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스크린쿼터 축소 발표에 대한 신문·방송 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6.2.9)
스크린쿼터, 심층보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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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6일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스크린쿼터를 현행 146일에서 그 절반인 73일로 줄이기로 미국과 합의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미국은 '한미FTA협상'을 개시하기 위한 선결 조건으로 우리 정부에 '스크린쿼터 축소'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한 부총리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상과 자유무역 협정(FTA) 협상을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추진하는 게 국익에 부합된다"며 스크린쿼터 축소의 이유를 밝혔으며, "한국 영화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50%를 넘는 상황에서 현행 스크린쿼터를 계속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도 했다. 아울러 정부는 영화계의 반발을 의식한 듯 4천억 규모의 지원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날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발표는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다.
우선 영화산업은 일반적인 경제잣대로만 평가할 수 없는 문화산업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편향적 경제 잣대만으로 '국익론'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스스로 근시안적이라는 것을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정부가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면서까지 체결하려는 '한미FTA'가 과연 우리에게 이득만을 주는 것인지도 면밀하게 따져야 한다. 당장 농업과 금융산업, 서비스업 분야 등은 막대한 피해가 예고되고 있다.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한 충분한 사전 설명이나 협의 없이 기습적으로 미국과 합의부터 하는 비민주적인 행태를 보인 것 역시 유감스럽다. 특히 지난 해 '문화다양성 협약'을 맺었음에도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에 굴복해 스스로 스크린쿼터의 축소를 약속해 버린 것 역시 문화적 자존심과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저버린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우리 영화가 경쟁력을 갖췄다는 정부의 판단도 안이하다. 우리의 영화산업이 지난 몇 년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영화계는 소수 거대자본의 출현으로 구조조정이 벌어지고 있으며, 영화산업의 기반도 취약한 실정이다. 과연 정부가 영화산업의 이런 구조적인 문제들을 면밀하게 검토했는지 의문이다.
스크린쿼터 축소에 따른 영화산업의 타격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임에도 일부 언론은 근시안적 경제논리 중심의 '국익론'과 일부 영화의 반짝 성공을 내세워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하는 영화인들을 '이기주의'로 몰아가고 있다. 특히 일부 신문은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발표 이전부터 이 같은 여론몰이에 앞장섰다. 의제설정에 있어서 균형을 잡아주어야 할 방송도 나열식보도로 사안의 본질을 짚어주지 못했으며, 심지어 일부 보도에서는 '한국영화의 경쟁력 향상으로 스크린쿼터 축소도 가능하다'는 식의 주장을 싣는 등 일부 신문의 의제설정을 쫓아가는 모습마저 보였다.
중앙일보는 한미FTA 체결이 곧 '국익'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노골적으로 '스크린쿼터 유지'를 영화계 '이기주의'로 몰아갔다. 또 중앙은 우리 영화의 경쟁력이 향상되어 스크린쿼터가 축소되어도 영화계에 큰 타격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부각했다.
중앙은 사설 <스크린쿼터, 한미FTA 발목 잡아선 안돼>(1.21)에서 한미FTA가 "경제적 이익만이 아니라 외교·안보 측면에서도 국익에 도움이 된다"며 "군사동맹 수준에 머물던 양국 관계를 정치·경제·군사를 아우르는 한 차원 높은 포괄적 동맹 관계로 발전시킬 계기"라고 주장했다. 중앙은 우리 영화계의 경쟁력을 부각하며 "나라 전체의 입장에서 볼때 영화계만의 이익에 매달려서는 안된다"며 "스크린쿼터에 발목이 잡혀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은 <영화계 큰 타격 없을 듯…국익 위해 불가피>(1.27)에서도 다시 '국익론'을 내세웠다.
또 <스크린쿼터 146→73일 7월부터 축소>에서는 네티즌의 여론이 찬성으로 돌아서고 있다며 "응답자의 61.6%가 (스크린쿼터 축소에)찬성했다"(다음), "응답자 3,088명 가운데 73.64%가 (스크린쿼터를 축소해도)'별 차이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네이버)라며 조사결과의 정확성이 떨어지는 포털사이트들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스크린쿼터 축소 지지여론이 높은 것처럼 여론을 호도했다.
동아일보도 우리 영화가 국제적 경쟁력을 갖췄다는 점을 부각하며 영화계의 협조를 촉구했다. 하지만, '스크린쿼터 유지=영화계의 이기주의'라는 식의 정부논리는 비판했다.
