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3월 26일~28일 조선·중앙·동아일보의 한미FTA 장관급 협상 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7.3.28)
쪽박 차더라도 협상체결 하자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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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부터 한미FTA 장관급 협상이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협상에서는 쌀, 쇠고기, 방송·통신, 투자자-국가소송제, 지적재산권, 자동차 등 그동안 합의되지 못했던 주요 협상 쟁점을 다룬다. 한국 측은 지금까지의 ‘퍼주기 협상’에 더해 ‘쌀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남은 쟁점 분야에서도 미국에 ‘대폭양보’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권오규 부총리는 ‘개성공단을 추후협상(빌트인 협상)으로 넘기겠다’고 말해 한국 측의 섬유, 무역구제 분야에서 성과를 얻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마저 사실상 포기했음을 시사했다.
나아가 협상 타결 이후에도 ‘밀실협상’을 통해 협정문이 바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이미 협정문까지 공개한 페루, 콜롬비아와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비공식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협상 타결 직후 그 내용을 의회와 이해 당사자들에게 공개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타결 뒤 6-8주가 지나서야 의회에 협상 내용을 통보하고, 일반 공개는 그보다도 2-3주가 지난 뒤에 이뤄진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협상 내용을 공개하기 전에 ‘밀실협상’이 진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협상단은 “타결된 협정문은 사소한 표현은 몰라도 실질적인 내용은 고칠 수 없다”면서도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한”이라는 단서를 달아 ‘밀실협상’ 여지를 남겼다.
지금까지의 협상 상황만 본다면 우리에게 있어 한미FTA는 그야말로 ‘쪽박협상’이다. 정부는 한미FTA를 주장하면서 내세웠던 전략 분야에서조차 성과를 내지 못했고, 협상 막바지에는 결국 ‘쌀 개방’까지 요구받음으로써 협상을 체결하려면 또 다른 양보를 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최소한의 민주적 합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미국의 무역촉진권한(TPA) 일정에 맞춰 오직 ‘협상체결’에 몸 달아 양보를 거듭해 온 결과다.
이제 ‘쪽박협상’을 수습할 수 있는 방법은 ‘협상 중단’ 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수구신문들은 끝까지 ‘협상타결’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협상의 참담한 실상은 눈감고, 사실을 호도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려고 안간힘이다.
조선일보의 ‘유치한’ 여론 왜곡
조선일보는 26, 27일 양일간 한미FTA와 관련한 기획기사 비중이 높았는데, 국회의원 여론조사 결과를 왜곡해 ‘한미FTA 체결’에 힘을 실었다. 또 한미FTA 반대 시위와 관련해 민노당에 대한 색깔공세를 펴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26일 국회의원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내용을 <의원 55% “한·미 FTA 국익에 도움”>이라는 제목으로 1면부터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나섰다. 기사 제목만 보면 한미FTA에 대한 정치권의 찬성여론이 높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용을 살펴보면 “한·미FTA가 국익에 도움되나”라는 질문에는 55%가 ‘도움된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연내 한·미FTA 협상 체결”에 대해서는 찬성 35%, 반대 28%, 유보 34%로 나타났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 같은 내용은 작은 제목으로 <본지 설문조사…연내 체결 찬성 35%, 반대 28%>(1면)로 달면서 ‘유보’ 의견을 가리는가 하면, 3면 기사 제목을 <열린우리, 찬성22·반대22·유보 22명 ‘3등분’>으로 뽑아 찬성 입장이 1/3에 그쳤다는 사실은 교묘하게 은폐했다.
협상 내용에 대해서는 26일 <“이번이 마지막”…한·미 막판까지 밀고 당길 듯>(4면), <닮아서 더 껄끄러운 맞수/김현종·바티아 정면승부>(4면)에서 주요 협상 쟁점을 나열하는 수준이었다.
