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한미FTA 재협상 및 협정문 서명’ 관련 주요 신문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7.7.4)
조중동, 문제점은 외면, 협상 비준만 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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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0일 한국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미국의 수잔 슈와브 미무역대표부 대표가 한미FTA 협정문에 서명했다. 이로써 지난 해 1월 18일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FTA 협상 의지를 공식 천명한 이후 1년 5개월여 만에 협상이 마무리 됐다.
한국 정부는 절차적·내용적 정당성 없는 한미FTA 협상을 미국의 일정에 따라 강행했고, 마침내 각계각층의 강력한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협정문에 최종 서명하고 말았다. 더군다나 정부는 ‘재협상은 없을 것’이라는 공언을 깨고 한미FTA 체결을 위해 미국 의회의 강경 기류를 핑계로 미국에게 더 많이 내주는 재협상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부는 이번 재협상에서 △의약품 특허·허가 연계 의무 시행을 한미FTA 협정 발표 후 18개월 이후로 연기 △전염병 등 비상 상황에서의 의약품 지적재산권 침해 예외적 허용 △안보상 필수적인 경우 검토 절차를 거치지 않고 FTA 예외 조치 허용 등을 얻어냈다고 밝혔다. 또 전문직의 비자쿼터 부여, 일반인의 비자 면제를 ‘약속’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의약품 특허·허가 유예는 미국이 최근 재협상을 벌인 페루·파나마·칠레 등 다른 상대국들에게는 아예 ‘철폐’해준 바 있어 ‘성과’라고 내세우기에 민망할 지경이다. 전문직 비자쿼터도 미국 의회의 권한으로 미국 행정부의 약속이라고 하기엔 큰 의미가 없다. 특히 일반인 단기비자 면제는 한미FTA와는 무관한 사안이다. 이미 미국 정부는 작년 11월 비자 면제 프로그램(VWP) 계획을 밝혔고, 한미 양국은 작년 12월 15일 ‘한국의 VWP 가입을 위한 로드맵’에 합의한 바 있다. 따라서 이를 재협상과 연계해 한미FTA에 대한 ‘미국의 선물’인 양 강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반면 미국의 요구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수용되어 ‘퍼주기 협상’의 연장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노동·환경 분쟁처리 분야에서는 협정 위반 때 부과되는 최대 1,500만 달러의 벌과금을 위반국의 노동·환경 여건 개선에 쓰도록 하는 ‘특별 분쟁 해결 절차’ 대신 벌과금을 상대국에 주거나 특혜관세 중단 등 무역 보복을 당할 수 있도록 수정됐으며 벌과금 상한선도 없어졌다. 더불어 미국 투자자에 대한 ‘역차별 금지’ 선언 규정을 서문에 명문화 했으며, 협정 상대국의 정부조달시장 참여기업에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에 따른 노동법령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그런데도 일부 수구보수신문들은 재협상의 문제점은 제대로 짚지 않은 채 재협상에서 합의를 이루었다는 것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데 골몰했다.
조·중·동, 재협상 ‘타결’에만 관심
조선일보는 6월 30일 1면에 <부시 ‘한국 비자면제 추진’ 곧 성명>, <한미 FTA 추가협상 타결>을 나란히 실어 마치 재협상에 대한 미국의 답례라는 의미를 심어주려 했다. 조선은 8면 <FTA 추가협상 미 요구 대부분 수용>이라는 제목을 달았으나, 정부의 “추가 협상에서 수정된 내용엔 핵심 분야가 포함돼 있지 않아 지난 4월 합의한 기존 협정문의 ‘이익균형’을 깨뜨릴 수준이 아니라”고 하는 설명에 무게를 실고, 이는 “미 의회 비준 동의를 받기 위해선 불가피했다는 분석”이라고 강조했다. 또 “한국이 얻어낸 수확도 적지 않다”며 실속 없는 합의를 성과로 포장하는가 하면 미국이 요구해 합의한 7개 분야에 대해서는 무비판적으로 전달하는 데 그쳤다.