동아는 사설 <한미 자유무역협정 꼭 체결해야 한다>(1.28)에서 한미FTA의 긍정적인 면을 적극적으로 언급하며 협정 체결을 촉구했다.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해서는 "국내 영화산업은 이미 상당한 경쟁력을 갖췄고 정부가 영화산업 지원대책도 내놓았으니 영화업계도 전체 국익을 위한 FTA 추진에 협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동아는 <기자의 눈/스크린쿼터 사수가 '집단이기'인가>(1.23)에서 스크린쿼터 축소를 "한국경제를 위해 '대문을 막고 쪽문만 여는' 어려운 결단"이라고 추켜세우고 "스크린쿼터 축소가 왜 불가피한지, 그 대안은 무엇인지를 먼저 설득하는 것이 순리"라며 '영화계 이기주의' 운운했던 정부 당국자의 행태를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한미FTA가 성사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목소리를 높였으나, '스크린쿼터'와 관련해서는 정부와 영화계의 주장을 보도하는데 그쳤으며 구체적인 입장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른 신문들에 비해 보도량도 적었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등은 '한미FTA체결=국익'으로 당연시하는 한편, '스크린쿼터 축소'는 영화계만의 문제인 것처럼 사안의 중요성을 축소시켰다. 반면 경향과 한겨레신문은 '스크린쿼터 축소'가 영화산업뿐만 아니라 문화 전체의 문제라는 것을 분명하게 지적해 차이를 보였다.
경향신문은 스크린쿼터 축소 합의에 대해 '굴욕적 협상'이라고 비판했다. 또 기사에서 미국과 캐나다 등 해외사례를 통해 FTA 체결에서 문화분야를 예외로 인정한 사실을 지적했다.
사설 <'문화다양성'에 어긋나는 스크린쿼터 축소>(1.27)에서는 "종합예술인 영화를 무역자유화의 틀에 매어놓아야 하는지 의아하다", "한국영화는 르네상스 운운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취약점이 많다"며 '한국영화 발전의 보호막'인 스크린쿼터의 축소가 오히려 '한류'와 한국영화의 성장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스크린쿼터 축소는 "세계적인 문화다양성 흐름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한겨레신문 역시 스크린쿼터 축소가 '굴욕적'이며 영화계와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한겨레는 사설 <스크린쿼터 축소, 자존심도 신뢰도 버렸다>(1.27)에서 "문화다양성 협약 채택 석 달만에 자국 문화를 보호·육성하려는 세계인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고 신뢰를 짓밟은 것"이라며 "비밀리에 미국과 합의해 놓고, 문화계와의 협의를 들먹였다"고 비판하며 "합의 철회를 위해 노력하는 게 온당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또 스크린쿼터 축소로 영화산업 전체가 위축될 것을 우려했다.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사수대회와 관련해서도 중앙, 조선, 경향은 관련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으나 한겨레는 9일 1면에 시위 사진을 실고, 2면에 <"영화인 밥그릇 아닌 문화주권지키기 싸움">이라는 제목으로 이날 행사를 보도해 관심의 차이를 드러냈다.
한편 방송보도는 나열식 보도행태로 문제를 드러냈다. 방송은 스크린쿼터 축소를 주장하는 정부와 이에 반대하는 영화계의 주장을 단순 중계하는데 그쳤다. 특히 일부 보도에서는 면밀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한국영화가 경쟁력을 획득해서 스크린쿼터 축소도 가능하다'는 식의 일방적 주장을 보도해 일부 신문과 정부의 여론몰이에 편승하는 듯 한 행태마저 보였다.
SBS는 스크린쿼터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비교적 자세하게 보도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스크린쿼터 축소 주장에도 힘을 싣는 등 혼란스러운 보도행태를 보였다.
SBS는 <"아직은 안된다">(1.26)에서 스크린쿼터의 의미와 해외 사례 등을 소개하는 한편, 스크린쿼터를 줄이는 것이 반문화적이며, 할리우드의 덤핑공세를 당할 수 없고, 영화계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남아 있다며 스크린쿼터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있게 보도했다. <제작중단>(2.8)에서도 영화인들의 시위를 보도하며, 문광부 산하단체인 영진위도 스크린쿼터 축소를 우려하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TV칼럼-FTA"냉철하게 보자">에서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는 미국의 영화시장 독과점 문제, 영화산업의 특수성, 한미FTA 국익론 주장의 허구성 등을 제시하며 스크린쿼터 축소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SBS는 27일 "일부에서는 영화계도 이번을 계기로 한국영화의 자생력을 한 단계 더 키워 무한경쟁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며 스크린쿼터 축소 주장을 보도하기도 했다. 특히 <"받아들여야">(2.3)에서는 스크린쿼터에 대한 여론조사를 보도하며 문제를 드러냈다. SBS는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여론이 54.1%로 과반을 넘겼으며, 찬성여론은 42.1%로 나타났음에도 "찬성보다 (반대여론이) 조금 많았다"고 멘트 했으며, 향후 스크린쿼터의 바람직한 처리방향에 대해서는 '정부결정 수용 및 대안모색'(62.9%), '정부결정 철회'(24.9%), '축소에서 폐지로 확대'(8.1%), 무응답(4.1%)로 '대안모색'을 정부결정 수용과 함께 분류해 기준에서 문제를 드러냈다.
