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평택미군기지 확장' 관련 방송보도에 대한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 논평(2006.3.21)
제대로 된 보도로 불상사 막아라
.................................................................................................................................................
3월 15일 국방부는 경찰 40여개 중대와 굴삭기 등 중장비를 동원해 평택 팽성읍 도두리와 대추리 일대 논을 파헤치며 농지진입로 차단작업을 실시했다.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며 '올해도 농사를 짓겠다'는 평택농민들이 농사 준비에 필요한 논갈이를 시도하자 아예 농지 접근 자체를 원천봉쇄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평택 주민들과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평택범대위) 관계자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학생 100여명이 이를 저지하고 나서면서 격렬한 충돌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주민이 다치고 40명이 경찰에 연행되었으며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를 비롯한 인권운동가 2명이 구속됐다.
지난 3월 6일에도 국방부는 미군기지 이전확장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법원집행관과 용역직원, 경찰을 앞세워 대추초등학교를 강제수용하려다 평택 주민들과 인권운동가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힌 바 있다. 3월 들어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둘러싼 정부 당국과 주민 사이에서 큰 물리적 충돌만 벌써 두 번째 발생한 것이다. 날이 갈수록 사태가 진정되기보다 본격적인 농사철이 다가오면서 '평화논갈이'를 하겠다는 주민들과 이를 저지하고 강제토지수용을 하겠다는 정부당국의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있고 예기치 않은 불상사가 초래될 가능성 또한 점점 커지고 있다. 따라서 시급하게 이번 사안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우리 사회 전체가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둘러싼 갈등의 해결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일단 미국과의 합의로 미군기지 이전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정부당국의 입장과 자신들의 동의도 없이 확장되는 미군기지에 의해 생존권을 위협당해야 하는 주민들의 입장이 강하게 대립하고 있다. 또한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주한미군 재배치가 앞으로 한반도와 동북아 안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따라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각 사안들을 사회적 논의 대상에 올려놓고 진지한 토론을 벌여 합의를 이뤄나가야 할 필요성이 더욱 크다. 바로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언론들의 노력이다. 하지만 일부 방송은 여론을 호도할 수 있는 왜곡된 보도태도까지 보이는 등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왜곡보도로 여론 호도한 SBS
가장 문제가 된 보도는 SBS의 16일 '집중취재' <난마처럼 얽혔다>였다. 앵커멘트에서 '중장비에 맨 몸으로 맞설 정도로 주민들이 반발하는 이유를 알아본다'고 했지만 2분 10여초의 보도시간 동안 주민들의 반발이유에 대해서는 "주민들이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토지 강제 수용 때문이다"라는 한 마디 언급과 짧은 인터뷰를 다루는데 그쳤다. 나머지는 지난 해 7월 '평화대행진' 당시 집회참가자와 경찰의 충돌, 2월의 대추 초등학교 강제집행 당시 충돌, 15일 농지접근로 차단을 둘러싼 충돌 등 물리적 충돌 장면을 묶어 소개한 다음 " 대책위와 주민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며 마치 평택범대위와 평택주민 사이에 '다른 목소리'가 있는 것처럼 왜곡하는데 집중했다.
