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한미FTA 5차 협상’ 관련 중앙일보 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6.12.6)
중앙일보의 왜곡된 ‘FTA 분위기 띄우기’
.................................................................................................................................................
한미FTA 5차 협상 시작부터 미국 측의 공세가 거세다.
이미 미국산 ‘뼛조각 쇠고기’의 통관 실패에 대해 미 정부 관료들이 드러낸 불만은 한미FTA 5차 협상에서 미국 측이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지 짐작케 했다.
웬디 커틀러 미국측 수석대표는 4일(현지시각) ‘성공적인 FTA 체결과 의회 비준을 위해서는 미국산 쇠고기가 완전 개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한국 정부의 약가 적정화 방안 연내 시행에 대해 “극도로 실망했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또 미국 자동차 시장의 관세 철폐 문제에 대해서는 ‘미 의회의 변화 때문에 자동차 분야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있을 것’이라며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한국이 미국의 제안(자동차 세제 개편)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압박했다.
6일 대부분 신문들은 미국 측이 강경한 자세를 보였으며 한미FTA 5차 협상이 시작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아예 관련 기사를 싣지 않았다.
한편, 중앙일보의 5일, 6일 관련 보도는 ‘색다른’ 경향을 보이고 있다.
‘쇠고기 수입-FTA 분리론’에 숨은 뜻
중앙일보는 5일 <한·미 FTA와 쇠고기 수입은 별개>라는 사설을 싣고, ‘뼛조각 쇠고기’ 수입 문제가 한미 FTA 5차 협상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우려했다.
사설은 “쇠고기 문제를 FTA와 연계해 위협하는 듯한 미국의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쇠고기는 FTA의 의제가 아닌 별개의 문제”, “미국이 FTA 협상을 하면서 이참에 갖가지 무역 현안을 해결해 보겠다는 식이라면 곤란하다”는 등의 주장을 펴면서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미국은 합의 내용을 존중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우리는 중앙일보의 이 사설이 쇠고기 수입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태도를 비판하거나 국민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중앙일보는 미국 측이 쇠고기 수입 문제를 이유로 한미FTA를 ‘체결해주지’ 않는 상황, 또는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쇠고기 수입을 강요하는 미국 측의 태도가 우리 국민의 ‘반 FTA’ 여론을 고조시키는 상황을 우려해 “한미FTA 협상과 쇠고기 수입 문제는 별개”라며 미국 측에 협상 성사를 당부하는 것으로 비친다. 이는 중앙일보가 미국 측의 태도를 비판하면서도 “혹시 뼛조각이 별 문제가 없는 것이라면 별도의 협상을 통해 새로운 합의점을 찾아야 할 것”이라는 대목에서도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가 한미FTA 협상의 4대 선결 조건 가운데 하나였던 만큼 “한미FTA 협상과 쇠고기 수입은 별개”라는 주장이 별 설득력이 없음을 중앙일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미국 측이 ‘선결조건’을 내세워 쇠고기 수입 조건 완화를 압박할 것은 뻔한 일이며,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우리 입장에서는 한미 FTA 협상 중단, 쇠고기 수입 중단만이 근본 해결책이다. 국민들도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면서까지 FTA를 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중앙일보가 이와 같은 상황을 우려해 한미FTA 협상과 쇠고기 수입 문제를 분리시키고, ‘FTA는 FTA대로 성사시키고, 쇠고기 수입 문제는 따로 협상하자’는 논조를 폈다고 본다.
협상 분위기 띄우고, 대표단 추켜세우기
중앙일보는 6일에도 한미FTA 성사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중앙일보는 3면에 <한국 의사면허 미국서 통할 듯 / FTA 협상…전문직 자격증 서로 인정 합의>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기사의 대부분 내용은 서비스 분야의 협상 진전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다. 웬디 커틀러 대표의 압박은 기사 마지막 부분에 짧게 언급하는 데 그쳤다.
이런 중앙일보의 보도 태도는 다른 신문들이 <의약품 등 주요 현안 “서로 실망” 등돌려>(한겨레), <美 ‘의회 비준’ 들먹이며 노골 압박>(경향), <美 “의약품 실망” 韓 “실망에 실망”>(동아) 등의 제목을 달아 미국 측의 압박과 협상의 난항을 주로 보도한 것과 대조적이다.