27일 <개성공단 제품 한국산 인정/FTA협정 발효후 논의할듯>(1면)에서는 개성공단 문제를 추후협상으로 미뤘다는 사실의 함의를 지적하지 않은 채 관련 내용을 단순 보도하는 데 그쳤다. 4면 <“자동차·섬유, 더 공격적으로…아직 58점짜리 협상”>에서는 전문가들을 상대로 한미FTA 협상에 대한 평가를 물어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엇갈렸다’고 실었다. ‘조선일보 기사’에서 한미FTA에 비판적인 전문가들의 의견을 함께 다뤘다는 점이 눈에 띄지만 찬반양론을 나열하는 데 그쳤고 협상의 문제점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28일 <미“쇠고기 재개방 일정 문서로 약속해달라”>(4면)에서는 “농업에서 돌파구가 트이지 않으면 다른 협상도 사실상 진도가 나가지 못할 것”, “미국이 자동차·섬유 등에서 진전된 안을 내놓지 않는 것도 쇠고기 등에서 만족스런 양보를 얻어낸 게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며 미국의 입장을 두둔하고, 정상회담을 통한 ‘협상 타결’을 ‘기대’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의 한미FTA 반대 운동에 대해서는 예의 ‘시위로 인한 불편’만 부각하고 나섰다. 26일 3면 <휴일 반FTA 7천여명 시위…서울 도심 극심한 정체>에서 ‘교통체증’을 부각했으며, 이날 사설 <민노당, 집회 허가 대신 따주는 사업 차렸나>에서는 “서울 도심이 또 엉망이 됐다”며 민주노동당을 비난했다.
사설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봉쇄한 경찰의 ‘시위 금지 조치’는 거론조차 하지 않고, 민주노동당 전 중앙위원의 386간첩단 사건 연루의혹, 방북, 평택 미군기지 반대 운동 등을 들며 민주노동당이 “좌파세력의 불법과 폭력을 부추기는 역할이나 해왔다”고 색깔공세를 폈다.
한편, 26일 천정배 의원, 27일 김근태 의원이 ‘졸속 한미FTA’에 반대해 단식에 동참하자 조선일보는 28일 사설 <FTA 반대 대선 주자들, 선진국 가는 다른 길 있나>에서 ‘표를 의식한 행동’으로 몰았다. 조선일보는 “FTA에 반대하는 범여권 주자들의 지지율을 모두 합해도 10%가 안 된다. 이대론 안 되겠으니 FTA 반대 깃발을 쳐들어 좌파 진영의 지지를 결집해 보겠다는 것”이라며 이를 맹비난했다.
반면 한미FTA에 찬성하는 정치권 인사들의 의견은 호의적으로 다뤘다. 4면에 “여권·야·정부…‘내가 한·미FTA를 찬성하는 이유’”라는 부제를 달고 강봉균 의원 <“공산품·자동차·섬유 새 시장 개척…수출에 활로”>, 윤건영 의원 <“한·미FTA는 포지티브섬…서로가 이득보는 게임”>, 유시민 장관 <“자유무역 촉진되면 국익에 도움…협정 체결돼야”>라는 기사를 비중 있게 다뤘다.
중앙일보, “FTA는 좋은 것” 반복
중앙일보 역시 한·칠레FTA, 미국-말레이시아FTA 등의 사례를 들어 한미FTA 체결에 힘을 싣는 한편 FTA 반대 진영을 비난했다.
26일 6면 기사 <칠레선 한국차·가전 점유율 급증/ 국내선 망한다던 포도 농가 늘어>는 한·칠레 FTA로 우리가 거둔 ‘성과’를 거론하며 ‘한미FTA도 이익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한·칠레FTA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미국을 상대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퍼주기 협상’의 실태는 외면한 채 ‘FTA는 우리에게 이익이 된다’는 주장을 일반화하려드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행태다.
