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방통위 설치 법안의 국무회의 통과’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7.1.4)
참여정부의 오만과 무지를 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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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국무회의에서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법안이 확정됐다.
지난달 28일 우리는 국무조정실이 차관회의에 올린 방통위 설치 법안에 대해 그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반대의 뜻을 밝힌 바 있다. 아울러 참여정부가 방송과 통신을 경제관료들에게 통째로 넘겨주는 이런 법안을 밀어붙인다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정권’으로 평가될 것임을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12월 28일 열린 차관회의는 국조실이 올린 법안을 방통위의 ‘행정부처’ 성격을 더욱 강화시키는 내용으로 수정했고, 국무회의는 이를 그대로 통과시켰다.
방통위의 성격과 위상에 대해 당초 국조실이 공개한 초안은 방통위를 정부조직법상의 중앙행정기관으로 두되 “방송에 관한 사항”에 대해서는 국무총리의 행정감독권을 적용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었으나 이 역시 방통위의 직무독립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차관회의는 한발 더 나아가 △방송 기본계획 △방송사업자 허가·재허가·승인·등록·취소 △KBS 이사추천 △EBS 임원 및 이사추천 △방송문화진흥회 임원 임명 등을 제외한 모든 업무에 대해서는 국무총리의 지휘 감독을 받도록 고쳐졌다. 방통위의 업무 독립성을 훼손하고 방송통신의 주요 정책을 정통부 관료들에게 더욱 확실하게 넘겨주겠다는 발상이다.
우리는 국무회의가 이런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사실을 접하며 분노를 넘어 참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개혁세력을 자처하는 참여정부 아래에서 방송통신의 공적 가치가 훼손될 것이 뻔한 방통위 설립 법안이 강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했기 때문이다.
3일 국무회의는 대통령이 직접 주재했으며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현실에서 빠른 속도의 개혁을 이루기 위해 내 책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한다.
우리는 대통령이 “국민들의 평가를 잘 받고 싶은 욕심을 포기했다”고까지 말하면서 끝까지 추진하겠다는 ‘개혁’의 내용이 도대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 부처에 방송을 맡겨도 좋을 만큼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튼튼하게 성장하고 안착했단 말인가? 참여정부가 언제 그런 업적까지 이뤘단 말인가? 거듭 말하지만 지금 국무회의가 통과시킨 법안은 어렵사리 만들어놓은 방송위원회 구조에 대한 사망선고이며 행정편의와 부처이익을 위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어리석은 선택일 뿐이다.
이번 법안의 근본적인 문제는 ‘위원 구성의 정치적 독립성 훼손’이나 ‘방통위의 직무독립성 훼손’이라는 말만으로 표현될 수 없다. 이 법안은 공적 가치를 보호해야 할 방송과 통신 분야의 정책 결정권을 정보통신부에 넘겨줌으로써 시장의 논리, 산업의 논리, 자본의 논리가 방송통신 정책을 좌우하도록 만들 것이다. 정통부가 그동안 방송 통신 관련 주요 현안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왔는지 새삼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참여정부가 방송통신융합의 초기 논의부터 정통부와 산업논리에 확실하게 힘을 실어준 것은 이후 방통융합 논의 과정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통부 관료들을 중심으로, 산업 논리에 따라 재편되는 방송과 통신의 구조 변동은 모든 언론 영역에 부정적 파급을 미칠 것이다. 예를 들어 통신자본의 방송진출을 용이하게 하고 신문과 방송의 교차소유를 풀어주는 정책들이 추진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생각해보라. 참여정부와 노 대통령은 수구신문과 싸우면서 개혁을 추진해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상은 수구신문들이 가장 원하는 방향의 방송통신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그것은 거대 미디어복합그룹과 통신자본을 비롯한 거대자본에 의한 민주주의 공론장의 파괴를 말하는 것이다.
참여정부와 노 대통령은 홍석현 씨가 중앙일보 회장으로 복귀한 것의 함의가 무엇인지, 조선일보가 인터넷 방송프로그램까지 만들면서 노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따져보고, 지금의 방송통신 융합논의가 이들에게 장기적으로 어떤 ‘선물’을 줄 것인지 뼈아프게 돌아봐야 한다. 그저 수구신문들이 ‘방통위 위원들을 대통령이 다 임명한다’고 비판하는 대목만 들여다보고 ‘수구신문의 반대를 뚫는 것이 개혁’이라는 착각에 빠진다면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정권이 될 것이다.
우리는 참여정부가 방통위 설치 법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분명하게 확인한 만큼 더 이상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다.
다만 개혁을 내걸고 집권했고, 지금도 개혁정권을 자처하는 참여정부의 오만과 무지로 인해 민주주의를 위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송의 기본기능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미 우리는 방송과 통신의 공적 가치가 경제관료들의 손에 짓밟히는 상황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우리는 방송통신융합 논의가 산업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방통위가 제 위상에 맞게 민주적으로 구성될 수 있도록 제 시민사회단체들, 언론단체들과 함께 끝까지 싸울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참여정부에 의해 무력화된 것이나 다름없는 방송위원회가 방통위 설치 법안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분명한 입장을 밝힐 것을 촉구한다.
<끝>
2007년 1월 4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