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경향신문의 신정아 씨 관련 선정적 기사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7.9.14)
경향신문, 문화일보식 선정성 대열에 합류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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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 씨 관련 보도가 ‘국민의 알권리’ 차원을 넘어 심각한 ‘인권침해’에 이르렀다. 우리 단체는 9월 10일-12일 신정아씨와 변양균씨의 사생활에 대한 일부 방송보도가 사생활 침해 수준에 이르렀다고 지적했으며(2007.9.12 논평), 13일 문화일보가 신정아 씨 알몸사진을 게재하며 보였던 비윤리적 보도를 비판한 바 있다(2007.9.13 논평). 우리는 이 논평에서 다른 언론들이 문화일보의 선정적 보도를 반면교사 삼아 더 이상 반여성적인 시각으로 인권침해를 하지 않기를 촉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오늘 경향신문은 신정아 씨의 인격권을 침해했으며, 신문 보도의 구성요건조차 갖추지 않은 저질기사를 게재했다. 경향신문은 3면 <다채로운 남성편력… “잠 못 드는 유력 인사 많을 것”>(유인경/이호준 기자) 이라는 가십성 잡지 표지에나 등장할 듯한 제목을 뽑아 3면 거의 전체를 차지한 장문의 기사를 게재했다. “신정아 납득 힘든 행적들”이라는 소제목이 붙은 이 기사는 그녀의 행적을 <①‘전방위 인맥’ 의도적 접근인가? ②두 얼굴의 행동…다중인격 소유, ③미 도피사치생활…자금 어디서?>라는 세가지 소주제로 나눠 기술하고 있다.
기사는 신씨가 공상허언증인 것 같다거나, 미 도피 후 사치생활을 하고 있는데 자금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궁금하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이런 식으로 정확한 증거와 결론도 없는 무책임한 보도도 문제이지만, 신정아 씨에 대한 생활 침해가 당연한 것인 양 다룬 최근 보도행태에 견줘 경향신문은 아마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갖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사의 일부분인 <①‘전방위 인맥’ 의도적 접근인가?>는 종합일간지에 실릴만한 글인가라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익명으로 가득찬 “카더라” 통신
이 기사는 모든 취재원이 ‘익명’이어서 정상적인 기사라기보다는 소설에 가깝다. 기사에 등장하는 모든 취재원은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 문화예술인 ㅎ씨, 한 중견 문화인, 모 은행 대표, 미술 담당기자, 미술가, 유명 미술가의 아들이며 역시 미술인, 신정아씨와 선을 보았던 30대 남성, 후원을 해주었던 기업체 간부, 신씨와 친분이 깊었다는 갤러리 대표” 등 모두 익명이다. 다시 말해서 이 기사는 스스로도 자신의 실명을 밝히기 싫지만, 신정아 씨 사생활에 대해 할말이 많은 사람들의 “카더라”식 이야기를 마구잡이로 모아 만들어 낸 것이다.
모든 보도는 실명을 원칙으로 한다. 신문윤리실천요강 5조 <취재원의 명시와 보호> 에서는 “보도 기사는 취재원을 원칙적으로 익명이나 가명으로 표현해서는 안되며 추상적이거나 일방적인 취재원을 빙자하여 보도해서는 안된다”고 밝히고 있다. 또 5조 2항 ‘제3자 비방과 익명 보도 금지’ 조항에서는 “기자는 취재원이 익명의 출처에 의존하거나 자기의 일방적 주장에 근거하여 비판, 비방, 공격하는 경우 그의 익명 요청은 원칙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신문은 물론 방송사(KBS, NHK, BBC) 가이드라인에서도 실명취재와 보도를 원칙으로 하며, 이는 언론사의 신뢰성에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하고 있다.
기사에 등장하는 취재원들은 모두 일방적으로 신정아 씨의 프라이버시에 가까운 내용을 험담하는 수준으로 발언하고 있다. 혹여 기사에 등장하는 모든 익명의 취재원의 발언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자신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익명처리해달라고 하면서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마구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신문윤리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상식적으로도 매우 저급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 가득 담긴 내용도 문제
이 기사 속에 담긴 성에 대한 인식수준은 매우 저급하며 황당하기 짝이 없다. 경향신문은 먼저 “한 중견 문화인은 ‘2년 전에 데이트를 하며 손을 잡았더니 스킨십을 나눈 두 번째 남자라면서 첫 번째 남자는 아버지라고 하더라’며 ‘배신감이 아니라 허탈감을 느끼게 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자신이 첫 번째 남자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여서 허탈하다’는 식의 말도 저급한 남성의 발언을 중앙종합일간지가 그대로 기사화해 한 여성을 비난하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 일인가.
기사는 또 제목부터 <다채로운 남성편력… “잠못드는 유력인사 많을것”>이라고 뽑음으로써 신씨가 유력인사들과 매우 난잡한 남자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온갖 익명의 탈을 쓰고서도 정작 기사는 신씨가 남성들과 맞선을 보고 결혼설이 오갔으며, 후원을 해주는 기업체 간부에게 선물을 보내는 등 섬세하고 다감한 면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경향신문은 이런 행동이 “다채로운 남성편력”이라고 할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
이 기사에서 경향신문이 신 씨의 남성편력을 주장한 유일한 근거는 신 씨와 친분이 깊었다는 갤러리 대표의 발언이다. 그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신 씨가 유명 인사들과의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는데 지금 자신의 이름이나 증거가 나올까봐 불안에 떠는 유력인사들이 매우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신씨와 친분을 가지고 있는 유명인사가 모두 신씨와 성적인 관계를 가진 것도 아니며 이런 수준의 음해성 발언을 근거로 ‘신씨의 남성편력’이라고 몰고 갔다는 것은 이 기사의 허술함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또한 경향신문이 이 발언을 보도하고 제목으로까지 뽑았다면, 앞으로 신씨와의 친분이 있는 유력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저열한 프라이버시 침해를 계속하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단체는 신정아 씨 학력위조 사건에 대한 언론보도가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와 여성으로서의 인격권 침해’로 치닫는 것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학력을 속이고 부정한 방법으로 직위와 재산을 획득한 것에 대한 조사와 그에 상응하는 처벌은 있어야겠지만, 사법부가 아닌 언론으로 인해 마녀사냥을 당하고, 철저하게 유린당하는 것은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우리 단체는 그동안 꾸준하게 모니터를 해오면서 경향신문이 사회적 현안에 대해 선정적?흥미 위주의 보도태도를 지양하고 공정하고 심층적인 보도를 추구한다고 평가한 바 있다. 그렇게 바람직한 언론으로 자리매김해왔던 경향신문이 어떻게 형편없는 기사를 대서특필했는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보도를 경향신문의 편집방향의 변화로 봐야할 것인지 일부 기자의 한계가 드러난 것인지 궁금하다. 경향신문은 이번 보도에 대해서 반성하고 사과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앞으로 다른 언론도 이와 같은 익명의 탈을 쓴 마녀사냥을 중단하길 거듭 촉구한다. <끝>
2007년 9월 14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