중앙일보는 같은 날 1면 <한·미 FTA 추가협상 타결>이라는 기사에서 추가협상 내용을 간단히 전하고, 14면 <노동·환경 내주고 비자·약품 챙겼다>라는 기사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추가협상이 협상의 큰 틀을 흔들지는 않았다”며 “한국은 의약품 특허 연계 이행 의무를 협정 발표 후 18개월간 유예하도록 끌어낸 것이 눈에 띄는 실익”이라고 추켜세웠다. 반면 노동·환경에서의 규정 위반 중 일반분쟁 해결 절차를 수용한 데 대해서는 “다소 부담스러운 대목”이라고 ‘가볍게’ 평가하는가 하고, 우리의 강력한 요구인 “▶분쟁 당사자는 국가로 한정하고 ▶분쟁에 앞서 정부간 협의를 의무화”를 미국이 수용했다고 전했다. 중앙일보는 30일 사설 <기본 틀 지켜진 한·미 FTA 재협상>에서 “협상 결과는 다소 미흡하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면서도 “사소한 득실의 차이보다 한·미 FTA의 과실이 하루빨리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양국 국회가 소수 이익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이익을 보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기대한다”며 한미FTA 국회통과를 압박했다.
동아일보도 다르지 않았다. 동아는 30일 1면 <한미FTA 추가협상 타결…오늘 미서 서명>이라는 기사에서 관련 사실을 간단히 다루고 10면 기사 <노동-환경 무역보복 요건 더 까다로와져>에서 “한국은 미국 측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면서도 “일방적으로 주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평가”라고 옹호했다. 동아가 제시한 근거는 “추가협상을 조기에 타결함으로써 자동차나 쌀, 개성공단 문제에 대한 미국 내 강경파의 요구를 차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노동·환경분야에서 일반 분쟁해결 절차를 따르기로 한 것도 “한국 측의 요구로 요건은 더 까다로워 졌다”는 데 무게를 실었다. 동아는 30일자 사설 <한미 FTA ‘연내 비준 동의’에 범국민적 호응을>에서 “국내 정치일정을 감안할 때 국회는 협정 비준 동의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면서 “우리가 조기에 비준을 마무리하면 미국 의회에 서둘러 비준 동의를 압박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한 발 나아갔다. 사설은 “한미 FTA 협상 완결은 현 정부의 최대 업적이 될 것”이라고 추켜세운 뒤, “노 대통령은 국회의 비준 동의를 제때 받기 위해 국회와 각 정당을 상대로 협상 내용을 설명하고 성실하게 설득 작업을 벌여야 한다”는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한미FTA와 관련 없는 ‘일반인 비자면제’ 성과로 부각
한편 이들 신문은 6월 30일 양국 정부가 한미FTA에 최종 서명하자 그 의미를 강조하는가 하면 미국의 한국에 대한 일반인 비자 면제 방침을 부각하고 나섰다.
동아일보는 2일자 10면 <미 “20년 만의 가장 의미있는 무역협정”>이라는 기사에서 지난 30일 한미FTA 협정문 서명식의 사회를 맡은 카란 바티아 미 무역대표부 부대표가 한 “이번 합의는 지난 20년간 미국이 체결한 무역협정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이라는 발언을 제목으로 따 미국 행정부도 이번 협상을 의미 있게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앙일보는 7월 2일 8면 <미국 비자 면제, 내년 상반기 가능성>에서 비자 면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공식 서명을 적극 환영하고 이를 계기로 미국 정부가 양국 간 인적 교류를 확대하려는 정치적 의지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비중 있게 보도했다. 중앙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2일 사설 <미국 비자 면제, 조속히 성사되길 기대한다>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한국의 비자 면제 프로그램 가입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발언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최종 타결 직후에 나왔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자유무역이라는 물적 교류를 담보하기 위해선 인적 교류도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논리”라고 비자 면제의 의미를 부각했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 3면 <“한국인 무비자 추진”…FTA 서명하던 날 ‘부시의 선물’>이라는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의 한국인 비자면제 방침이 “FTA 서명에 맞춰 VWP 조정 입장을 밝히면서 한국을 언급해, ‘성의’를 표시한 것”으로 풀이했다.
