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숭례문 화재’ 관련 신문보도에 대한 논평(2008.2.13)
동아의 유 청장 비난, 어이없는 속죄양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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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0일 설연휴 마지막 날, ‘국보 1호’ 숭례문이 불에 탔다. 서울의 관문이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재가 어이없는 화풀이 방화에 맥없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이번 사고는 부실하기 그지없던 관리시스템과 전시행정에만 눈이 멀어 ‘역사’와 ‘가치’를 내동댕이친 관료들의 천박한 문화의식이 빚어낸 구조적·총체적인 인재였다. 문화재청은 화재 시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과 소방화재 전문가뿐만 아니라 소방법령에 문화재를 보호하는 별도 법령도 갖춰놓고 있지 못했다.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중구청 역시 민간 위탁업체에만 떠맡겨 관리에 소홀했으며, 소방당국도 구조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주먹구구식 진화를 해 오히려 불씨를 더 키웠다.
숭례문 화재, 한나라당은 ‘노무현 탓’, 동아는 ‘유홍준 탓’
사고 다음 날 11일 국회에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번 숭례문 화재사고를 ‘노무현 정권 탓’으로 돌리는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했다. “노무현 정권이 그야말로 안전 업무에 대해 얼마나 허술했는지, 신경 쓸 데는 쓰지 않고 엉뚱한 곳에 신경 쓴 데에 따른 비극이 아닌가 생각된다”는 안 원내대표의 발언은 시중에 떠돌고 있는 ‘노무현 탓’ 유행어를 떠올릴 만큼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차기 정부에서 여당으로써 국정운영의 막중한 역할과 책임을 담당해야 할 정당의 원내대표 입에서 쏟아진 말이 정치공세나 다름없는 ‘책임 떠넘기기’였던 것이다. 대개 한나라당이 참여정부에 대한 비난을 쏟아낼 경우 이를 앞장서서 대변하며 정치공세에 동참했던 보수신문들조차 안 원내대표의 발언이 너무 황당했기 때문인지 이번만큼은 부각하지 않을 정도였다.
2월 12일 신문들은 1면에 각각 <‘문화재 보호’ 부실…국민 가슴도 무너졌다>(한겨레), <‘개발’에만 혈안…우린 문화민족인가>(경향신문), <시커멓게, 우리 가슴도 타들어갔다>(조선일보), <숭례문 우리가 태웠다>(중앙일보)를 제목으로 일제히 숭례문 화재의 원인과 상황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유독 동아일보만은 1면에 <숭례문 불타던 날 … 유홍준 ‘암스테르담 휴가’>를 실었고, 3면에서도 <어처구니 없는 화재 … 어처구니없는 문화재청장> 등 두면에 걸쳐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외유성 출장’에 비난의 초점을 맞췄다.
유 청장의 이번 해외 출장은 공식출장과 개인일정이 섞여 있는데다가 민간기업으로부터 부인의 항공료까지 지원을 받은 게 밝혀져 문제가 될 여지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것이 국보 1호 ‘숭례문 화재’에 우선할 만큼 중대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숭례문 화재가 ‘유 청장의 외유성 출장 탓’으로만 돌릴만한 사안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동아는 ‘대책없는 숭례문 개방’으로 이번 사고의 큰 원인을 제공한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책임 문제와 전시행정에 대한 비판은 전혀 거론하지 않은 채 6면 <숭례문 화재현장 찾은 이 당선인 “중건은 문제없을 텐데 사회 혼란 걱정스럽다”>에서 이 당선자의 심정과 목소리를 전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문화재 보호를 위한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2006년 시민들에게 숭례문을 개방한 서울시는 수문장 교대식에는 수십억 원의 예산을 쓰면서 정작 문화재 관리에는 소홀했다. 당시 서울시장으로서 문화재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숭례문 개방을 강행했던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결국 이번 화재로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의 표본’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번 화재의 책임을 유 청장에게 전가하려는 식으로 방향을 엉뚱하게 잡다 보니 동아일보는 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다루는 데도 다른 신문들에 비해 소홀했다. 13면에서야 다뤄진 <화재 45분 지나서야 “지붕 뜯어도 좋다”>도 문화재청과 소방당국간의 대처만을 문제 삼았을 뿐 근본적인 사고원인과 책임문제는 전혀 다루지 않았다.
