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국무조정실 방통위 설립 법안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6.12.8)
정통부의 방송위 흡수통합에 앞장서는
국무조정실은 누구를 위한 조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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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6일 국무조정실이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설립에 관한 법안을 입법예고했다.
법안은 제1조에서 방통위의 설립목적을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 제고”, “방송통신산업의 진흥 및 국제경쟁력 강화”, “방송통신위원회의 독립적 운영을 보장함으로써 국민의 권익 보호와 공공복리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설립목적이 제대로 실현되기만 한다면 더 바랄나위가 없다. 그러나, 그 동안의 논의과정과 추진과정 및 현재의 법안을 볼 때, 이러한 명분이 허울만 남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방송 공익성 실종된 국조실 법안
법안 제1조에서도 드러나듯, 방송통신 융합추진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방송의 공공서비스와 보편적 서비스를 확대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둘째는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통해 관련 산업의 발전을 촉진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함께 도모해야 하는 것이지만, 첫번째는 두번째에 비해 더 중요하고 선차적이다.
방송의 공공서비스와 보편적 서비스는 사회의 유지·발전과 국민주권 구현을 위한 국가의 기본 의무이다. 방송통신 융합에 따른 산업적 팽창 속에서, 또는 상업적 콘텐츠 범람과 정보격차의 심화 속에서, 이것을 위축시키지 않고 오히려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방송통신융합의 필수적 전제조건인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상황은 방송의 공공서비스와 보편적 서비스에 관한 논의는 실종되고, 업무관할과 기득권 유지를 둘러싼 부처간 갈등과 야합만이 남아 있는 형국이며, 국무조정실이 ‘정통부를 중심으로 현행 방송위의 권한과 기능을 흡수통합’하는 방통위 법안을 내놓는 최악의 상황으로 왜곡되었다. 국무조정실이 내놓은 이번 법안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반민주적·반공익적 폭거이다.
우선, 우리는 이 법안이 내용 면에서 세 가지 중대한 문제점이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그 세 가지 결함이 적절히 수정된다 하더라도, 방송의 공공서비스 제고를 위한 일련의 필수적 조치들에 대한 기본 논의와 합의 없이 지금처럼 이 법안만 추진하는 것은 국가와 사회의 토대인 공공영역을 관료와 대기업의 식민지로 변질시키는 소탐대실의 역사적 일대 과오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자 한다.
아울러 우리는 이 법안이 각계 대표성과 전문성을 반영한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이하 융추위)를 들러리로 전락시키면서, 국무조정실과 정통부가 독단적으로 밀실야합한 잘못된 결과물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경고하고자 한다.
방송 독립성 심각 훼손
이 법안의 세 가지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방송통신위원회 구성방식에서의 결함이다. 법안 제4조(위원회의 구성)는 위원장, 부위원장 2명, 상임위원 2명 등 5명 위원을 서열을 두어, 모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당초 융추위 합의사항인 ‘합의제 행정기구’ 안의 취지를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킨 것이다. 또한, 이는 동 법안 제1조에 규정된 방송통신위원회의 ‘독립적 운영’도 공염불로 만든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독립성과 책임성 양면을 균형 있게 갖춰야 한다. 독임제 부처의 장점을 일부 살릴 수 있도록 하자는 융추위의 합의는 독립성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법안은 독립성 자체를 무산시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현재의 법안대로 될 경우, 방통위는 사실상 독임제 부처와 다를 바 없다. 정부로부터의 독립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나아가 방송 공익성 경시와 산업적 편향 및 그에 따른 대자본과의 야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정부와 자본으로부터 일정 수준 이상의 독립성을 갖는 ‘합의제 행정기구’로서 기능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위원의 일정 부분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더라도 또 다른 일정 부분의 위원은 국회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국회가 추천하는 위원들 중 일정 부분은 대통령이 속하지 않은 정당의 추천을 받도록 하는 것도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국회 추천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정치권이 자신들의 정파적 입장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인물들을 추천하지 못하도록 위원들의 자격 조건을 강화하는 보완책을 전제로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점들을 감안하여, 우리 단체는 방통위원의 구성을 위원장과 부위원장 1인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고, 나머지 부위원장 1인과 위원 2인은 국회교섭단체의 협의를 통해 국회의장이 추천하되, 그 중 2인은 대통령이 속한 정당이 아닌 정당에서 추천을 받아 국회의장이 추천하는 방식을 <제1안>으로 검토해줄 것을 요청하는 바이다.