한편 27일 6면 기사 <미 쇠고기 개방 확대 ‘의견 접근’>은 “핵심 쟁점 중 하나인 쇠고기 시장 개방의 폭을 현재보다 확대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우리 측이 쌀 시장을 지키는 대신 자동차 세제 개편 등 미국 측 요구를 들어주는 ‘빅딜’ 시나리오가 이뤄질 경우 어느 선까지 서로 양보할 수 있을 것인지가 최대 관건”이라며 한국 측의 일방적인 양보로 진행되고 있는 협상을 무비판적으로 다뤘다.
이날 6면 기사 <미국 ‘남은 대상 한국뿐’ 정치적 부담>은 미국-말레이시아 FTA협상 중단을 다뤘는데, “말레이시아가 핵 개발 의혹을 사고 있는 이란과 에너지 협력 사업을 한 게 미국 측 심기를 거슬렀다”며 미국-말레이시아 FTA가 정치적 이유 때문에 중단된 것으로 다뤘다. 나아가 “미국으로선 한·미FTA마저 실패할 경우 FTA 협상이 모두 무산돼 정치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해 미국-말레이시아 FTA 중단이 한국에 유리한 상황을 만든 양 호도하기도 했다.
또 같은 면 <노 대통령, 중동서도 FTA 일일이 챙기는데/‘노 정권 장관 출신’ 속속 등돌려>에서는 참여정부의 장관 출신인 천정배, 김근태, 정동영 등이 FTA 반대의견을 내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사설 <민노당, 불법 시위·집회 부추기지 말라>는 경찰의 ‘집회 금지’를 “매번 평화적인 합법 집회를 약속하고도 불법·폭력으로 일관하자 경찰이 대다수 국민을 위해 금지한 것”이라며 합리화하고 책임을 범국본에 떠넘겼다.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도 “민노당에 대해 범국본 대리인이란 말까지 나온다”고 비난하면서 “대다수 시민에게 피해를 주는 불법 집회·시위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8일에는 졸속적인 한미FTA를 반대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기사가 주를 이뤘다. 4면 <“국가 미래 책임지겠다는 정치인이 FTA 반대하는 것 이해 못해”>에서 FTA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을 비난한 강봉균 의원의 주장을 실었다. <취재일기/장관 출신들의 단식정치>, 사설 <국회에 웬 돗자리 단식판인가>에서도 김근태, 천정배 의원을 강하게 비난했다. 사설은 “반FTA 세력의 저항으로 국론이 찢어진 상황에서 주요 여권 지도자들이 대통령과 정권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불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반FTA 정서를 이용해 지지율을 올려 보려는 계산은 없는가”라고 질타했다.
‘국익’의 가치를 포기한 동아일보
동아일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 중앙일보와 다른 점이 있다면 한미FTA 협상 타결을 위해 미국에 ‘좀 봐달라’는 식의 주장을 폈다는 정도다.
동아일보는 27일 2면 기사 <“개성공단에만 빌트인 방식 적용”>에서 ‘개성공단’이 추후협상으로 밀렸다는 사실을 단순 보도하는 데 그쳤다.
이날 사설 <미, FTA 막판 협상에서 대국(大局)을 보기 바란다>는 “호혜의 정신” 운운하며 한국도 미국에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고, 미국도 적당한 수준에서 요구해 달라는 주장을 폈다.
사설은 “한국의 평균관세율은 11.9%지만 미국은 4.9%다. 이미 개방수준이 높은 미국더러 ‘동일한 수준의 추가개방’을 요구하기는 힘들다”, “뼛조각 쇠고기에 대해서도 합리적으로 접근할 때가 됐다”면서 사실상 한국을 압박했다. 또 “한국이 FTA를 제의한 것은 대미(對美) 수출을 늘리려는 의도가 크지만,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려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려는 목적도 있다”면서 “우리는 FTA의 이런 의미를 바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동아일보의 주장은 한미 FTA가 대미 수출을 늘리지 못해도 산업경쟁력을 키운다는 점을 이해하고 미국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자는 얘기다. ‘국익’을 가장 큰 가치로 여기는 원래 의미의 ‘보수’라면 나올 수 없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이 민망했는지 동아일보는 미국에 대해서도 “‘이익의 균형’이 깨져서는 안된다”며 무역구제, 섬유와 자동차 관세 인하 등에 대해 “미국의 자세 변화”를 ‘당부’했다. 또 쌀 개방 문제를 들고 나온 데 대해서도 슬쩍 언급했다.