이 보도를 리포트한 SBS 이승재 기자는 '다른 목소리'의 이유로 '평택범대위에 통일연대를 비롯한 1천여 개의 미군반대 단체회원들이 속해 있기 때문에 주민들의 보상 문제보다는 궁극적으로 미군 철수에 무게를 더 싣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악의적인 왜곡으로밖에 볼 수 없다. 마치 '미군반대 단체'들이 생존권 차원에서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주민들을 '미군철수'에 이용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준 것이다. 게다가 이 보도는 사실관계조차도 전혀 맞지 않다. 대추리와 도두리의 주민들은 정부에 보상을 요구하거나 한 두 푼 더 받아내려고 목숨 걸고 중장비에 맞서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들은 그저 자신들이 평생 일궈 놓은 논밭에서 농사짓고 살 수 있게 미군기지를 더 이상 넓히지 말라는 생존권적 요구를 하고 있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평택범대위 또한 '미군기지 확장 저지'를 내세우고 있을 뿐,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있지 않다. 비록 평택범대위 참가단체 중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단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평택범대위의 공식적인 요구는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다. 그럼에도 SBS가 우리 사회에서 아주 민감한 사안인 '미군 철수'와 '미군기지 확장 저지'를 바로 연결시킨 것은 어떤 의도가 있거나 무지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또한 "궁극적으로 미군 철수에 무게를 더 싣고 있다"는 기자 리포트에 이어진 평택범대위 강상원 집행위원장의 인터뷰 내용도 "(주한미군 재배치가)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전쟁도 불사하는 계획이기 때문에 평화를 사랑하는 온 국민이 미군 기지 확장을 막고 있는 것"이라는 내용이어서 기자가 무엇을 근거로 '미군철수'를 판단했는지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한반도 평화를 위해 미군기지 확장을 막고 있다'는 강위원장의 인터뷰 내용은 평택 주민들의 입장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으로 평택범대위와 주민들의 목소리가 다르다고 볼 아무런 근거가 되지 못했다. 애초 '생존권적 요구'에서 시작된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이었지만 이제 평택주민들은 500일 넘게 촛불문화제와 지속적인 투쟁을 하는 동안 주한미군 재배치가 한반도 평화에 어떠한 영향을 가져올지 누구보다도 제대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한편 이날 SBS 보도에서 "상인들은 미군 기지 이전을 환영한다"고 언급된 부분은 일면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지역경제 활성화'를 내세우며 미군기지 이전을 찬성하는 쪽과 당장 살고 있는 집에서 내쫓기고 삶의 터전인 농토를 빼앗겨야 하는 '생존권'적 위협에 처한 쪽의 입장을 단순히 기계적으로 다루며 '서로 다른 목소리'로 치부할 수 있는가.
결국 SBS의 보도는 '평택범대위'와 '평택주민대책위' 사이에 분열을 조장하고 평택 지역 내 주민들의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물론 시청자들의 판단을 호도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물리적 충돌에 초점 맞춘 방송3사
SBS <난마처럼 얽혔다>를 제외한 방송3사 대부분의 보도들도 문제였다. 방송3사는 평택주민들이 미군기지 확장을 저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물리적 충돌상황을 부각하는데 급급할 뿐 심층적인 분석보도는 거의 없었다.
6일 KBS는 <강제철거...충돌>에서 국방부측과 평택범대위 사이의 물리적 충돌을 나열한 다음, 대추초등학교를 강제수용하는 '행정대집행'에 대해 "국방부가 평택 미군기지 확장 예정지에 대해 강제 수용하기로 결정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이뤄졌다"며 정당한 법집행을 내세우는 국방부의 주장과 "국방부가 일방적으로 강제 수용을 결정한 것은 부당한 법집행"이라고 주장하는 주민들의 반대의견을 대비하는데 그쳤다. SBS도 <강제퇴거 충돌>에서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집회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던 평택 대추분교를 둘러싸고 군 당국과 평택 주민들이 또 충돌했다"며 충돌상황만을 전달하는데 급급했고, MBC는 아예 관련보도를 하지 않았다.
15일도 마찬가지였다. MBC는 <'논갈이' 충돌>에서 "3000명이 넘는 경찰이 투입돼 주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에 대한 연행에 나서면서 격렬한 몸싸움이 되풀이 됐다"고 보도했고, SBS 또한 <논갈이 충돌>에서 "미군기지가 옮겨갈 평택 대추리 주민들이 올해 농사를 시작하려다, 이를 막는 국방부 용역 직원들과 마찰이 빚어졌다"고 전하는데 그쳤다. KBS 역시 단신에서 "국방부가 미군기지 이전지 '논갈이 투쟁'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농로를 폐쇄하는 과정에서 주민과 몸싸움이 벌어졌다"고 간단히 다룰 뿐이었다. 방송3사의 이 같은 보도태도는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현상만 부각하면서 갈등의 본질을 실종시키는 그 동안의 행태를 그대로 되풀이한 것이다.
