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한·미 '전략적 유연성' 협상 관련 신문 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6.2.14)
한반도 평화보다 대미 추종이 더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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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1월 19일(미국 시각) 워싱턴에서 양국 간 첫 고위전략대화를 갖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양국 정부 간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이 '전략적 유연성' 협상 과정에 대한 정부 문서를 폭로하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최 의원은 1일 '전략적 유연성' 협상과 관련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록(05년 12월 29일)을 공개한데 이어, 2일 한·미 국가안전보장회의 '국정상황실 문제 제기에 대한 NSC 입장'(05년 4월 5일)을 추가로 공개했다. 또한 '프레시안'도 '전략적 유연성' 관련 정부 문서들을 계속해서 폭로했다. 이들 문서에는 △2003년 10월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 5차 회의에서 위성락 당시 북미국장이 교환각서 초안을 미국 측에 전달한 것을 노 대통령과 NSC에 보고하지 않았던 점 △NSC는 한·미간 외교 각서 교환 사실을 2004년 3월에 가서야 (당시 교체된)북미 국장을 통해 보고 받았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에 청와대는 '전략적 유연성' 협상 과정에서 대통령에 대한 보고누락은 없었다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청와대는 위 문서에서 제기된 정부 내의 보고체계 누락에 대한 진실을 규명함으로써 책임소재를 명백히 밝혀야 할 필요가 있다.
한·미가 채택한 공동성명은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정부는 "한국민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부분에 주목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 회는 한·미 '전략적 유연성' 합의가 몰고 올 한반도 위기 상황에 대한 정부당국의 안이한 인식에 우려를 표하며 아래와 같이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전략적 유연성'은 첫째, 주한미군의 동북아 신속기동군으로써 역할확대를 전면 허용한 것이다. 만의 하나라도 동북아에 분쟁이 발생할 경우 한국은 미군의 전초기지가 될 우려가 크다. 정부는 현재 동북아 지역에 분쟁이 발생할 확률이 0%에 가깝다고 주장하지만 중국과 대만이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러한 인식은 안이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최악의 경우 양안 분쟁이 발생한다면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따라 자동적으로 분쟁에 휘말리게 될 위험이 있다.
둘째, 동북아 지역에 대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통제할 만한 제도적 장치가 없다. 실질적인 제도적 장치가 없이 '한국민의 의지' 여부에 따라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한국민의 의지'라는 단어는 사실상 문구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셋째, 국가 안위가 달린 '전략적 유연성' 합의과정이 국민과 국회를 무시한 졸속 협상이었다는 점 또한 문제다.
그럼에도 수구·보수 신문들은 정부 문서가 유출된 과정과 배경에만 초점을 맞춰 이를 '강경 자주파가 온건 자주파 공격', '여권 내 권력 투쟁' 등으로 몰며 사태의 본질을 흐렸으며, '전략적 유연성'이 몰고 올 한반도 위기를 우려하는 고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조선일보는 3일자 4면 <외교기밀 폭로 파문/ 강성 反美자주파가 온건 자주파 공격>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동안 이종석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현 정부 출범 초부터 정부 내 '자주파'의 대표적 인물"로 통해 왔으나 "근래 들어 강한 반미 자주 입장을 가진 정권 내부와 시민단체 '386'들로부터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전했다. 또한 "이 문서가 이 내정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불과 며칠 앞두고 유출·공개"된 것에 의혹을 나타냈다. 같은 날 사설 <NSC는 비밀문건 흘리고 여당의원은 폭로하고>에서는 이번 문서 유출이 "정부가 전략적 유연성을 받아들인 데 불만을 품은 NSC 내부인사가 언론플레이를 통해 그 결정을 뒤집어 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번 사안을 '문서 유출'과 '여권 내 갈등'으로 몰았다.
중앙일보도 이번 사태를 '여권의 권력 다툼'으로 몰았다. 중앙은 3일자 1면 <청와대, 유출 경위 조사>에서 최 의원이 공개한 문서를 단순히 소개했으며, 5면 <미묘한 시기에 NSC 내부 문건 유출/ 여당의원이 왜 공개했나>에서는 NSC 문서 공개에 "여당의원이 나섰다는 점이 우선 주목된다"며 이 후보자가 통일부 장관과 NSC 상임의장을 겸임하는데 여당의 일부 의원들이 비판적이고 또한 공개 시점도 미묘하다고 분석했다. 중앙은 "여권과 부처에서 정보 독점, 자기 인맥 심기 등의 비판을 받아 온 이 후보자에 대한 공격이 본격화된 모양새"라는 익명의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을 보도하기도 했다. 중앙은 4일자 기사에서도 "외교안보 주도권을 둘러싼 이종석 차장의 파워를 견제하기 위한 것", "치열한 권력 암투가 이성을 잃은 공격으로 비화하는 모양새"라고 주장했다. 중앙은 4일자 <외교기밀 정략적 이용 안 된다>라는 사설에서 '전략적 유연성' 합의를 "양국의 입장이 균형적으로 반영됐다고 평가"하고 문서 유출이 "'전략적 유연성'에 불만을 품은 강경 좌파세력의 뒤집기 전략", "외교안보라인의 불협화음과 노선 갈등"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앙의 지면 어디에도 '전략적 유연성' 합의 과정의 문제점이나 이번 합의가 한반도에 몰고 올 영향에 대한 언급은 단 한마디도 찾아볼 수 없었다.
