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국무위원 인사청문회 관련 방송3사 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6.2.15)
'부실 청문회' 버금가는 '부실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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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6일부터 8일까지 경찰청장과 보건복지부장관을 비롯한 4개 부처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실시되었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를 임명할 때 국회의 검증절차를 거치게 함으로써 행정부를 견제하는 장치이며, 내정자들의 업무수행능력과 도덕성 등을 검증해 공직을 수행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국무위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국회가 임명동의안 표결은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직 수행에 따른 자질검증'의 측면에 보다 무게가 실려 있다.
하지만 이번 인사청문회는 국무위원들의 자질을 검증하기 어려운 '부실 청문회'였다. 구시대적인 '색깔론'이 또다시 등장했으며, 정략적인 속내가 뻔히 보이는 '트집 잡기'와 '정쟁'도 반복되었다. 정작 국무위원들이 해당 분야의 장으로서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일은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다.
방송보도에서는 이 같은 인사청문회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인사청문회가 실질적인 자질검증, 정책검증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내정자들에 대해 따져보아야 할 점들을 제시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인사청문회의 문제점을 분석한 방송사는 KBS에 불과했으며, 대부분의 보도가 인사청문회에서 오간 대화를 단순 중계하는데 그쳤다.
우선 방송은 청문회에서 구시대적 색깔공세를 퍼부은 야당의원들의 행태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했다. 한나라당은 이종석 장관이 쓴 과거 논문의 일부를 거두절미식으로 들이대며 '친북인사'로 몰아가는가 하면, 학생운동 경력을 두고 '학생운동 출신이 장관이 되면 나라에 혼란이 온다'는 식의 저급한 색깔공세를 폈다.
그럼에도 방송3사는 이 같은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하지 않은 채, 청문회 상황을 단순 전달하는데 그쳤다. SBS는 <'색깔론' 공방>(2.6)에서 한나라당 전여옥, 박성범 의원의 공격과 이에 대한 이 장관의 반박 등을 보도하며 '사상공세', '추궁', '맞섰다', '뜨거운 공방이 오갔다' 등의 표현을 써서 '공방'으로 다뤘다. MBC 역시 <사상편향 공방>(2.6)에서 한나라당 전여옥, 홍준표 의원의 공격과 이에 대한 장영달 의원과 이종석 장관의 반론 등을 보도했다. KBS는 <자질검증>(2.6)에서 한나라당의 색깔론 공격을 보도하긴 했지만 다른 두 방송사와 비교해 보면 비중이 낮았으며, 공방으로 몰고 가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색깔론 공세로 정작 이 장관의 자질을 검증할 수 있는 중요한 판단근거의 하나인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된 논란은 뒷전으로 밀렸다. 방송보도 역시 '겉핥기'에 그쳤다. KBS는 단순보도로 일관했으며, MBC 역시 짧게 언급하고 넘어가는 수준에 그쳤다. SBS는 <사면초가>(2.6)에서 청와대 국정상황실 내부 문건 유출 사실을 전하며 비교적 비중 있게 보도했으나, 전략적 유연성과 이 장관의 자질검증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못한 점을 지적하지 못했다. 그저 "이 내정자에 대한 자질 시비로 이어지고 있다", "여당 내에서는 지도부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류를 담은 공세가 이어졌다"는 등 단순보도에 그쳤다.
마찬가지로, 이번 청문회에서 의원들은 유시민 장관에 대해 '자질'이나 '정책'보다는 '성격'을 문제 삼아 정치공세를 펴는데 치중했다. 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과거 유 의원의 '튀는 발언'이나 동료 의원들에 대한 공격 등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그런데, 방송 역시 유 장관의 바뀐 옷차림과 말투 등을 부각하며 청문회의 '빗나간 검증'을 쫓아가는 경향을 보였다. MBC는 <몸낮춘 유시민>(2.7)에서 유 장관이 첫 국회 등원 때 입었던 캐주얼 차림을 보여주며 "옷차림은 어느 때보다 단정해 보였고 말도 달라졌다"고 외모의 변화를 언급했다. 또 "추궁을 받을 때마다 반성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상대를 조롱하는 듯 한 표정도 오늘은 볼 수 없었다", "특유의 도전적인 태도를 완전히 감추지는 못했다"는 등 유 장관의 외형적 변화와 태도를 부각했다.
SBS도 <'자세낮춘'내정자>(2.7)에서 "단정한 옷차림에 깔끔하게 빗어넘긴 머리, 유시민 내정자의 모습은 이렇게 평소와 달랐다", "자세를 한껏 낮춘 유 내정자의 모습이 관심을 모았다", "가끔씩은 특유의 되받아치기도 나왔다"며 유 장관의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KBS는 유 장관의 '변화'는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았고 청문회 상황을 단순 전달하는데 그쳤다.