KBS는 정부와 영화계의 입장을 나열하거나 갈등으로 보도해 스크린쿼터 문제를 영화계만의 문제로 국한시켰으며, 일부 보도에서는 면밀한 분석 없이 '스크린쿼터 축소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KBS는 <"4천억지원""졸속">(1.27)에서는 정부의 영화계 지원책 발표와 이를 비판하는 영화계의 목소리를 전하며 이를 "정부와 영화계가 정면대결로 치닫고 있다", "정부와 영화계의 충돌은 설 연휴 이후 한층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는 등 양측의 갈등으로 몰아갔다. 영화인들의 시위를 보도한 2월 8일 '뉴스라인' <영화인들 거리로>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이 보도에서 KBS는 스타들을 구경하러 나온 시민들의 모습을 언급하며, 정작 시민들은 "스크린쿼터가 뭔지 잘 모른다"며 그 사례로 "좋아하는 스타를 보러 왔다"는 한 중학생의 인터뷰를 실어, 스크린쿼터 축소가 영화인들만의 문제인 것처럼 보도했다.
26일 <강력 반발>에서는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에 대해 "영화계는 반문화적 쿠데타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고 영화계의 반대 목소리를 전하면서도 "지난 1999년 영화계 인사들이 대거 삭발을 하며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할 때와는 조금 다른 목소리도 있다. 한국 영화의 점유율이 50%가 넘는 만큼 보호의 빗장을 굳게 닫고만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을 보도했다.
MBC는 정부와 영화계의 입장뿐만 아니라 각계입장, 시민들의 여론을 나열식으로 보도했다.
MBC는 26일 <"반문화적 쿠데타">에서는 미국의 통상압력에 굴복한 것이며, 문화분야 만큼은 FTA에서도 예외를 인정해 온 국제관례에 어긋난다는 등 영화계의 목소리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그러나 "우리 영화가 경쟁력을 어느 정도 갖춘 만큼 냉정하게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며 반대여론을 보도하기도 했다.
<한국영화 강세>(1.27)에서는 '왕의 남자'와 '투사부일체' 등 우리 영화의 강세 현상을 보도하며 "관객들은 스크린쿼터 축소를 우려하면서도 한국영화가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자신감도 보였다"며 일반 시민들의 찬반양론을 나열했다. 또 <장동건 1인시위>(2.6)에서도 MBC는 장동건씨의 일인시위를 보도하며 스크린쿼터에 대한 시민들의 각기 다른 반응을 보도했다.
반면 27일 <4천억 지원>에서 MBC는 정부의 영화계 지원 대책에 대해 입장료의 5%를 기금으로 돌리는 것은 결국 부담이 소비자에게 전가되며, 영화제작사와 극장 간의 수익률 조정 역시 법적 강제장치가 없고, 예술영화 전용관을 늘리는 것 역시 '영화제작 활성화'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사안을 비교적 면밀하게 분석해 다른 보도와 차이를 보였다.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 주장은 단순히 영화계만의 요구가 아니다. 바로 우리나라의 영화산업, 더 나아가 문화산업 전반을 지키기 위한 것이며, 이를 언론이 제대로 분석하고 보도하는 것이야 말로 '국익'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 언론은 이를 '정부와 영화계'만의 갈등으로 보도하며 '영화계의 이기주의'로 매도해 여론을 호도했다. 그라고 나열식 보도로 본질을 흐리거나, 영화계만의 문제로 국한시키려는 보도행태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시위 보도에 있어서는 영화인 스타들이 왜 시위를 하는지에 대한 근거보다는 '1인스타'에 열광하는 시민들의 반응을 부각시킨 주객이 전도된 보도태도를 보였다.
또한 영화산업 전체의 면밀한 분석 없이 일부 영화의 '반짝 흥행'을 근거로 '한국영화가 경쟁력을 확보해서 스크린쿼터를 축소해도 된다'는 식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데 앞장서고 있으며, 이 같은 여론몰이에 방송마저 쫓아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언론은 지금이라도 피상적인 '국익론'과 '한국영화 경쟁력 확보' 주장에서 벗어나 스크린쿼터 축소가 향후 영화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분석해 보도하라. 특히 방송은 면밀한 분석보도로 한쪽으로 기울어진 여론시장의 균형을 맞추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끝>
2006년 2월 9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