그러나 사설은 “어느 쪽으로든지 협상 결과가 기운다면 대국민 설득과 의회 비준이 힘들다”, “특히 한국에서는 불균형이라는 평가가 내려질 경우 반미(反美)감정을 부추기는 재료로 악용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미국 측에 대한 ‘당부’가 어떻게든 한미FTA를 타결하려면 더 이상 우리 국민들의 불만을 키워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시민단체 시위와 관련해서는 26일 <반FTA시위 휴일 도심 마비>, 27일 <기자의 눈/도심 점거가 인권위 눈엔 ‘평화’였나>라는 기사가 실렸으나 역시 ‘교통체증’을 비롯한 불편을 부각하고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28일에는 한미FTA에 찬성하는 시민단체 기자회견 장면과 반대시위대가 끌려가는 사진을 나란히 배치하고 “찬성-반대 민심도 분열”이라고 캡션을 달아 시민단체의 한미FTA 반대 여론을 ‘물타기’ 했다.
졸속 한미FTA에 반대하는 의원들의 단식에 대해서는 28일 <기자의 눈/의원님들의 반FTA 단식 이제 와서 왜?>, <범여권 FTA 중구난방>(8면) 등의 기사를 싣고 “반대파, 강경 투쟁으로 존재감 높이려”, “열린우리당·통합신당모임은 ‘중구난방’”이라며 비판적으로 다뤘다.
한국이 한미FTA 협상에서 얻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정부가 대대적으로 한미FTA를 홍보하고 수구보수신문들이 참여정부에 ‘적극 협조’ 했음에도 한미FTA 협상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좋아지지 않고 있다.
최근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와 민주노동당이 여론조사기관 embrain에 의뢰해 3월 16일부터 17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83%가 한미FTA를 “다음 정부로 넘기더라도 국익과 사회적 영향력을 검토한 후 협상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또 77.4%는 이번 협상이 “우리나라의 이익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진행되었다”고 평가했다.
또 한겨레신문의 여론조사에서도 한미FTA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47.5%로, 찬성(40.5%)보다 높게 나왔으며, ‘올해 안 협상 체결’(28.3%)의견보다 ‘다음 정권에서 마무리하더라도 신중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67.0%)는 의견이 훨씬 높게 나타났다.
정부와 수구보수신문들이 온갖 사실 왜곡과 여론 호도를 통해 한미FTA 체결을 선동한다 해도 영원히 진실을 가릴 수는 없다. 이대로 협상이 체결된다면 엄청난 저항은 물론이고 참여정부는 역사의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에서까지 졸속 협상 체결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협상의 실체가 드러났는데도 끝내 협상을 밀어붙이는 정부의 무모한 행태에 제동을 거는 일이야말로 정치인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다.
“한미FTA만이 살길”이라며 선동했던 수구보수신문들도 더 이상 국민에게 죄를 짓지 말고 협상의 실상을 인정하라. 그것이 ‘국익’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보수세력’의 모습이자 국민에 대한 예의다. 나라를 송두리째 내어주겠다는데 박수를 치고 있는 행태가 참으로 기가 막힌다.
다시한번 강력히 촉구한다. 참여정부는 ‘쪽박’, ‘굴욕’, ‘퍼주기’ 협상을 멈추라. 그리고 국민 앞에 용서를 구하라. 그것만이 참여정부가 ‘살 길’이다. <끝>
2007년 3월 28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