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윤장호 병장 희생 관련 주요 신문 사설’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7.3.2)
명분 없는 전쟁에 더 이상 국민의 희생을 요구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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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다산부대 소속 윤장호 병장이 폭탄테러로 희생됐다.
윤 병장은 부대 안으로 교육을 받으러 온 현지인 기능공들을 인솔하기 위해 정문으로 나가 출입증 발급을 돕다가 탈레반을 자처하는 세력의 폭탄테러로 숨졌다. 합참은 이번 테러가 한국군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의 바스람 기지 방문과 관련 있다고 밝혔다.
우리는 고인의 죽음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며, 정부의 즉각적인 철군을 촉구한다.
지금 한국 군대가 대규모 파병되어 있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는 모두 한국군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미국의 침공으로 축출됐던 탈레반이 다시 세력을 모아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인 반격에 나서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외국군대에 대해 ‘봄철 총공세’를 펴겠다는 예고를 했다고 한다. 이라크는 더 심각하다. 유엔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지난 해 테러로 인해 이라크 사람 3만 4452명이 죽고 47만명이 다쳤다고 한다. 한국 자이툰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아르빌 지역은 이란과 접경지역이다. 최근에는 이란과 미국의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자칫하면 전쟁에 휩쓸릴 위험까지 있다.
무엇보다도 미국이 이들 지역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은 정당성도, 명분도 없다. 미국은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내세우며 침공했지만, 실제로는 중동지역에서의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고 석유산업의 이익을 위해 벌인 전쟁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이런 부도덕한 전쟁에 ‘한미동맹 강화’, ‘재건 과정에서의 경제적 이익’ 등을 내세우며 젊은이들을 보내 희생을 치르고 있다.
윤 병장의 죽음은 명분도 실익도 없는 부도덕한 전쟁에서 지금이라도 발을 빼야 한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보여준 사건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앞장서 부도덕한 전쟁에 동참할 것을 주장해온 조선일보 등 수구보수신문들은 윤 병장의 죽음에 대해 온갖 궤변을 늘어놓으며 파병을 정당화하고 ‘철군 여론’을 단속하려 들었다. 이들 신문은 미국의 명분 없는 전쟁에 동참하는 것을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로 치장하는가 하면, ‘철군’을 ‘테러에 굴복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나아가 명분 없는 전쟁에 뛰어드는 일이 ‘젊은이의 기세’라며 선동하기도 했다.
‘일제시대 학도병 선동’ 떠올리게 하는 조선일보의 파병 미화
조선일보는 3월 1일 사설 <고 윤장호 병장의 희생을 애도한다>에서 미국의 이익을 위한 명분 없는 전쟁 동참을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나 ‘의무’인 양 호도했다. 또 “이 길은 우리 민족이 처음으로 가는 개척의 길”이라며 “도전과 개척의 길은 위험한 길이다. 그러나 그 위험이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앞을 가로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사설은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은 서로 그 길로 달려가겠다며 손을 들어 자원하고 있다”, “이 거침없는 젊은이들이 바로 대한민국의 기세다. 이 힘이 우리를 반드시 세계사 주역 국가의 하나로 끌어올리고야 말 것”이라면서 파병 지원을 미화하고 선동했다.
중앙일보도 같은 날 사설 <윤 병장 희생의 참뜻 소중히 살려야>를 통해 비슷한 주장을 폈다.
사설은 파병을 “긴밀한 한·미동맹의 유지나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일원이 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국제사회와 동떨어지게 행동해선 생존과 발전을 도모하기 어려운 우리의 지정학적 변수가 고려됐다”, “윤 병장의 고귀한 희생도 이런 국제사회의 대의에 동참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명분 없는 전쟁을 ‘국제사회의 대의’로 포장했다.
나아가 “일부 시민단체에서 나오기 시작한 ‘조기철군’ 목소리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런 주장은 오히려 윤 병장의 희생을 헛되게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테러에 굴복해서 안된다’며 “그래야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더욱 높일 수 있고 우리 국민의 자존심도 고양된다”고 호도하기도 했다.
동아일보 역시 1일 사설 <윤장호 병장의 희생 기리며 ‘평화 결의’ 다진다>에서 ‘철군’은 ‘테러에 무릎 꿇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설은 “유엔 회원국으로서 우리는 테러와 분쟁으로부터 세계의 평화를 지킬 의무가 있다”며 명분 없는 전쟁 동참을 미화했다. 또 “윤 병장의 고귀한 희생을 반전이나 해외파병 반대, 파병부대 철수 주장의 빌미로 악용해서는 안된다”며 “그런 주장은 테러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지 국가를 대신한 젊은 장병의 희생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호도했다.