또한, 독립적인 합의제 행정기구로서의 기능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제1안>의 ‘5인 상임위원’에 더하여 현행 방송위원회처럼 4인의 비상임위원을 추가로 두는 방안도 <제2안>으로 검토해줄 것도 요청하고자 한다. 비상임 4인을 둘 경우, 이들은 전문성과 각계 대표성을 감안해 선임하되, 대통령이 1인, 국회교섭단체의 협의를 통해 국회의장이 3인을 추천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비대한 조직, 정통부 기득권 유지가 목표?
둘째, 위원회 소관사무의 과도함이다. 법안 제11조 제4항의 4호는 우정제도에 관한 사항을 위원회 소관 사무로 규정하고 있다. 우정업무는 그 자체만으로도 규모가 큰데다가, 방송통신위원회 본연의 기능과 거리가 있다. 또한 우정업무는 우정업무에 맞는 별도의 혁신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다. 우정업무는 방송통신위원회 이외의 다른 정부 부처 산하의 우정공사나 우정청으로 분리하는 것이 순리이다.
우정업무는 방송통신위원회의 고유 목적 달성과 무관하며, 함께 묶을 경우 관심과 역량을 분산시켜 오히려 짐이 될 수 있다. 또한, 이는 우정업무 자체의 경쟁력과 효율성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우리나라 우정제도가 당면하고 있는 제도적 혁신을 더 어렵게 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안이 우정업무를 방송통신위원회의 소관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이 법안이 국민의 이익보다는 정통부의 관할권 유지와 확대를 더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독립적인 합의제 행정기구’로서의 성격을 무산시킨 오류에 더하여, 이 법안이 우정업무까지 방송통신위원회 소관으로 규정한 것은, 이 법안이 사실상 방송위원회를 정통부에 흡수통합시키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런 한에서 국무조정실이 ‘정통부지원실’이 되었다는 일각의 비판은 부인하기 어렵다.
부처간 갈등과 정책 표류 조장
셋째, 관련 부처와의 애매한 ‘합의·협의’ 규정 및 그로 인한 부처간 갈등과 위원회 독립성 훼손의 위험이다. 법안 제12조 제2항은 ‘방송·정보통신 기본계획에 관한 사항’ 중 방송영상정책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 문광부장관과 합의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방송프로그램 유통상 공정거래 질서의 확립에 관한 사항’은 공정거래위원장과 ‘방송·정보통신 관련 남북 교류·협력에 관한 사항’은 통일부 장관과 각각 협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관련 부처와의 애매한 합의·협의 규정은 타 부처와의 영역 갈등과 정책 표류 및 독립성 훼손 등의 부작용을 산출할 우려가 크다. 그러한 부작용은 이미 방송위원회의 경험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이제는 애매한 합의·협의 조항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할 것이 아니라, 방송통신위원회와 각 부처간의 명확한 업무분장과 관계설정을 대통령령으로 규정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문광부가 각각 어떤 방송영상 정책 사항들을 관할하는지 그리고 양 기구 간의 협의(조율과 협력) 대상은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에 대해, 그리고 협의를 해야 하는 ‘방송 프로그램 유통상의 공정거래 관련 사항’과 ‘남북 교류·협력 관련 사항’에 대해 대통령령으로 규정토록 하여 불필요한 갈등과 분쟁의 소지를 없애자는 것이다.
