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법원의 ‘반FTA 시위자 영장기각’ 관련 주요 신문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6.12.21)
‘무조건 구속수사’ 주장이 법치주의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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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법원은 반FTA 시위 가담자 6명에 대해 검찰이 재청구한 영장을 기각했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이상주 부장판사는 시위 가담자 6명의 신분이 확실하고 도망갈 우려가 없으며, 대검찰청 예규인 ‘구속 수사 기준에 관한 지침’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자 검찰은 거세게 반발하며, 19일 ‘대법원 예규’를 문제 삼고 나섰다.
대법원 예규는 일선 법원이 압수·수색영장 발부나 중요한 민·형사 사건의 진행과정 등을 상급기관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검찰은 이 예규에 따라 진행 중인 사건이 대법원까지 보고 될 경우 대법원이 일선 판사들의 판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수사정보가 유출될 우려도 있다는 등 대법원 예규의 문제점을 들고 나옴으로써 잇따른 영장기각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법원의 예규가 재판의 독립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면 이는 차분하게 검토해서 합리적 해결방안을 모색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검찰이 반FTA 시위자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데 반발하며 대법원 예규를 거론하고 나선 것은 이번 영장기각의 본질이 ‘검찰-법원 힘겨루기’에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대법원의 압력 때문에 반FTA 시위자들에 대한 영장이 기각된 것처럼 사태를 왜곡할 우려가 있다.
당장 반FTA 시위를 끊임없이 비난해 왔던 조선·중앙·동아일보는 검찰의 반발을 ‘반기며’ 법원의 영장 기각을 비난하고 있다. 또 반FTA 시위자에 대한 영장기각의 본질이 ‘검찰과 법원의 갈등’에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한편, 대법원이 영장기각에 ‘압력’이라도 행사 한 것처럼 호도하고 나섰다.
조선일보, 대법원 ‘외압설’ 부각하고 검-법 힘겨루기로 사태 호도
조선일보는 ‘대법원 예규’를 들어 대법원이 법원의 판결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한편, “코드판결”이라는 주장까지 실어 영장기각에 반발하는 검찰에 힘을 실어 주었다.
조선일보는 20일 4면 기사 <검찰 “대법간부들 영장 동시 열람이 문제”>에서 검찰이 문제 제기한 대법 예규가 ‘재판의 독립’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영장이 4번이나 기각됐던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의 구속영장 정보도 대법원장까지 보고됐다”면서 론스타 관련 구속영장 기각 사례를 끌어들여 잇따른 법원의 영장기각에 어떤 ‘외압’이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같은 면 <“코드판결…로또영장…”>에서는 “과거 검찰이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국민의 비난을 받았던 것처럼 지금은 법원이 그 길을 가고 있다”는 임채진 지검장의 발언을 실어주는 한편, 영장기각률이 높아진 데 대해 ‘대검 고위관계자’, ‘다른 간부’ 등 익명의 취재원의 입을 빌어 “법원이 너무나 일사불란하게 대법원장 앞에 줄서기를 하고 있다”, “법원의 논리는 궤변이다. 기각과 발부를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로또 영장’이라는 말도 있다”는 등 대법원이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몰아갔다.
이 같은 보도태도는 21일에도 계속되었다. 4면 <상당수 판사 “예규 문제있다”>는 기사는 작은 제목도 <“윗선 보고는 재판독립 침해 소지”>라고 달고 “영장 접수부터 실질심사와 발부결정까지 하루 이틀이 걸리는데 국민들은 그동안 (대법원이) 음으로 양으로 압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면 <검 “전두환 정권때 만든 것”…대법 “대응할 가치없는 주장”>에서는 작은 제목을 <법·검, 이번엔 ‘예규’ 혈투>, <고법부장 구속 때부터 6개월째 싸움>, <감정 골 깊어 접점 쉽게 못 찾아>라고 달고 두 집단의 ‘힘겨루기’에 초점을 맞췄다.