이 당선자의 ‘국민 모금’에 적극 화답한 동아일보
뿐만 아니라 동아일보는 12일 “화재로 무너진 숭례문을 국민성금으로 복원하자”는 이명박 당선자의 국민성금 제안에 동조하기까지 했다. 13일 동아일보는 방형남 논설위원이 쓴 칼럼 <오늘과 내일/ 숭례문, 베네치아 ‘불사조 극장’처럼>에서 방화로 불탄 이탈리아의 ‘베니체’가 ‘화재 다음 날부터 재건을 위한 기업과 개인들의 모금운동으로 되살아났다’며 “숭례문을 불사조로 부활시키는 일,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하는 등 ‘국민성금 모금’을 선동하고 나섰다. 아직 정확한 사고의 경위도 제대로 밝히지 못한 상황에서 ‘복원’을 거론하며 ‘국민성금’ 운운하는 이명박 당선자의 발언도 할 말을 잃게 만들지만 이를 부추기는 동아일보는 과연 정체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다행히 동아를 제외한 신문들은 이 당선자의 ‘국민성금’ 발언에 대해 <이 당선인 “성금으로 복원하자” “또 국민이 뒤처리” 반발 거세>(한겨레), <숭례문 ‘성금복원’ 논란>(경향), <숭례문 성금 논란 “200억 십시일반하자” “또 국민에 떠넘기나”>(중앙), <“숭례문을 국민성금으로 복원하자” “사고는 누가 치고 … 국민이 봉인가”>(조선) 등을 통해 이명박 당선자의 ‘국민성금’에 대한 국민적 비난 여론을 담아냈다.
특히 한겨레는 사설 <지금이 복원을 들먹일 땐가>에서 “왜 정부나 지자체의 잘못으로 전소된 숭례문의 복원을 국민이 맡아야 할까? 국민은 청소부가 아니다”라며 이 당선자의 발언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한겨레는 또 “지금은 복원을 논의할 때가 아니다”며 “문화재 보존 정책부터 문화재의 관광상품화 문제에 이르기까지, 문화재 관리 실태부터 방제체계에 이르기까지 문제점을 낱낱이 드러내, 교훈을 삼아야 할 때”라는 지적을 덧붙였다.
경향신문도 사설 <숭례문 국민성금 복원 제안 부적절하다>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양의 복원이 아니라 사고의 경위를 찬찬히 되짚는 성찰의 시간”이라며 “600년 이어온 역사를 한순간에 날린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지 하나하나 밝혀 후세의 교훈으로 삼는 일”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또 “이 당선인이 복원에 드는 비용을 국민 성금으로 충당하자고 제안한 것도 부적절하다”며 “천재지변도 아니고 정부가 관리를 잘못해 발생한 손실을 국민의 부담으로 메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이 당선자의 발언을 비판했다.
중앙일보 또한 사설 <숭례문은 국가 예산으로 복원해야>에서 “숭례문 화재는 국가의 관리 소홀로 인한 인재일 뿐”이라며 “정부의 역할과 민간의 역할을 혼동해선 안 된다”라고 충고했다.
복원보다 총체적 부실에 대한 구체적 검증이 우선돼야
이번 숭례문 화재는 누구 한 사람, 특정 기관의 잘못이 아니라 그야말로 우리 사회 주요기관들의 ‘총체적인 부실’과 천박한 문화의식이 빚어낸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너도 잘못했고, 나도 잘못했고, 모두 잘못했다’는 식으로 두루뭉수리하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숭례문이 전소에 이르기까지 누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묻는 과정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섣불리 복원하는 데 급급한다면, 부실한 시스템은 그대로 인 채 ‘제2, 제3의 숭례문 전소’가 일어날 것이 명약관화하다.
특히 이번 사건의 적지 않은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인 이 당선자가 국민들 앞에 백번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국민 성금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군다나 정부가 관리를 잘못해 생긴 사고의 책임을 국민들에게 떠넘기는 행위는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울러 지금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에 시급히 필요한 것은 숭례문의 ‘외양적인 복원’이 아니라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생했는지 되짚어보는 성찰의 시간이다. 사회 전반에 확산되어있는 ‘불도저식 개발주의’에 대한 환상이 이번 숭례문 전소와 상관없는지, 화려한 겉보기에는 환호하면서 내실을 채우는 데는 무감각했던 것이 아닌지 우리 스스로도 돌아볼 부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언론 역시 사고 이후 사고의 정황과 원인에 대해 치중해서 보도했다면 지금부터는 이러한 구조적이고 총체적인 문제점을 하나하나 낱낱이 밝혀내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안을 마련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며, 국민적 공론을 적극적으로 모아야 한다.
아울러 동아일보가 이미 ‘언론’임을 포기한 지 오래임을 알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경고한다. ‘숭례문 화재’의 원인과 책임은 등한시한 채 ‘특정인 죽이기’로 여론을 호도하고, ‘국민 성금’ 따위에 부화뇌동해 권력자의 입맛만 맞추려는 동아일보의 태도는 국민이 절대 용납할 수 없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끝>
2008년 2월 13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