사람은 그 채용시험 선발 예정 인원의 20%를 초과할 수 없고,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응시횟수도 제한하도록 했다고는 하지만 가산점 비율과 합격자 비율조정으로 위헌 요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불필요한 갈등과 분열 조장우려 있는 군 가산점제
군 가산점제는 이미 1999년 헌법재판소에서 ▲군복무를 하는 것은 헌법에 정한 국방의 의무일 뿐 특별한 희생이 아니며 ▲군병역 의무를 마친 남성과 병역의무가 없는 여성·장애인을 차별해 평등원칙에 위배되고 ▲군대를 가지 않는 여성과 장애인의 취업 기회를 제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받은 바 있다.
이미 위헌 결정이 난 법안을 다시 입법화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데다가, 이는 ‘헌법에 정면 도전하겠다’는 식의 반헌법적이고 비상식적 행태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는 무엇보다 이번 법안으로 인해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만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군 가산점제도에 대한 찬반 논쟁은 매번 소모적인 남녀 대결 구도 양상으로 변질돼왔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토론은 실종되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원래 논점이 되어야했던 평등권의 가치나 군제도 개혁 등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는 거론되기 힘들었다. 이러한 전철을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국회 국방위 의원들이 병역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은 어이없는 일이며, 불필요한 갈등과 사회분열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 군 복무자에 대한 ‘사회적 보상’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다만 그것이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장애인들의 피해를 수반하는 방식이 되어선 안 된다는 점을 여성단체 등 많은 사람들이 강조해왔음에도 다른 대안 없이 오로지 ‘군가산점’으로만 해결하려는 국방위 의원들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한겨레를 제외한 신문들, 여성·장애인 차별 요소와 ‘제2 위헌소송’ 가능성 언급회피
이처럼 ‘군 가산점제 국회 국방위 통과’는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임을 감안해서인지, 경향신문이 10면에 게재한 것을 제외하고 조선·중앙·동아·한겨레는 이 내용을 모두 1면에서 보도했다. 그러나 신문의 보도태도는 실망스러웠다.
동아일보는 1면 <군필자 채용 가산점제 내년 상반기 부활할 듯>에 이어 8면 <국방부 “반영비율 등 축소…형평성 문제없어” 여성단체 “법안 동의 의원들 총선서 표로 심판”>에서 관련 내용을 비교적 자세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새 법안은 가산의 정도를 낮췄기 때문에 (법원의)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각종 채용시험에서 합격자의 남녀 성비가 10년 전과 많이 달라진 점을 고려하면 헌재 판단도 달라질 수 있을 것” 이라는 등의 일부 법조계 의견과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부각시켰다. 특히 ‘가산점’ 자체가 평등권에 위배되기 때문에 비율을 조정한다고 해서 합헌이 될 수 없으며, 합격자의 성비 비율 변화는 위헌논란의 본질과 상관이 없다는 점에서 ‘군 가산점제 부활’을 찬성한 것과 마찬가지인 동아의 보도는 최소한의 균형도 갖추지 못한 지극히 편파적인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중앙일보도 각각 <‘군필자 가산점’ 국회 국방위 통과>, <군필자 ‘2% 가산점’ 내년 부활>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관련 법안을 전하며 별다른 문제 지적 없이 ‘여성계 반발’, ‘논란’ 정도로 단순보도하는 데 그쳤다. 경향신문도 10면 <‘군 가산점’ 9년만에 부활>에서 조선·중앙과 큰 차별성 없는 단순보도를 했을 뿐이다. 이러한 언론들의 태도는 사실상 ‘군가산점’ 문제를 여성단체에서만 제기하는 문제인 양 축소시킴으로써 남녀 간의 갈등과 대립을 조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들에 비해 한겨레는 1면 <‘군필자 2% 가산점’ 국방위, 법안 의결>에서 “군복무를 하는 것은 헌법에 정한 국방의 의무일 뿐 특별한 희생이 아니”고, “가산점 제도는 실질적으로 성차별이며, 병역 면제자와 보충역 복무를 하는 남자도 차별하는 제도”라며 99년 헌재의 위헌판결 내용을 자세하게 전했고, 6면 <“여성·장애인 차별 ‘제2 위헌소송’ 가능성”>에서도 이를 다시 상세히 소개했다. 한겨레는 특히 제목에서 “위헌 소송 가능성”, “가산점 혜택 폭 줄였지만 평등권 침해 여전” 등을 언급해 ‘병역법 재개정안’이 가지는 있는 위헌 소지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다른 신문들이 당시 헌재가 위헌을 결정했던 내용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논란’을 부각시킨 것과 비교해볼 때 가산점과 합격자 비율을 조정한다고 해서 합헌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사회갈등 조장, 사회적 약자·소수자에 대한 편견으로 점철된 조선의 사설
한편, 15일 한겨레·경향신문·조선일보는 일제히 사설을 통해 ‘군 가산점’에 대한 입장을 드러냈다.