한겨레·경향, ‘철군만이 희생 줄인다’
반면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은 조기 철군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경향신문은 3월 1일 사설 <조기 철군만이 더 이상의 불행을 막는다>에서 파병 부대가 처한 위험한 상황을 지적하는 한편, 이번 사건의 본질이 “미국이 석유와 중동 패권을 위해 일으킨 ‘테러와의 전쟁’ 와중에 빚어진 참극”이라며 “명분 없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빨리 발을 빼는 것”이 더 이상의 희생을 줄이기 길이라고 주장했다.
2일 사설 <다산부대 전역병이 증언한 전쟁의 추악함>에서는 ‘추악한 점령군’으로 변질된 ‘다산부대’의 끔찍한 현실을 전했다. 다산부대에 근무했던 강성주씨의 증언에 따르면 ‘극도의 전장스트레스로 서로 증오하는 폭력적 부대 분위기’ 속에서 ‘장교간 사살사건’, ‘강간사건’이 있었으며, ‘보석을 사오라고 현지인을 협박’하는 사례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사설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한국군은 ‘평화 재건군’은커녕 ‘추악한 점령군’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며 “이 같은 일들을 은폐·묵살한 채 ‘영웅 만들기’에만 치중한다면 제2, 제3의 애꿎은 희생자가 잇따를 가능성이 높다”고 철군을 강하게 주장했다.
한겨레신문도 1일 사설 <철군으로 윤 병장의 희생에 답하라>에서 철군을 주장했다.
사설은 “윤 병장 소속 다산부대나 이라크 주둔 자이툰 부대 등 국외 파병부대의 안전을 사실상 미군에 맡기고 있는 것은 우리 군이 이번처럼 미군 대상 테러의 종속변수가 될 위험을 안고 있음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군이 아무런 정당성도 인정받지 못하는 점령군 미국을 지원하는 일을 계속 해야 할 것인지 심각하게 재고해봐야 한다”, “진정 동맹국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일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하고 맹목적으로 동맹 상대국 미국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으로 하여금 국제사회의 여론에 귀 기울이게 만드는 것”이라며 “우리 병사들을 즉각 철수시키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군한 국가들은 ‘테러에 굴복한 나라’인가?
수구보수신문들은 ‘미국의 전쟁’에 부역하는 것을 마치 ‘국제사회에 대한 의무’인 양 미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논리대로라면 지금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는 나라가 얼마나 되는가? 아프간에는 현재 37개국이 파병되어 있다. 이라크는 2006년 12월 기준으로 24개국이 파병되어 있으나 다국적군의 철군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해 이탈리아를 비롯한 4개국이 철군을 선언했으며, 덴마크는 오는 8월 철군을 공표했고, 리투아니아도 병력 감축을 선언했다. 미국의 혈맹이라는 영국마저도 감축을 예고했고, 일본은 2006년 육상 자위대를 철군했고 현재는 쿠웨이트에 항공자위대 병력만 남겨놓은 상태다.
우리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보수신문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파병 요구에 응하지 않았던 나라들은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감이나 평화수호 의지가 없는 나라들인가? 또 철군 또는 감축을 결정한 나라들은 테러에 굴복해 스스로의 위상을 실추시킨 것인가?
어디 그뿐인가. 미국 내에서조차 ‘대테러 전쟁’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명분 없는 전쟁을 정당화하고 파병을 미화하는 수구보수신문들의 행태야말로 ‘메이저’라는 신문들이 앞장서 국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나라의 위상을 깎아내리는 꼴’이다. 강대국의 전쟁은 무조건 정의로운 것이며, 우리는 이들의 전쟁에 무조건 부역해야 하는가?
아울러 우리는 안타까운 희생을 ‘감수해야 할 일’로 몰아가는 이들 신문의 행태에 대해서도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아무런 정당성 없는 전쟁에 우리 젊은이들의 생명을 바쳐 무엇을 얻겠다는 말인가? 특히 ‘도전과 개척의 길’, ‘세계 주역이 되는 길’ 운운하며 젊은이들의 파병 참여를 선동하는 조선일보의 주장은 일제의 침략전쟁을 ‘성전’인 양 미화하고 학도병으로 나설 것을 선동했던 그들의 추악한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추종의 대상이 일본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 ‘강대국을 따라야 한다’는 사대주의와 ‘거대한 명분 앞에 개인은 희생하라’는 파시즘적 선동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우리는 참여정부에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한다. 더 이상 명분도 실리도 없는 전쟁에 국민을 내몰아서는 안된다. 거듭 강조하지만 부끄러운 전쟁 부역을 주단하고 조속히 철군하는 것만이 윤 병장과 같은 희생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참여정부가 더 이상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기 바란다. <끝>
2007년 3월 2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