동아일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동아는 3일자 7면 <최재천의원 연일 폭로/ 靑, 문서유출경위 조사>에서 최 의원이 공개한 문서를 전하는 한편 청와대가 문서 유출에 대해 엄정한 처벌 방침을 밝혔다는 사실을 주요하게 보도했다. 이어 4일자 기사에서 "최 의원이 이 내정자를 겨냥한 이면에는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부터 내연해 온 '강성 자주파'와 '온건 자주파'의 오랜 갈등이 숨어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권력 투쟁의 측면이 큰 듯하다"는 정치권 관계자의 발언을 실기도 했다. 동아는 4일자 사설 <정권의 무능과 무책임 보여준 NSC 문건 파동>에서 대통령에 대한 보고누락은 "집권 초기 외교부와 NSC 간의 알력 및 조정기능 부재 탓"이며 문서 유출과 관련해서는 "대미 '온건 자주파'와 '강경 자주파' 간의 불화설이 무성"하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3일자 <대북 기조 변화에 '이 배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전략적 유연성' 졸속 협상을 지적하면서도 문서 유출을 '최 의원과 이 내정자와의 신경전', 최 의원 공세의 기저에는 이 내정자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다고 분석하는 등 수구·보수 신문의 의제설정에 따라가는 행태를 보였다. 하지만 4일자 사설 <의문만 키운 참여정부의 대미외교>를 통해 '문서 유출이 강경 자주파와 온건 자주파 간의 파워게임으로 해석하는 시각은 비생산적인 판단'이라고 전제하고 '전략적 유연성' 합의 등 한·미간 현안들에 참여정부가 '(한·미 관계 손상을 만회하기 위해)여유를 갖지 못하고 서둘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또다른 문제제기에 나섰다. 경향은 6일자 '기자메모'를 통해 "졸속합의와 대통령에 대한 보고누락이라는 본질보다 기밀누출이 더 쟁점화"되고 있는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한겨레는 3일자 3면 <한·미 '전략적 유연성 협상' 논란 증폭>에서 최 의원이 폭로한 '전략적 유연성' 협상관련 문서를 자세하게 소개했다. 이어 4일자 사설 <'전략적 유연성' 합의, 국회 동의 필요하다>를 통해 '전략적 유연성' 합의는 "합의 내용과 과정이 허점투성이"라며 이는 "균형외교를 내세운 참여정부의 정체성과도 관련되고 국민주권의 원리에도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또한 '전략적 유연성의 내용은 상호방위조약과 배치될 수 있으나 공동성명이란 형식은 그렇지 않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국민의 눈을 가리는 이현령비현령식 논리"라고 반박했다.
우리 회는 국가 안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전략적 유연성' 합의의 본질과 한반도 평화에 미칠 파장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수구·보수 신문들의 인식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신문은 입만 열면 '안보'를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한반도를 전쟁 상황에 휩쓸리게 할 우려가 있는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대해서는 무비판적으로 보도하며 '문서유출' 과정과 여권 내의 '일처리상의 혼란'에만 몰두했다.
언론이라면 '전략적 유연성'과 같은 중대 사안을 졸속적으로 합의한 정부를 비판하고, '전략적 유연성'이 몰고 올 파장에 대한 심층적인 보도로 여론을 환기시킬 의무가 있다. 하지만 수구·보수 신문은 '문서 유출 배경'과 '여권 내 노선갈등'에만 초점을 맞춰 의제를 흐리고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했다. 심지어 수구·보수 신문들은 '전략적 유연성' 합의가 발표된 1월 20일에도 "속이 다 시원하다"는 정부 당국자의 발언을 무비판적으로 전하는가 하면 전문가와 정부가 '양안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불확실한 상황을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할 필요가 없다'는 발언을 부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분쟁 발생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고 만일 동북아에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필연적으로 한반도 안보를 위협한다는 점에서 수구·보수 신문들의 보도 행태는 안이하기 짝이 없다. 더 나아가 이들의 보도 태도는 한국민의 안위보다는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주장에 힘을 싣는 '친미 굴종'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언론이 보다 본질적이고 심층적인 보도로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자세를 확고히 할 것을 촉구한다. <끝>
2006년 2월 14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