청문회에서 오간 정략적 '트집잡기'에 대해서도 방송은 제대로 지적하지 못했다.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의 인사청문회에서는 정 장관의 자질과 관련이 없는 '사학법 개정안 처리' 문제로 청문회가 파행을 겪었다.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였던 정 장관에게 사학법 처리에 대해 사과하라며 정 장관이 이를 거부하자 청문회장을 집단 퇴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방송은 한나라당의 '무리수'를 지적하지 못한 채 '국회파행'과 '여야공방'으로 보도하는데 그쳤다.
SBS는 <청문회 충돌…파행>(2.8)에서 "이번 청문회 역시 여야간의 정쟁만 있었을 뿐 자질 검증은 미흡했다"면서도 정작 보도에서는 "정세균 산자부장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야당측의 사과요구와 정 내정자의 거부가 맞서 인사 검증은 뒷전으로 밀렸다"고 보도하는데 그쳤다. MBC도 <대립…정회>(2.8)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공식사과를 요구하자 여야공방으로 비화", "4시간여 만에 청문회는 재개됐지만 국회 파행에 따른 책임논쟁은 가라앉지 않았다"는 등 여야 공방으로 보도했다. KBS는 <산자·노동 청문회>(2.8)에서 "이를 둘러싼 공방으로 4시간 동안 중단되는 진통을 겪었다"고 간단하게 언급하는데 그쳤다.
그나마 KBS는 인사청문회의 문제점을 일부 지적하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보도태도를 보였다. KBS는 <심층취재-'정쟁'한계 못벗어>(2.8)에서 "이번 인사 청문회도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과 지질 검증이라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했는지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려워 보인다"며 한나라당의 색깔론 공격, 열린우리당의 후보자 감싸기, 답변은 듣지 않은 채 자기 주장만 늘어놓는 일부 의원들의 구태 등을 지적했다. KBS는 "정부측의 자료 비협조 속에 하루 이틀에 불과한 청문회로 제대로 검증하기가 무리"라는 의원들의 의견을 전하며 FBI조사와 여론검증, 청문회 등 5단계 검증절차를 거치고 있는 미국의 사례를 들었다. 또 '국회의 동의 표결'이 없는 국무위원 청문회의 한계, 행정공백과 위증처벌이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도 언급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대안제시가 미흡해 아쉬움을 남겼다.
한편, SBS는 <'부적합'65%>(2.9)에서 인사청문회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그러나 이 보도는 문제가 있었다.
이번 인사청문회는 파행적으로 진행되면서 장관 내정자들에 대한 '자질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경과보고서 채택 과정에서 내정자들에 대한 적합·부적합을 놓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논란을 벌이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SBS가 장관 내정자 개개인에 대해 '적합, 부적합'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구분으로 여론조사를 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 이는 결과적으로 정치권과 언론 등을 통해 확산되어 있는 장관 내정자들에 대한 표면적인 논란만을 재확인하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실제 조사결과에서도 가장 논란이 부각되었던 유시민 장관의 경우 부적합 의견이 64.6%에 달했으며, 각각 색깔론 공세와 보은인사 논란을 빚었던 이종석·이상수 장관은 부적합 의견이 조금 앞서는 것으로,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던 김우식, 정세균 장관과 이택순 경찰청장은 적합하다는 의견이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SBS가 조사 대상자들의 지지정당을 기준으로 재분류해 "열린우리당 지지자는 내정자 6명 모두 적합하다는 평가가 많은 반면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이택순 내정자를 제외하곤 모두 부정적이었다"고 보도한 것도, 여야로 나뉘어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정쟁을 부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번 국무위원 인사청문회는 '정책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부실 청문회였다는 한계 못지않게 방송보도 역시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동안에도 우리는 정치보도에 있어 정치권의 구시대적 색깔론 공세를 단순 전달하는 보도행태, 특정 정당의 정략적 트집 잡기를 '정쟁'으로 몰아 보도하는 행태, 정책은 없고 인물만 부각하는 보도행태 등에 대해 문제를 지적해 왔다. 이 같은 보도행태는 사안을 흥미위주로 접근하게 하며, 정쟁 중심의 보도로 시청자들의 정치무관심을 부추길 우려마저 있다. 방송사들이 정치보도의 해묵은 보도관행에서 벗어나 줄 것을 다시한번 촉구한다. <끝>
2006년 2월 15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