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 관련 방송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7.1.30)
등록 2013.08.3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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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의 진실은 소홀, 왜곡된 의제만 판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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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는 1970년대 긴급조치 위반 사건 1412건의 내용과 당시 판결을 정리한 보고서를 이번 주 안에 발표할 예정이었다. 이 내용이 한겨레에 의해 먼저 알려지면서 일부 법조계와 신문들이 판결내용 등 보고서 자체의 의미 보다는 긴급조치 위반사건 판결에 참여했던 판사의 명단 공개 여부만을 부각하며 논란으로 끌고 가는가 하면 ‘정치적 파문’으로 의제를 왜곡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KBS와 SBS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내용 보다는 당시 판결에 참여했던 판사가 현직에 있다는 것만을 부각했다. 또 방송사들은 이번 사안을 ‘명단 공개 논란’과 ‘정치 파문’으로 치부해 왜곡된 의제설정을 따라갔다. KBS와 SBS는 진실화해위원회의 ‘긴급조치 위반사건 보고서’가 한겨레에 보도된 것에 대해 ‘문서유출 논란’으로 호도하는가 하면 ‘과거사위 중립성 훼손’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명단 공개 논란’으로 왜곡된 의제 따라가
KBS는 29일 <유신 판결 명단 공개>에서 현직 법조계 최고위급 인사들이 긴급조치에 참여했던 재판 사례를 보도하고, 긴급조치 위반 유형을 언급했다.
이어 보도한 <거센 찬반 논란>에서는 “명단공개를 둘러싸고 법조계 안팎에서 ‘찬반 논란’이 거세계 일고 있다”며 법조계 일각의 시각을 전했다. 이 보도는 “실정법에 따라 내린 판결을 오늘의 기준으로 재단하는 게 적절하느냐에 대한 논란”이라며 “판결은 학문적 영역이나 역사적 평가에 맡겨야지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오해를 사는 것은 자칫 포퓰리즘의 문제일 수 있다”는 신현호 대한변협 공보이사의 인터뷰를 전하고, “논란이 정치적 파문으로 비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며 ‘정치파문 논란’으로 사안을 정리했다.
기자는 보도 말미에 “시기적으로 민감할 수 밖에 없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가 과거사 위원회 내부로부터 사전에 유출된 점에 대한 비판은 거세다”며 “과거사위가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일부 언론에 사실상 자료를 흘린 행위는 과거사위원회의 중립성과 순수성에 흠집을 남겼다”고 정리해 이번 사안을 ‘보고서 유출’, ‘과거사위의 중립성 훼손’ 등으로 평가했다.


MBC도 29일 <헌재 대법관 3명>에서 유신시절 긴급조치 위반사건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던 판사들이 아직도 현직 고위 법관이라며 이들이 내린 판결을 비중 있게 소개하고, 실명공개에 대한 대법원의 반박을 다뤘다.
이 보도는 “대법원은 실정에 따른 판결을 현재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여론몰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며 “현직 법관들의 경우 당시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배석판사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전했고, 이석연 변호사의 인터뷰를 통해 “또 다른 기본권이 침해되거나 갈등과 분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또 보도말미에 “결국 긴급조치 판사 명단은 또 다른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이어졌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SBS는 메인뉴스에서 관련 사안을 다루지 않았고, 30일 오전뉴스인 아침종합뉴스 <명단 공개 파문>에서 이를 다뤘다. SBS는 “명단이 일부 언론에 유출돼 파장이 일고 있다”며 긴급조치 위반 판결을 한 판사 중 현직에 있는 판사들의 판결 사례를 제시하고, 법조계의 주장을 다뤘다.
또 “과거사위가 명단공개 여부에 대한 내부 결론이 나기 전에 일부 언론에 자료를 사실상 유출한 행위로 인해 그 중립성에도 논란이 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25일 한겨레가 긴급조치 위반 사건의 내용과 유형을 보도하자 27일 MBC가 관련 보도를 내보냈지만 KBS, SBS는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정작 중요한 ‘조사내용’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다가, ‘명단 공개’에만 관심을 보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방송사들이 긴급 조치에 따른 판결의 핵심을 보지 않고, 판사 명단 공개 논란, 정치 파문 논란 등으로 사안을 치부한 것이다. 나아가 KBS, SBS는 보고서 공개를 문서유출 논란으로 해석하고 과거사위 중립성 훼손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진실화해위원회나 한겨레가 판사의 실명을 밝히지 않았더라도 판결사례를 통해 판사의 실명을 확인할 수 있다. 판결문은 공개되어 있고, 판사의 실명이 공개되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이를 국가 기밀 사항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현직 판사들의 실명이 밝혀지는 것이나 이들의 명예훼손이 아니라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 시절 ‘긴급조치’라는 폭압적인 도구에 의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억울한 고통을 당했는가’이다.


법조계의 부적절한 반발만 비중 있게 다뤄
아울러 방송 3사는 대법원이나 ‘법조계 일각’의 입장을 내보내며 이를 반박하는 내용은 내보내지 않아 최소한의 균형도 갖추지 못했다. 방송이 전한 법조계의 반박은 실정법에 따라 내린 판결을 오늘의 기준으로 재단하면 안 된다는 것,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것, 정치적 파문으로 이어질 것, 판결 당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배석판사였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번 진실화해위원회의 보고서는 긴급조치 위반 판결실태를 조사하고 분석한 것이다. 긴급조치 당시의 판결에 대해 오늘의 기준으로 ‘재단’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정리하고 밝힌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긴급조치 위반 유형 중 절반 정도(280여건)가 술을 마시거나 지나가는 소리로 박정희 유신체제를 비판한 경우임을 감안하면 실정법에 따른 판결이었다는 주장은 한심하다. 또 헌법 파괴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긴급조치를 실정법이었다고 발언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것 아닌지 묻고 싶다.
명예훼손이라는 주장도 과거의 잘못된 판결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전혀 지지 않겠다는 태도다. 또 판결 당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 ‘배석 판사’라는 주장은 스스로 재판관의 권위를 부정하고 잘못된 과거를 덮으려는 행태와 같다.


‘반성’ 없는데 어떻게 ‘화해’할 수 있나
긴급조치 위반 사건 뿐 아니라 군부권위주의 시절 ‘국가폭력’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이를 통해 과거의 불행을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진상을 규명한 후에 가해자들의 반성을 전제로 화해를 하는 것이 과거청산의 보편적 원칙이다. 진상규명 조차 하지 않고 무조건 ‘화해’를 위해 ‘용서하고 덮어두자’는 주장은 과거 청산을 하지 말자는 말이다.
사법부 전체가 나서서 지난날을 반성하고, 사과해야 할 시점에 실명공개를 반대하고 간접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에 우리는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이제라도 사법부가 당시 피해자와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당시 무고하게 고통을 당하고 죽음을 당한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보이고, 부끄러운 사법부의 과거를 반성한다는 최소한의 성의라도 보이기 바란다.
사안의 본질을 짚어내고 진실을 밝히는데 기여하기는커녕 왜곡된 의제를 확산시키고 있는 방송의 보도행태 또한 규탄한다. 방송이 지금 다뤄야 할 것은 재판관의 명단 공개나 ‘포퓰리즘’이냐 아니냐 따위의 의제가 아니다. 긴급조치의 실상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이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을 어떻게 위로해야하는지부터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닌가? 방송보도가 굴절된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해 보기 바란다. <끝>

 


2007년 1월 30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