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미국의 무역구제 5개안 거부’․‘산자부 FTA연구용역보고서’관련 주요 신문보도에 대한 민언련논평(2006.1.3)
‘손해보는 FTA’의 실상, 감추는 게 능사인가
.................................................................................................................................................
지난 달 27일 미국 협상대표부는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한국이 FTA 협상에서 강력하게 요구해 온 반덤핑 규제완화와 관련된 ‘무역구제 5개 요구사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4대 선결조건’까지 들어주고도 한미FTA 협상에서 미국의 공세적 태도에 밀려 이렇다할 ‘성과’를 얻지 못한 우리 정부는 ‘무역구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이 분야에서조차 정부의 기대가 무너진 셈이다.
한편 1월 1일 산업자원부가 공개한 인하대 정인교 교수의 연구용역보고서에 따르면 한미FTA를 비롯해 일본과 중국, 아세안과 FTA를 체결할 경우 10년 동안 1만 3천여개의 기업이 피해를 입을 것이며, 기업 구조조정 등으로 10만여명의 실직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산자부는 이를 근거로 피해가 예상되는 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10억원의 예산을 국회에 요청했다.
정부는 이 보고서가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며, 아직 시작하지 않은 여러 FTA까지 포함해 추정한 것’이라고 그 의미를 축소했지만 그동안 FTA 체결의 장밋빛 미래만을 선전해온 정부 주장과 다른 내용을 담은 공식보고서라는 점에서 다시 한번 FTA 체결의 ‘대차대조표’를 꼼꼼히 따져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FTA의 조속한 체결을 선동해 온 일부 신문들은 미 협상대표부의 보고서, 산자부가 공개한 보고서 등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
조선·중앙, 한미FTA 부정적 내용 보도 안 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아예 관련 보도가 없다. 오히려 이들 신문은 2007년을 맞아 내놓은 기획기사와 사설에서 한미FTA 체결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1월 1일 사설 <국민이 중심을 잡아야 나라가 산다>에서 신년의 주요 과제 중 하나로 한미FTA 체결을 꼽았다. 사설은 “한·미 관계는 사상 최악의 상태”라며 “다음 정부로 넘기기 전 최소한의 봉합은 해 놓아야 한다”며 ‘한미관계 복원’을 위해 한미FTA가 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자원이 없는 우리가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라며 “노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마무리해 주기를 기대한다”고 한미FTA 체결을 촉구했다.
조선일보는 1월 1일 30면 <2007 한국의 과제-오피니언 리더가 말한다>라는 기획기사에서 8개 주요 이슈에 대한 ‘오피니언 리더’들의 의견을 실었다. 한미FTA에 대해서는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의 주장을 실었다.
신 대표는 “한·미 FTA의 성공적 타결이야말로 여야를 초월해 2007년에 반드시 이뤄야 할 국가적 과제”라며 FTA를 체결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로 “외교·안보 분야에서 느슨해진 한·미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라고 꼽았다.
동아, “한미 ‘상생의 길’ 가라”
조선, 중앙일보와 달리 동아일보는 12월 29일 1면 <미 “수용못해” FTA 먹구름>에서 미국의 무역구제 관련 요구 거부로 한미FTA 협상이 “어려움에 빠질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또 이날 사설 <미국, 자기네 법은 손 안대고 FTA하자는 건가>에서는 미국의 일방적 태도를 조심스럽게 지적하기도 했다.
사설은 “한국은 미국의 핵심 관심사항인 자동차, 의약품, 환경, 노동 등에서 상당한 양보 의사를 비쳤다”, “당초 우리는 무역구제와 관련해 15개항의 개선을 요구했으나 미국 협상단의 처지를 고려해 6개항으로 줄였다”는 등 그 동안 한국 측이 얼마나 양보를 해왔는지 거론했다. 또 “우리도 FTA 때문에 많은 국내법을 고쳐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우리는 법을 고치는데, 미국은 법에 손도 안대겠다면 일방적이지 않은가”라며 “우리측 요구사항은 미국이 이스라엘 등 일부 국가에는 허용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설은 “무역구제는 한국의 핵심 관심 사항으로 미국의 불공정한 제도를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FTA의 실익이 있을지조차 의문”이라고 언급하면서도 “양측은 이제라도 호혜정신을 살려 상생의 길을 찾기 바란다”는 애매한 해법으로 우리에게 실익이 없는 한미FTA 체결을 거듭 당부했다.