나아가 이날 사설 <법원도 진보의 정치구호에 감염됐나>는 아예 법원의 영장기각이 ‘진보의 정치구호에 감염된 것’으로 왜곡했다. 사설은 영장이 기각된 6명을 ‘상습적·폭력적 불법시위자’로 낙인찍고, 법원이 엄정한 구속수사 기준을 적용한 데 대해 “법원이 법치주의 대신 시대정신이니 진보니 하는 얄궂은 정치 구호에 전염된 나라치고 선진화에 성공한 나라가 없다”면서 비난했다.
동아일보, 대법원 외압설 부각
동아일보도 ‘대법원 예규’를 거론하며 대법원의 외압 때문에 영장이 잇따라 기각되는 듯이 보도했다.
20일 1면 <“법원 영장발부 등 일일이 대법보고…사법독립 훼손”>, 3면 <검, 영장 잇단 기각에 ‘대법 입김’ 의심> 등 제목부터 영장 기각을 ‘사법독립 훼손’으로 몰았다.
이날 사설 <폭력시위에 따뜻한 사법부, 상 주는 민주화위>에서 동아일보는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이 ‘폭력시위’를 두둔한 것처럼 왜곡하며 구속수사만이 능사라는 주장을 폈다. 사설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폭력시위병을 정말 걱정하고 치유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다면 이처럼 물렁한 ‘탁상 판단’을 하지는 않았을 것”, “법원이 이런 식으로 영장 발부의 관례를 무시한다면 법을 고쳐서라도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으로 법원의 영장기각을 비난했다.
21일에는 12면 기사 <법 “국가기강 무너져” vs “나라가 망할 일” 검>에서 “두 기관이 서로 상대 기관의 내규까지 문제 삼았다는 점에서 양측의 갈등은 돌아서기 어려운 선을 넘은 듯한 분위기”라고 양측의 갈등상황을 보도했다.
중앙, ‘시위대의 폭력성’ 부각해 영장기각의 본질 흐려
중앙일보는 법원이 영장을 기각한 것은 6명의 혐의에 대한 판단이라는 본질을 흐리고, 이들이 검거된 6일 시위의 폭력성을 부각함으로써 법원의 영장 기각이 잘못된 것처럼 몰아갔다.
20일 1면 기사 <“불법시위 막으라는 국민적 공감대 무시”>는 안창호 검사의 반발을 상세하게 전하며 6일 시위로 인한 교통혼잡 등의 피해와 전·의경 5명의 부상 등을 부각했다. 그러나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6명에 대한 구속 수사 여부를 판단하는데 있어 시위 전반의 ‘폭력성’을 부각하는 것은 교묘한 여론몰이라 할 수 있다.
12면 <검찰 “법원 내세우는 가치 뭔지 밝혀야”/법원 “검찰, 국민정서 의지해 법원 공격”>에서도 “‘공권력 보호와 폭력방지’라는 최소한의 질서유지권조차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 “폭력시위를 주도한 것만으로도 구속사유”, “폭력시위 주도자들에 대한 영장까지 기각하며 법원이 내세우는 가치가 과연 무엇인지 밝혀야 할 것”이라는 검찰의 일방적 주장을 실었다. 반면 법원 측의 입장에 대해서는 “폭력시위로 인정할 수는 있지만 그 정도가 아주 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수세적으로 언급한 부분만을 실었다. 또 이번 판결에 대법원이 관여한 것처럼 <“대법원이 영장 기각 지휘”>라는 작은 제목을 달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21일에도 시위대의 폭력성을 부각하며 법원의 영장기각을 문제 삼았다.
1면 기사 <“경찰관 이 부러뜨려도 외교부 청사 난입해도 구속 안 되는 게 현실”>은 시위 관련 구속영장이 기각된 사례를 담은 검찰의 ‘내부문건’을 인용해 법원의 영장 기각이 불법 시위를 두둔하는 것처럼 몰았다. 특히 이 기사는 ‘경찰 이를 부러뜨리고’, ‘전치 4개월 상해를 입히고’, ‘공관에 난입했다’는 등 각각 다른 시위에서 벌어진 과격·폭력사례를 거론하며 시위자들에 대한 영장기각을 ‘과격폭력시위 두둔’으로 왜곡했다.
