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이재정 통일부 장관 내정자 발언’관련 조선·중앙일보 사설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6.11.16)
수구신문의 정략적 ‘포용정책 흔들기’, 해도 너무한다
.................................................................................................................................................
지난 15일 서울 타워호텔에서 열린 ‘민주평통 2006 영어권 차세대포럼’ 강연에서 통일부 장관으로 내정 된 이재정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미국은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을 변화시켰듯이 북한에 대해서도 진지한 협상을 통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며 “이제는 부시 행정부가 일방주의적 대북정책에서 한걸음 물러서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미관계와 관련해서 “우리의 마지노선은 분명히 지켜져야 한다”며 “긴밀한 한·미공조는 필요하지만 우리의 국가적 운명을 결정하는 데 악영향을 끼쳐서는 안된다”고도 말했다.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미국이 취했던 일방주의 대북정책을 접고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은 하등 새로울 것이 없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직후 국제사회는 물론이고 미국 내에서조차 부시 행정부의 강경 일변도 대북 정책이 실패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번 미국 중간선거에서도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과 대북 정책 실패가 공화당 패배에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미공조가 한국의 안위를 위협하는 등의 부정적 영향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발언도 지극히 ‘상식적’이다. 한·미공조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방안이 될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한·미공조를 절대적 가치로 삼아 국익 훼손 등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면 그것은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발상이다.
그런데 이 내정자의 상식적인 발언을 놓고 일부 신문들은 “정신나간 대미훈수”, “친북반미적 성향” 등의 막말과 색깔공세를 펴면서 대북 포용정책을 거듭 비난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16일 <李통일장관 내정자의 정신나간 대미훈수>라는 선정적이고 인신 공격적인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사설은 “이 내정자가 물려받게 된 이 나라의 대북정책은 북의 핵실험으로 완전히 파탄난 상태”, “이렇게 다급하고 위중한 대한민국 사정은 뒷전에 두고 미국의 대북정책에 감놔라 배놔라 훈수를 둔 것”, “이 정부는 북핵 정책을 파산시켜 놓고도 이 내정자 같이 자기 코가 석자인 처지도 모르고 남의 장기에 훈수나 두려고 하는 물정 모르는 사람을 대북정책의 새 사령탑으로 앉혀 놓은 것”이라며 이 내정자와 정부를 비난했다.
반면 미국에 대해서는 “대북 유엔결의에 따른 국제사회 공조를 통해 북한을 6자회담 테이블로 다시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면서 추켜세웠다. 한마디로 이 내정자가 ‘잘 하고 있는 미국에 대해 주제 넘는 짓’을 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도 같은 날 사설 <북한의 핵보유를 용인하려 하나>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사설은 “핵실험 이후 외교안보팀 전원이 교체되는 상황에서도 이 내정자는 친북반미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향후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을 예고했다”며 “핵실험 이전과 달라지기는커녕 과거의 정책을 더 강력히 밀어붙일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라고 비난했다. 참여정부의 대북 포용정책과 이 내정자의 성향 모두를 ‘친북반미’라고 몰아붙여 비난한 것이다.
나아가 사설은 “핵실험 이후 거의 아무런 변화가 없는 정부의 대응은 북한의 핵 보유를 말과는 달리 사실상 용인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약하는가 하면, “위기를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는 (정부의)‘안보 모험주의적 태도’로 인해 국내에는 안보불감증이 확산돼 있다”고 국민들의 성숙한 태도를 거듭 ‘안보불감증’으로 폄훼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핵실험은 북한이 했는데 정부는 미국을 일방적으로 폄훼하고 있다”며 미국의 대북 정책을 지적한 정부 당국자들의 발언에 불만을 터뜨렸다. 또 “북한의 핵실험은 포용정책이 핵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음을 폭로했다”며 거듭 포용정책을 탓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거듭되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대북 포용정책 공격은 몇 가지 자의적인 전제를 깔고 있다. △포용정책은 ‘친북반미’다 △북한 핵실험은 대북 포용정책 탓이다 △포용정책은 폐기되어야 한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잘 가고 있다 △미국의 요구는 모두 수용해야 한다 등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수구보수신문의 전제와 그에 따른 왜곡보도가 ‘사대주의적 발상에 빠져 나라를 망치는 선동’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포용정책이 ‘친북반미’라는 선동에 대해서는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 문제점을 쏙 빼놓고 ‘북한 핵실험이 대북 포용정책 탓’이라고 주장하는 한국의 수구보수 신문들의 독특한 주장은 ‘자학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거듭 말하지만 일방주의적이고 강경일변도였던 부시 정부의 대북 정책은 안팎의 비난을 받아왔고, 북한이 ‘핵실험’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온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실패’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 등은 미국의 대북 정책은 잘 가고 있는데 한국 정부의 당국자들이 미국의 정책을 비판하는 ‘무례’를 범했다고 호들갑이다. 미국의 대북정책을 지적하거나 비판한다고 해서 ‘북한의 주장을 뒷받침 한다’거나 ‘북한 핵을 용인한다’고 비난한다면 부시 정부를 맹종하는 집단 외에 누가 이런 비난을 받지 않을 것인가? 혹시 부시 정부의 일방주의 대북정책의 문제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만 모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부시 정부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옳다고 믿는 것인가?
북한 핵실험이 대북 포용정책 탓이라면 그 동안 한국 정부는 어떤 정책을 취했어야 했다는 말인지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보수신문들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모범답안’을 내 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 ‘모법답안’이 한반도 평화에 어떻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인지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 신문이 ‘한미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추상적 요구, ‘미국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맹목적 요구 외에 대북 정책과 관련한 어떤 현실적 ‘로드맵’을 내놓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저 무엇인가 흔들고 좌초시키는 일에만 익숙한 이들 신문은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부정적 수사를 만들어 ‘한미동맹이 흔들린다’, ‘한국이 왕따 당했다’식의 공격이나 일삼았다.
6자 회담을 통한 북한 핵문제 해결의 숨통이 트인 상황에서도 이들 신문은 통일부장관 내정자의 발언을 문제삼아 포용정책을 흔들 수 있을 때까지 흔들어 보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는 이런 수구보수신문의 행태가 미국에 대한 몸에 밴 ‘사대주의’만은 아니라고 본다. 차기 대선에서 대북 포용정책을 ‘파탄난 정책’으로 몰아 한나라당 집권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겠다는 저의가 깔려 있는 게 아닌가?
정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안위, 한반도의 평화를 아랑곳 않는 수구보수신문들의 행태가 참으로 지겹다. <끝>
2006년 11월 16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