한겨레는 <잘못된 길로 돌아가는 군 가산점 부활>에서 “이번 법 개정안은 과거 제도에 견주면 군필자에게 주는 혜택을 크게 줄이긴 했다”면서도 개정안에 대해 “99년 헌재가 만장일치로 내린 위헌 결정의 뜻을 거스르기는 마찬가지”라며 위헌임을 분명히 못 박았다. 또 “병역 의무자들이 느끼는 박탈감을 줄이는 것은 국가의 몫이다”라며 “군 복무 환경을 개선해 병역을 치르는 이들의 박탈감을 최소화하고, 군필자들에 대한 다른 사회적 보상책을 마련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역시 <위헌 요소 여전한 군 복무 가산점 법안>에서 “찬성론자들의 주장대로 군필자들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보상을 필요하지만, 군 복무가산제를 통한 보상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라고 지적하며, “위헌판결을 받았던 과거의 군 복무가산제의 주변적 내용을 다소 수정한 것일 뿐 헌재가 지적했던 평등권과 공무담임권 침해라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겨레와 경향의 이 같은 비판은 99년 헌재의 위헌판결과 그 배경, 병역법 개정안이 가지고 있는 여전한 위헌성을 고려한다면 언론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지적이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군 복무자 가산점제 안보 미래 차원에서 봐야>에서 헌재의 위헌 결정에 대해 “가산점제 자체가 아니라, 군필자에게 응시 횟수 제한 없이 3∼5%의 가산점을 주고 가산점 합격 인원도 제한하지 않은 것은 ‘지나친 보상’으로 위헌이라고 본 것”이라며 얼토당토않은 주장으로 헌재의 위헌판결 취지를 훼손하고 왜곡했다. 99년 헌재는 “헌법 제39조 제1항에서 국방의 의무를 국민에게 부과하고 있는 이상 병역법에 따라 군복무를 하는 것은 국민이 마땅히 하여야 할 이른바 신성한 의무를 다 하는 것일 뿐”이라며 “그러한 의무를 이행하였다고 하여 이를 특별한 희생으로 보아 일일이 보상하여야 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밝혀 ‘군가산점제’ 자체가 헌법상의 근거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못 박았다.
그럼에도 조선이 가산점 수준이 낮아졌다는 이유만으로 “새 가산점 제도도 위헌인지는 새로운 헌법적 판단이 필요한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헌재 판결 취지는 무시한 채 ‘위헌이면 말고, 아니면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여론을 호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이 같은 조선의 주장은 이미 위헌결정이 났음에도 또 다시 ‘위헌논란’을 부추겨 소모적인 갈등과 대립을 조장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조선은 “군 복무가 국가를 위한 봉사이자 명예로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도 군필자를 대하는 사회의 눈길을 달리해야할 필요가 있다”며 오히려 “출산과 육아로 국가에 기여하는 여성과 장애인에 대해서 별도의 보상 방법을 찾”을 것을 주장해 논점을 엉뚱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교묘한 ‘물타기’를 시도했다.
여성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군가산점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혜택을 더 달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군대에 가지 않는 사람들이 갔다 온 사람들과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조선이 ‘별도의 보상’을 운운하는 것은 여성단체 등을 ‘특혜를 바라는 집단’으로 폄훼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제도마련은 군가산점에 대한 논란과는 별개로 당연히 이뤄져야 할 사안이다. ‘약자·소수자 지원정책’을 ‘군가산점’과의 흥정의 대상으로 치부하는 조선의 주장은 그야말로 ‘양성평등’이나 ‘사회소수자’에 대한 자신의 인식이 얼마나 저열한 지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다.
언론, 현실적 대안 모색하는 공론장 역할 해야
군 가산점제의 부활은 위헌 결정이 난 법안을 다시 입법화한다는 점에서 논리적으로도 설득력이 없을뿐더러 민주주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발생하게 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권리 침해 문제나 사회적 혼란을 생각해 볼 때 언론은 문제를 지적하고 군복무 환경을 개선하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회적 논의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일부 신문들은 문제점을 지적하기 보다는 ‘논란’으로 단순 취급하거나 국회 국방위의 목소리만을 그대로 전달하는 편파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다수 언론의 태도는 ‘병역법 개정안’으로 초래될 사회적 갈등을 사실상 방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론의 역할이라고 할 수 없다. 언론들은 이제라도 ‘병역의무’가 ‘평등권’이라는 사회의 기본적 가치와 충돌하지 않도록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공론장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끝>
2008년 2월 15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