동아일보도 2일자 10면에 관련 보도를 크게 실었다. <미비자면제 내년 상반기 가능성>에서 미국의 한국인 비자면제 움직임이 “우리측의 추가협상 반대급부 요구에 호응”한 것이라고 아전인수식 분석까지 더했다.
재협상 문제점 조목조목 짚은 경향·한겨레
반면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재협상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경향신문은 6월 30일자 1면 기사 <‘혼돈의 FTA시대’ 기회인가 시련인가>에서 한미FTA 협상은 “미국이 정한 무역촉진권한에 쫓기고, 미국의 정치환경 변화에 따른 추가제안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데다, 협정의 득실에 대한 찬반 논란도 불거지고 있어 비준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재협상에 대해서도 “미국은 7개 분야에서 협정문 수정이라는 명백한 목표를 달성한데 비해 우리측 수정 제안은 선언적 협조 약속을 받아내는 데 그쳐 향후 논란이 제기될 소지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이어 같은 날 2면 <달라는 것 다 주고 ‘빈손 종결’>에서도 미국에 “끝까지 끌려다닌 한국”이라고 비판했다. 또 같은 날 사설 <‘어쨌든’ FTA를 밀어붙이겠다는 정부>에서도 한국 정부는 재협상을 두고 “미의회 비준을 받으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군색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며, 정부가 그동안 “협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사실 왜곡이다’ ‘무작정 반대하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진지한 논의와 검증을 외면해 왔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도 30일 1면 <FTA재협상도 ‘미국 뜻대로’>, 4면 <끌려다닌 FTA재협상 ‘졸속 결정판’>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이 미국 요구를 거의 모두 받아들이는 내용으로 29일 타결”, “지금까지 1년 넘게 미국과의 협상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망라해 보여주는 축소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겨레는 같은 날 사설 <국회가 한-미 FTA 비준 동의 거부하라>에서도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은 국가적으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며 “국회가 비준 동의를 거부하기”를 촉구했다.
나아가 한겨레는 3일자 2면 <FTA협정문 ‘별도서한’ 구속력 의문>에서 “‘노동·환경 관련 분쟁의 안전장치’가 미국 쪽 협정문에는 들어 있지 않아, 사실상 효력을 담보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또 의약품 시판허가와 특허연계 이행의무를 협정 발효 후 18개월 동안 유예하기로 한 합의도 “‘시판허가와 특허연계 이행의무에 대한 분쟁절차 회부만 18개월 연기’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제대로 된 공청회도 없이 한미FTA를 강행했으며, 쇠고기 수입, 자동차 세제 개편 등 4대 선결조건까지 들어주며 ‘퍼주기 협상’을 진행해왔다.
그런데도 보수신문들은 협상 초기부터 미국의 무법적인 요구는 무비판적으로 보도하면서 정부의 장밋빛 전망만을 부각하는 데 골몰했다. 심지어 참담한 협상 결과가 드러났는데도 ‘한미FTA 체결 선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재협상을 통해 미국의 이익이 대부분 수용되는 상항에서 언제까지 ‘한미FTA 찬양’으로 국민을 호도하려고 하는가. 이들은 ‘실체 없는 국익’ 운운하며 비준 동의를 압박하는 등의 행태를 당장 중단해야 할 것이다.
한편 국회도 책임을 다해야 한다. 국회는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했다. 이제라도 한미FTA 협상 전 과정과 협정문을 꼼꼼히 분석하고, 득실을 따져 국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일부 수구보수신문의 압박에 휩쓸린다면 국민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끝>
2007년 7월 4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