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인권 침해적 연예인 관련 방송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7.1.24)
연예인 인격권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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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탤런트와 연인 관계였던 여성의 자살 사건을 다루는 방송의 선정성이 도를 넘어섰다. 그동안 연예인과 관련된 사건이 있을 때 마다, 언론들은 ‘대중의 관심이 높다’는 핑계로 그들의 인격권을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파헤치고 각색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취재관행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높았지만, 언론은 전혀 개선의 여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번 사건을 다루는 방송의 태도는 그야말로 ‘해도 너무한다’는 비판을 받을 만큼 심각한 수준이다.
뉴스가치가 없는 사건을 메인뉴스에까지 보도
우리는 이번 사건이 지상파 방송사 뉴스에 실릴만한 뉴스가치가 있는지부터 묻고 싶다. 이번 사건은 보도할만한 공익적 가치가 있다거나 시청자의 알권리 보장 차원의 의미가 있는 내용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1월 12일 SBS <8뉴스>는 ‘세상이 힘들다며’에서 월수입 2천여만 원의 고소득자인 유흥업소 여종업원이 자살했는데, 그녀가 유명 탤런트와 연인관계였다고 보도했다. 이 사건은 먼저 12일 정오 이후 인터넷 포탈뉴스에서 보도되었다. 그러나 SBS의 이 보도는 ‘유명탤런트’가 누구인지에 대해 온갖 ‘설’이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16일 탤런트 오지호가 홈페이지에 자신이 여종업원의 연인이었음을 밝혔으며, 17일에는 KBS <아침뉴스타임>, SBS <뉴스와 생활경제>, MBC <생방송 오늘 아침>이 일제히 이 내용을 다루었다.
노골적인 사생활 침해 심각한 수준
또한 이렇게 사건이 확산되면서 인권침해의 우려가 있는 방송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1월 19일 MBC <섹션TV 연예통신>은 임모 씨의 집을 찾아가 방과 핸드폰 사진 통화내역 등을 공개했는데 이는 노골적인 사생활 침해였다.
<섹션TV 연예통신>은 오지호가 홈피에 남긴 심경고백을 간단히 전하고, 죽은 임모 씨의 아파트를 찾아가 오지호의 대형사진, 오지호가 출연한 드라마 촬영 대본, 휴대폰에 저장된 오지호 모습, 죽기 전에 오지호와의 마지막 통화기록 등 임모 씨의 유품을 상세히 보여주며 두 사람이 연인 관계였다는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임씨가 ‘출중한 미모’였다며 얼굴이 흐리게 처리된 임씨 사진을 공개했고, 오지호와 해외여행 당시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또한 오지호 미니홈피에 1월 3일 연인과 헤어졌음을 표현한 글이 실렸었다며 그 내용을 보여주는가 하면, 임씨의 미니홈피에 올라온 친구들의 애도 글을 보여주기도 했다.
<섹션TV 연예통신>이 인권 침해 논란을 빚자, <섹션TV 연예통신>의 연출을 담당하고 있는 조희진 PD는 “고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유가족들의 동의를 얻고 촬영한 것”이고“정보전달 차원과 프로그램 성격상 내보내게 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아무리 탤런트가 공인이고, 오지호가 스스로 임씨의 연인임을 밝혔다 하더라도, 사적인 사진과 통화기록 등을 노출시키는 것은 인격권 침해이다.
자살의 원인을 ‘오지호와의 결별’로 연결시키는 태도도 문제
한편 이번 사건에서 일부 언론이 임씨의 자살 원인을 오지호와의 결별과 연결시키려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도 문제이다. 1월 12일 SBS <8뉴스>는 임씨의 자살 원인을 오지호와의 관계 때문임을 암시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보도에서 기자는 “유흥업소 동료들은 김 씨가 최근 한 명 남자 연예인과 사귀다 헤어진 뒤 힘들어했다고 말했습니다.”라고 멘트 했으며, “경제적인 이유는 전혀 없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쉬쉬하고 숨기고 이런 부분을 힘들어 했어요.”라는 임씨의 동료 인터뷰도 보여주었다.
또 KBS <아침뉴스타임>은 임씨의 친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만나서 힘들고 헤어져도 힘들고 이런 것 때문에 너무 힘들어했고 소속사 측이 너무 바쁘니까 이별을 아파할 시간도 없었겠지만 오지호는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너무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고 이런 것 때문에 더 마음 아팠었거든요.”, “장례식장에서 아버님하고 다 3일 동안 잠도 안자고 기다렸거든요. 마지막 가는 길에 인사라도 하게하고 싶어서. (그런데) 전화번호를 바꿔버리시고 안 오고 연락도 안 되고 그러니까 그런 것 때문에 너무 화가 났던 거죠.”라며 오지호에 대한 원망을 자세히 다루었다.
유서도 남기지 않은 자살 사건의 경우, 자살의 원인을 단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방송에서 임씨의 죽음을 오지호와의 이별 때문인 양 몰아간 것은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닐 뿐더러, 오지호에 대한 인신공격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우리는 두 사람의 진실한 사랑을 담았다면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기는 방송사의 인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섹션TV 연예통신> 제작진은 “(다른)기사를 보면서 호스티스라는 말로 내용이 전달돼 보는 이들에게 일종의 선입견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섹션TV 연예통신>에서는) 오지호와 고인의 순수했던 사랑을 전달하기 위해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게 객관적으로 다루기 위해 고심했다”고 밝혔다. 1월 17일 <생방송 오늘아침>에서도 오지호의 ‘진정한 사랑’을 강조하면서 유가족이나 오지호 모두 언론에 의해 망인의 명예가 실추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내용을 전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이유로도 굳이 보도할 필요가 없는 이 사건을 ‘유명 탤런트’와 관계있다는 이유만으로 선정적으로 부각시킨 자체가 그들을 흥밋거리로 다룬 것이라고 본다.
지상파 방송사 연예인 인격권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 필요
연예인의 사생활이 방송의 주요한 소재가 된지 이미 오래다. 지상파 오락프로그램에서는 연예인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는다며 그들의 사생활을 캐묻는 토크쇼가 방송되며, 아침 교양프로그램에서는 냉장고 속 음식과 그들의 부부생활까지도 들여다보고 있다. 이른바 연예정보 프로그램에서는 연예계에 대한 정보라는 명목으로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여주고 있으며, 아침뉴스에까지 연예인뉴스 코너를 만들어 가십성 연예소식을 보도한다.
연예인은 분명 ‘공인’이다. 그러나 ‘공인’이라고 해서 모든 사생활이 공개되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라는 핑계로 연예인에 대한 흥미위주의 선정적이고 상업적 방송행태가 계속되도록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방송3사가 연예인 관련 보도에 있어 인격권 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이를 실천하기를 촉구한다. <끝>
2007년 1월 24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