중앙일보는 3면에 <협상단 힘 빼는 한국발 ‘FTA 괴담’>이라는 ‘취재일기’를 싣기도 했다.
경제부 기자 홍병기가 쓴 이 기사는 △‘졸속협상이라는 비난과 달리 우리 측 협상대표단은 미국이 감탄할 만큼 전문성을 갖추고 협상에 임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FTA 협상을 재검토 한다는 등의 괴담이 전달돼 우리 대표단의 힘을 빼고 있다’, △‘우리 대표단을 격려하고 FTA를 성사시키도록 하자’는 등의 주장을 담고 있다.
한미FTA 협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집권세력을 비판하고 거듭 한미FTA 성사를 촉구하는 한편, 우리 측 대표단이 유능하게 협상에 임하고 있어 협상의 내용이 희망적인 양 주장한 것이다.
“대통령 임기 말의 어수선한 분위기에다 대표단 출발 직전 터져 나온 당·청 분열에서 빚어진 정치적 갈등 때문에 한미FTA의 앞날이 불투명해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대표단의 힘을 빼고 있는 것이다”, “영하 15도 혹한의 미국 내 오지 몬태나에서 큰 전투를 치르고 있는 협상단에 본국에선 지원은커녕 뒤흔드는 괴담만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그토록 편지 쓰기를 즐기는 노 대통령이 설상(雪上)의 협상장에서 분투하고 있는 협상단의 가슴을 녹여 줄 격려의 메시지라도 한 번 보내주면 어떨까” 등등의 감성적이면서도 비아냥이 섞인 표현들은 이 기사가 한미FTA 체결을 얼마나 간절히 기원하는지, 한미FTA를 속히 체결하지 못하는 집권세력에 대해 얼마나 큰 불만을 갖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러나 한미FTA를 무조건 체결해야 하는 지상 과제처럼 접근하는 중앙일보의 태도는 잘못된 것이다.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많은 협정은 당연히 체결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미국 측이 보이고 있는 일방적인 태도는 한미FTA가 결코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협상을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전제하고, 대표단의 능력을 추켜세우며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펴는 것은 객관성을 상실한 맹목적 태도다.
국가인권위 존립 근거 흔드는 주장도
한편, 중앙일보는 6면에 <‘반 FTA 집회’ 국가기관끼리 딴소리>라는 기사를 실어 국가인권위원회가 경찰에 FTA 반대 집회를 허용하라고 권고한 것을 두고 “국가기관끼리 충돌”이라는 틀로 다뤘다.
그러나 국가인권위는 정부 정책에 힘을 실어주거나 정부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 기관에 의한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시정하기 위해 국가기관들과 ‘긴장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 기구가 국가인권위이다. 따라서 중앙일보가 “국가기관끼리 딴소리” 운운하는 것은 국가인권위의 설립 취지와 근본 역할에 무지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만약 중앙일보가 국가인권위의 역할을 알면서도 이런 기사를 쓴 것이라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아무리 국가인권위의 권고 내용이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인권위의 존립 근거 자체를 흔드는 기사를 쓰는 것은 언론의 ‘기본’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앙일보가 진정으로 한미FTA 체결이 우리 경제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한미FTA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국민들을 설득하기 바란다. 미국의 부당한 압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무조건 한미FTA를 체결하자고 주장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포장하기 위해 이리저리 논리를 비틀어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중앙일보를 비롯해 언론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쇠고기 수입 문제가 한미FTA 체결에 미칠 악영향을 따지며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부당한 압력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감시·비판하는 것이며, FTA 협상을 위해 졸속으로 받아들인 ‘선결조건’이 얼마나 무모한 것이었는지를 지적하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한미FTA ‘선결조건’으로 우리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들어준 것이다. 따라서 광우병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소를 좀더 허술한 조건으로 팔게 해달라는 미국의 압력은 FTA 협상 테이블의 의제가 되든 되지 않든 계속될 것이며, 이를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방법은 한미FTA를 중단하는 것 밖에 없다.
언론들은 이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해주기 바란다.
<끝>
2006년 12월 6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