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16일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 발언 관련 KBS, SBS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 (2006.10.17)
‘전쟁불사론’, 정치공방으로 희석시켜선 안된다
- PSI 전면참여가 몰고 올 국가적 재앙 제대로 보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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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6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이 CBS의 라디오프로그램에 출연해 “국지전을 인내하고서라도 국제사회와 일치된 대북제재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물의를 빚고 있다.
이날 공 의원은 한국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 할 경우 “서해 뿐 아니라 동해상에서도 국지전이 전개될 개연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안목으로 보면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는 혜안”이라며 사실상 ‘전쟁불사론’을 내세웠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공 의원은 이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도 서해교전, 연평해전 등을 언급하면서 “국지전 성격의 분쟁을 두려워해서 유엔 결의안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한반도 평화를 모색할 수 없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참으로 무책임하고 위험천만한 발언이다. 꽃게잡이 철에 서해에서 발발했던 우발적인 성격의 교전과 지금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제재 조치로서 한국의 PSI 전면 참여를 종용하고 있으며 이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참극을 초래할 수 있다.
PSI는 핵무기나 생화학 무기의 확산을 방지한다는 명분 아래 이런 무기의 운반이 의심되는 북한의 선박이나 비행기를 나포하거나 공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더욱이 PSI는 정전협정 14항~16항 ‘육해공에서 일체의 적대행위를 금지한다’는 조항과도 충돌한다. 따라서 북한이 정전협정 위반이라며 군사적 대응을 할 우려가 크다. 또한 PSI 전면 참여로 제주해협을 지나가는 북한 상선을 검문검색하게 될 경우 지난해 남과 북이 체결한 남북 해운합의서를 위반하게 된다. 북한은 이미 2003년 3월 이들 조항을 근거로 PSI를 정전협정 위반으로 규정했으며, 2006년 2월 조평통 담화에서도 한국의 PSI 참여를 “반민족적 도발행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이 PSI 참여를 확대하는 문제는 한반도 평화와 직결되어 있어 공당의 국회의원이 함부로 ‘국지전을 감수해야 한다’는 식으로 선동해선 안 될 일이다. 설령 공성진 의원의 말처럼 PSI 참여로 인해 남북 간에 ‘국지전 수준’의 충돌이 일어난다 해도 그 과정에서 벌어질 피해와 그로 인한 긴장 고조를 생각하면 PSI 참여 확대는 올바른 선택이 아니다. 우리는 공 의원의 이번 발언으로 그동안 한나라당 등의 ‘대북강경론’이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충격적인 발언을 두고 일부 방송 보도마저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16일 KBS와 SBS는 공 의원의 발언을 단순히 정치권의 ‘정쟁’ 차원에서 단순 보도했다.
KBS는 16일 뉴스9 <“계속” “중단”>에서 “대북사업을 계속 유지해야한다. 즉각 중단해야 한다 여야간 입장이 팽팽하다”며 남북경협 유지를 주장하는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과 이에 반대하는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의 주장을 대립적으로 보도했다. 이어 공 의원의 발언에 대해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이 라디오에 출연해 국지전이 전개될 개연성이 있지만 국제사회와 일치된 제재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한나라당이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시작했다고 강력하게 반박했다”면서 정치권의 논란으로 다뤘다.
SBS도 16일 8시뉴스 <“계속” “중단” 신경전>도 마찬가지였다. SBS는 “여야도 대북 경협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며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과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의 주장을 보도했으며, 이어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이 국지전을 감수하고서라도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인 PSI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여당은 불안을 조장하는 발언이라며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고 여야의 ‘정쟁’으로 단순 보도했다.
이날 SBS는 <갈라선 한국>이라는 보도에서도 북 핵실험과 관련된 각계의 주장을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라는 대립 구도로 다뤘다. 이 보도는 앵커 멘트에서부터 “북핵을 두고 우리 사회의 진보와 보수 양측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며 “접점 찾기를 거부한 갈등”을 취재했다고 운을 떼었다. 이어 “보수와 진보 두 진영은 북핵 사태의 원인에서부터 해결책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상반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이승호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의장과 서경석 선진화국민회의 사무총장을 인터뷰 한 후, “뜻있는 사람들은 두 진영이 먼저 자기 논리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있어야 건전한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며 양측을 싸잡아 비판했다.
더 나아가 이 보도는 평택미군기지 이전 갈등,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 단순히 진보와 보수의 갈등으로만 볼 수 없는 사례까지 뭉뚱그려 언급하며 “마치 해방 이후 이념의 혼란시기로 되돌아 간 것 같다는 목소리마저 나온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동안 SBS는 한국의 PSI 참여 확대 문제를 다루면서도 이를 정치권의 ‘정쟁’, ‘찬반논란’ 차원에서 다뤘다. 11일 <뒤바뀐 찬반>에서는 “여당은 반대하고 야당이 오히려 찬성하고 나서 여야가 바뀐 듯한 느낌”이라며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의견을 단순 나열했고, 12일 <봉합…불씨 ‘여전’>에서는 정부의 PSI 참여 확대 발언에 대해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이 “큰소리를 냈다”, “김 의장이 폭발”했다며 정부와 여당 사이의 ‘갈등’과 ‘불협화음’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한반도의 평화와 직결된 현안을 놓고 무조건 ‘정치권의 공방’, ‘보수진보의 대립’ 등으로 접근하는 이런 보도 경향은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다. 방송 보도는 시청자들에게 사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전달함으로써 국민들이 중대 현안에 대해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안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해설 없이 ‘진보 대 보수의 갈등’, ‘여야 정쟁’ 식으로 보도하는 것은 방송보도가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더욱이 북한 핵실험에 대한 대응은 ‘진보 대 보수’라는 이념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해법이 한반도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가’라는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그리고 이런 기준에 따라 각 집단의 주장을 평가하고,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발언은 그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마땅하다. 무모한 대북 강경정책이 불러올 군사적 충돌의 우려나 경제적 어려움은 이념을 떠나 국민 모두가 겪어야 하는 고통이기 때문이다.
북한 핵실험 이후 일부 수구보수 신문들은 왜곡된 논지로 대북 포용정책의 폐기를 주장하며, 대북 강경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보도만이라도 한반도의 안위와 직결된 사안에 대해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제 역할을 해 줄 것을 촉구한다. <끝>
2006년 10월 17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