또 사설 <법관 독립 훼손 우려되는 재판 예규>에서는 “법원이 불법·폭력 시위자에 대해서까지 이처럼 온정을 베푼다면 법치는 누가 지켜야 하는가”라며 집시법 위반에 대해 영장을 기각하거나 실형을 선고하지 않는 것을 폭력시위에 ‘온정을 베푼 것’처럼 몰았다.
경향신문, 검찰의 구속수사 관행 비판
반면 경향신문은 사설을 통해 법원의 신중한 판단을 지지하고, 인신구속을 불법집회 예방의 수단으로 취급하는 검찰의 태도를 비판했다.
20일 사설 <영장청구를 집회 봉쇄 수단으로 여겨서야>에서는 “인식구속을 불법집회 차단의 예방적 수단쯤으로 여기는 검찰의 인식”을 꼬집었다. 또 “헌법에 보장된 집회·시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 “시위과정에서 발생한 불법·폭력행위는 법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일”이라며 “불구속 재판이 원칙이지만 굳이 인신구속의 필요성이 있다면 검찰 스스로 마련한 지침이라도 지켜야 한다”, “마구잡이 인신구속은 결코 사회정의와 공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경향신문은 대법원 예규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21일 10면 기사 <법 “공직 기강 무너졌다”/검 “나라가 망할 일이다”>는 대법원 예규가 “구속영장을 복사하거나 스캔해 대법원에 보고하는 것은 필요 이상으로 지나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는 점을 밝혔다.
한겨레신문은 20일 8면 <“영장발부 등 대법에 보고하는 규정 없애야”>에서 대법 예규에 대한 검찰의 주장과 대법원의 반박을 함께 실었다. 아울러 21일 8면 <이번엔 ‘대법원 예규’ 충돌>에서는 백승헌 민변 회장과 송기춘 교수의 발언을 인용해 검찰이 대법원 예규를 거론한 것을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대법원 예규가 법관 통제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우리는 이미 수구보수신문들이 구체적인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구속영장이 청구된 시위가담자들을 ‘폭력시위자’, ‘주동자’ 등으로 낙인찍고, 이들의 구속 수사를 주장하며, 법원의 영장기각을 ‘폭력시위 두둔’으로 왜곡하는 행태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또한 ‘구속수사’만이 폭력시위를 근절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몰아가는 이들 신문의 보도태도가 오히려 ‘법치주의’, ‘인권수사’의 근간을 흔들고 우리 사회의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는 무책임하며 위험한 주장이라고도 지적했다.
그러나 이들 신문은 여전히 법원이 ‘왜’ 재청구된 영장을 기각했는지는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채, ‘검찰-법원의 힘겨루기’에 초점을 맞추고 검찰의 반발에 힘을 실어주면서 법원의 영장기각을 깎아내리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검찰 ‘관계자’들의 주장을 빌어 ‘코드판결’, ‘대법 입김’ 운운하는 등의 행태는 자신들의 ‘FTA 반대 진영에 대한 악감정’을 법조계의 문제에까지 투영하는 유치한 짓이다.
우리는 수구보수신문들이 정말 대법원 예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이 문제를 다룰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반FTA 시위자에 대한 영장을 엄정한 기준에 따라 처리하는 것과 대법원 예규 문제를 뒤섞어, ‘반FTA시위 공격=법원의 영장기각 비난=검찰 주장 두둔’이라는 단순한 시각으로 기사를 쓰는 것은 자신의 저열한 수준을 드러낼 뿐이다.
한미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미워도 ‘구속 수사 여부는 엄격하게 따지는 것이 옳다’는 정도의 성숙한 태도를 갖추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보수언론’이라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끝>
2006년 12월 21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