또 6면 <쇠고기 뼛조각에 반덤핑 마찰 ‘설상가상’>에서는 전반적으로 한미FTA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했는데, “미 무역대표부가 협상 파트너인 한국과 미국 의회의 사정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처지”인데다 “한국과는 협상을 계속해야 하고 동시에 미 의회의 눈치도 봐야 하기 때문에 외줄을 타듯 조심스러운 상황”이라며 미 무역대표부의 ‘무역구제 요구사항’ 거부를 두둔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한편 산자부 보고서와 관련해서는 1월 2일 b2면에 <“FTA체결 땐 향후 10년 10만명 실직” 산자부, 연구용역 보고서>에서 단순 보도했다.
경향·한겨레신문, 한미FTA 협상 ‘얻을 것 없다’ 보도
반면 경향신문은 12월 29일 1면에 <미 ‘반덤핑 규제완화’ 한국안 거부/FTA협상 기로에 섰다>를 싣고 “우리측의 거의 유일한 공세분야였던 반덤핑 규제 완화를 위한 무역구제 5개항 마저 미국이 거부하면서 우리측은 협상을 지속할 명분을 잃게 됐으며, 한·미FTA 협상은 기로에 서게 됐다”고 전망했다. 이어 “배수진을 친 무역구제 협상조차 거부당하면서 우리측 협상단의 전략부재가 여실히 드러났다”는 이해영 한신대 교수의 인터뷰를 실었다.
같은 날 3면 <얻을것 없는 FTA “해봐야 손해”>에서도 한국 협상단이 “양자간 협상에서 받아낼 수 있는 것 중 우선순위를 골라 최종적으로 선별 제시한 항목”이자 “우리측엔 일종의 ‘마지노선’”인 ‘무역구제 5개 요구사항’마저 거부당했다며, “전방위적인 미국의 공세에 비해 미미하기 그지없는 무역구제 요구마저 거부하면서 그걸 축소하거나 대체를 요구한 것은 사실상 다른 분야에서 ‘더 내놓으라’는 간접적 압박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미국의 의도를 분석하기도 했다.
한편 1월 2일에는 17면에 <“FTA체결 땐 대량 실업 불가피”>라는 기사에서 산자부의 보고서 내용을 다뤘다.
한겨레신문도 12월 29일 1면 <미, 무역구제 개선 최종거부>를 통해 미 무역대표부 보고서를 보도했다. 한겨레는 미국이 ‘협상의 여지를 남겨뒀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미국 쪽 설명은 문서형태가 아닌 구두로 들었을 뿐이어서 구속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무역구제와 관련한 한국정부의 5개 요구안 자체가 “속빈강정”이라며 “업계가 꼽은 17가지 개선안 가운데 핵심 1~5위는 이번에 미국한테 단 한건도 요구하지 않았다”는 민노당 심상정 의원의 지적을 보도했다.
이어 1월 2일 2면 <4대 FTA 체결 영향 10년간 10만명 실직>에서는 “정부쪽에서 에프티에이 관련 산업피해 추정치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산자부 보고서 내용을 보도했다.
그동안 정부와 일부 신문들은 한미FTA가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이라는 논리로 그 체결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한미FTA 협상에서 이익을 볼 것이라고 내세워 온 거의 ‘유일한’ 무역구제분야 요구사항마저 미 협상대표부가 거부했다. FTA 체결이 가져올 산업 피해를 전망한 정부 부처의 용역보고서도 나왔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한미FTA 체결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 냉정하게 따져보는 것이 상식적인 보도태도가 아닌가? 그러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미 무역대표부가 우리 측 요구를 거부했다는 사실마저 보도하지 않고 ‘한미관계 회복’ 운운하며 협상 타결을 촉구하고 있다. 최소한의 균형성을 상실한 보도태도이자 이들 신문이 걸핏하면 내세우는 ‘국익’을 해치는 보도태도가 아닐 수 없다. <끝>
2007년 1월 3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