세 가지 법제 병행·추진해야
그렇지만, 앞서 지적했듯이 설령 이 법안의 세 가지 문제점을 개선한다 하더라도, 이 법안만으로는 방송통신 융합추진의 실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그 실제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법제적 조치들>을 위원회 설립과 함께 병행·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는 수신료제도를 개선하는 일이다(방송법 개정 사항). 방송통신 융합상황에서, 이는 공공서비스와 보편적 서비스 의무의 중심적 담지자인 공영방송이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이를 뒤로 미룬 채 기구통합만을 도모하는 것은 ‘잿밥에만 관심’을 두는 본말전도에 다름 아니다.
둘째는 디지털방송의 MMS 도입을 통해 공공서비스의 양과 질을 확대·강화하는 일이다(방송법 개정 사항). 양질의 공공서비스를 충분하게 무료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일은 방송통신융합과정에서 국가가 달성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정책적 책무이다. HD급의 종합편성채널(지상파 본방송)에 SD급의 공익적 전문채널을 추가하여 양질의 공공서비스를 확대하는 방안을 본격 논의하여야 한다.
셋째는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고 직접수신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다(별도의 촉진법 제정). 현재의 망 체제는 사상누각이라 할 수 있다. 상업적 유료 서비스가 자리잡게 되면 현재의 무료의 보편적 서비스는 하시라도 무너질 수 있는 취약한 구조이며, 그 붕괴는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디지털 전환과 함께, 국민이 무료의 공공서비스를 보편적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체제를 정비하는 일은 방송통신융합의 순기능 보장을 위한 필수 전제조건의 하나이다.
융추위 정신, 복원되어야
그렇지만, 이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과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융추위 이후 국조실에서 진행해온 법안작성 과정이 불투명하고 비민주적인데다가 정통부를 비롯한 관련 기관들의 부처이기주의가 극심했던 과오를 극복하는 문제이다.
융추위 논의가 국무조정실로 넘어가는 순간 융추위의 합의사항들은 무력화되었고, 모든 논의는 ‘정통부 중심’으로 변형되었다. 국무조정실은 방송을 정통부 관료들의 손에 넘겨주기 위해 방송위원회를 비롯한 정부 부처를 들러리로 세웠다는 비난을 받을 만한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는 국무조정실의 이 같은 태도가 경제관료 출신들의 방송관련 지식과 철학의 빈곤 때문인지, 아니면 정통부의 영향력에 휘둘린 때문인지, 아니면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편, 방송위원회는 방송의 공익성을 지켜낼 능력도 없으면서 융합논의에 뛰어들어 결과적으로 정통부-국무조정실의 ‘정통부 방송장악 프로젝트’에 들러리를 선 것이 아닌가 묻고 싶다. 방송위가 정통부에 비해 ‘힘없는 조직’이기 때문이라는 식의 변명은 통할 수 없다. 또한, 국무조정실 법안을 놓고, 방송통신의 공익성 보장보다는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더 중시하는 방송위원회 노조의 태도 역시 실망스럽다.
정통부가 방송위를 흡수·통합하는 방식으로 법안이 나오게 된 점은 철저히 반성되고, 시정되어야만 한다. 그동안 방송통신 정책과 관련해 정통부가 ‘산업논리’에 편향되어 왔음을 새삼스럽게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법안이 야기할 결과는 걱정스럽기 그지없다.
방송통신통합기구를 빨리 구성하는 일이 능사가 아니다. 부처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융추위의 합의를 존중하는 민주적 방식을 회복하는 일이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 그리고 그 기초 위에서 기구통합 및 그에 병행해야 하는 <법제적 조치들>을 논의해야 하는 것이다.
국무조정실이 그간의 잘못된 과정에 대해 아무런 반성 없이, 병행해야 하는 다른 법제적 조치들에 대한 논의를 뒤로 미룬 채, 현재의 법안을 서둘러 성사시키는 데만 관심을 갖는다면, 이는 우리 모두에게 최악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럴 경우, 국무조정실은 시민사회로부터 심각하고 커다란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주길 바란다. <끝>
2006년 12월 8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