주민들의 절박한 사정 전해 차별성 보인 MBC
그나마 MBC가 13일 <550일 촛불시위>에서 평택주민들이 겪은 '강제수용'의 역사를 상세히 다뤄 차별성을 보였다. MBC는 "평택 팽성읍이 수용의 아픔을 겪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라며 "일본군이 떠난 자리를 고스란히 미국이 차지했고 한국전쟁 당시인 1952년 기지 규모가 확장되면서 수백가구가 또 집을 잃었다"고 보도해 미군기지 확장을 저지하려는 주민들이 간직한 역사를 설명했다. 또한 쫓겨난 뒤 "먹고 살기 위해 갯벌 간척에 뛰어든" 주민들이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든 수십년 동안의 고생 끝에 '무려 280만평'의 농지를 간척했지만, 이번 미군기지 확장으로 그 농지의 대부분이 또 다시 '강제수용'당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며 더 이상 쫓겨날 수 없는 평택주민들의 절박한 사정을 전했다. 아울러 "평생의 한이 어린 이 땅을 왜 떠나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주민은 550일 넘게 촛불을 끄지 못하고 있다"며 "순박한 농민에서 투사로 변해가고 있는 주민들"의 '투쟁이유'에 대한 근거를 제시했다. 이 같은 MBC의 보도는 현재 '격렬한 저항'을 하고 있는 평택주민들에 대해 시청자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객관적인 정보를 제시한 의미있는 보도로 평가된다.
국방부의 '강제토지수용'과 이에 맞선 평택농민들의 '논갈이투쟁'이 이어지면서 평택은 매일같이 격한 충돌이 오가고 있다. 이미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특히 평택주민들의 대부분이 고령의 노인들이어서 어떤 불상사가 생길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우리는 방송3사에 강력히 요구한다. 현재 평택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주민 생존권'은 물론 '한반도 평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시청자들에게 정확히 알려라. '미군기지 이전확장' 문제에 대해 논의해야한다는 공감대가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형성될 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언론들이 제대로 보도해야 한다.
이미 우리 회는 지난 2월 12일 개최된 '평택미군기지확장 반대! 강제토지수용 저지! 한반도 평화실현을 위한 2·12 평화대행진'과 관련한 방송보도를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당시 방송들은 평택범대위와 주민들이 평화대행진을 개최한 이유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없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평화시위'에만 관심을 둬 미군기지 확장을 둘러싼 논란을 해결하는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미군기지 확장 반대' 등의 주장을 '평화시위'로 대체함으로써 의제왜곡의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 때문에 당시 우리 회는 "방송들이 '폭력'이든, '평화'든 시위의 양상을 전하기에 급급한 태도에서 벗어나 사회갈등사안이 제대로 된 공론의 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그 장(場)을 마련하는데 더 큰 관심을 쏟아주길 요구"했다. 하지만 방송들은 이번 '강제토지수용'과 '농지진입로 차단'과 관련된 보도에서 '물리적 충돌'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여지없이 기대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아울러 우리는 정부 당국에게도 요구한다. 미군기지 확장예정부지에 대한 무리한 강제수용을 중단하라. 미군기지 이전의 근거가 되는 주한미군 재배치와 전략적 유연성 협상은 그 정당성에 있어 많은 문제가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 때문에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은 국회비준동의 사항임을 잘 알고서도 이를 무시한 채 강행했다"며 노무현 대통령과 반기문 외교장관을 대상으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 따라서 적어도 '전략적 유연성'의 타당성이 입증되기 전까지라도 평택주민들에 대한 강제수용은 중단되어야 한다. 정부는 '강제수용'보다 '전략적 유연성' 및 '주한미군 재배치'가 한반도 평화에 미치는 영향을 각계와 함께 꼼꼼하게 따지는 일을 우선해야 할 것이다.
<끝>
2006년 3월 21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