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故 전용철 농민 관련 방송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5.11.30)
억울한 농민죽음, '가슴'으로 보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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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5일 여의도에서 열린 '쌀협상국회비준저지 전국농민대회'에 참가했다 경찰의 폭력진압 과정에서 쓰러진 농민 전용철씨가 24일 세상을 떠났다. 경찰은 집회를 마친 전용철씨가 "집 앞에서 쓰러져 머리를 다쳤다"고 주장하는 등 전용철씨의 사인을 왜곡, 은폐하려했지만, 27일 '농업의 근본적 회생과 고 전용철 농민 살해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가 시위현장에서 정신을 잃고 농민들에게 들려 옮겨지는 전용철씨의 모습이 담긴 현장사진을 공개하면서 전씨가 시위진압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사망에 이르게 됐음이 사실상 확인되었다. 또 28일 허준영 경찰청장이 경찰에서 확보한 전용철씨의 시위현장 사진이 있음을 밝히면서 "시위현장에서 불상사가 생긴 것 같다"며 '전씨의 사망원인'이 시위현장에 있다는 것을 시인해 이번 사건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방송들은 지난 15일 농민대회 이후 경찰에 대해 진지한 비판을 하지 않았다. 그저 '폭력시위의 책임을 경찰과 농민이 서로 떠넘기고 있다'는 식으로 접근할 뿐이었다. 그리고 전용철씨가 사망한 이후 사인을 놓고 경찰이 거짓말을 하며 사건을 축소시키려 하는 동안에도 방송보도는 진실규명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 비판을 받고 있다.
사인규명 위한 취재노력 없어
24일 방송3사는 일제히 전씨의 사망소식을 보도하긴 했지만 모두 쌀협상 국회 비준안 통과에 분노한 농민들이 분신을 시도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KBS), "과잉진압 논란이 일고 있다"(SBS), "경찰은 전씨의 사망원인을 단정하기 어렵다며 부검을 통해 진상을 밝히겠다고 말했다"(MBC)는 식으로 간단하게 다루는데 그쳤다.
25일도 마찬가지였다.
KBS는 '국과수에서 전씨가 머리 뒷부분을 땅이나 벽에 부딪히면서 두개골이 골절돼 사망했다고 부검 소견을 밝힌 것'에 대해 농민들은 "경찰이 시위를 진압할 때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며 "사인을 놓고 경찰과 농민의 주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시신 운구행렬이 경찰과 충돌했다"며 "시신을 서울로 옮기겠다는 농민들과 빈소를 서울에 차리는 것을 반대하는 경찰이 맞선 것"이라는 사실을 전하면서도 단지 '우여곡절'로만 표현하고 '충돌'로만 다룰 뿐, 뚜렷한 이유 없이 시신까지 막아 나서는 경찰의 행태에 대한 비판은 하지 않았다.
SBS는 "사망원인을 놓고 경찰 탓이냐, 본인실수냐,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며 '자기 혼자 넘어져서 다친 것'이라며 경찰이 내세운 '본인실수' 여부까지 거론해 관련자들을 실망시켰다.
MBC는 좀 달랐다. "사망원인이 넘어지면서 머리가 부딪힌 것이라 부검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전농측은 경찰의 가격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재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고 양측의 주장을 나열하긴 했지만, 시위현장에서 전용철씨가 부상을 입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봤던 목격자의 증언을 소개하고 "전씨의 가슴과 머리에 외부 충격에 의한 멍이 있었다며 폭행에 의한 사망 가능성을 제기했다"며 부검에 참여한 인의협(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측 의사의 소견을 내보내어 타방송사와 차별성을 보였다.
한편 26일에는 전용철씨의 죽음을 추모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촛불문화제가 경찰의 봉쇄 속에서도 천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광화문에서 열렸지만 KBS는 이를 전혀 다루지도 않았고, SBS와 MBC는 단신보도하는데 그쳤다. 반면 이날 노무현대통령이 '쌀박람회'를 관람했다는 소식은 3사가 모두 다뤘다. 단신으로 다룬 KBS와 MBC는 각각 "노무현 대통령은 밥을 시식한 뒤 '밥맛이 참 꿀맛'이라고 소감을 밝혔으며 쌀 비준동의안 통과 이후의 대책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쌀박람회에서 고품질쌀로 지은 밥을 시식하고 매우 맛있다며 농민들을 격려했다"고 보도했고, SBS는 리포트로 "노 대통령은 반찬도 없이 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운 뒤 연신 맛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노 대통령은 우리 농가의 경쟁력을 높여 줄 쌀 가공식품을 맛본 뒤, '농민들이 큰 일을 해낼 것 같다'면서 강한 기대감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쌀협상 비준 저지를 요구한 농민의 죽음을 규명하자는 목소리는 외면하면서 '밥이 맛있다', '반찬도 없이 밥을 다 비웠다'는 대통령의 사소한 말과 동정은 강조·보도해 균형감각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농민을 죽음으로까지 내몬 경찰 폭력에 비판없어
27일은 범대위가 전용철씨가 정신을 잃고 들려나가는 모습이 담긴 15일의 현장사진을 공개한 날이다. '집 앞에서 쓰러져 머리를 다쳤다'는 그 동안의 경찰 주장을 반박하는 명백한 증거가 나타나 경찰의 '폭력진압' 여부를 규명해야 마땅함에도 방송3사의 관련보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KBS는 이날도 단신으로 "국과수 발표에 이의를 제기했다", "목격자와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는 정도를 보도하는데 그쳤으며, 공개된 사진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SBS는 "전용철씨가 의식을 잃은 듯한 모습으로 동료 농민들에게 의해 옮겨진다"며 현장사진을 보여주고 '전용철씨가 경찰의 폭력으로 넘어지고, 쓰러진 뒤에도 방패와 진압봉에 맞았다'는 목격자의 증언을 소개했고 이후 기자 리포트로는 "농민들은 당시 경찰의 폭력이 있었다고 주장", "국과수의 부검결과가 잘못됐다고 주장", "머리를 맞아 뇌출혈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 등을 했다고 보도했다.
MBC도 사진과 목격자의 증언을 보도하고 "당시 곁에 있었던 배검씨는 경찰이 진압용 방패로 전용철씨의 얼굴을 때리는 것을 분명히 봤다고 주장했다"며 '주장'을 소개했지만, SBS보다 목격자의 증언에 보다 무게를 실었다. 국과수 부검결과에 대한 반박에 대해서도 "인의협도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며 "알 수 있는 사인은 머리에 가해진 충격으로 인한 뇌출혈일 뿐이라며 그 충격이 넘어져 생겼는지 여부는 단정지을 수 없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또 "전농측은 전용철씨의 사망이 경찰의 폭행 때문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진 만큼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며 농민들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하는 등 KBS, SBS와는 다른 보도태도를 보였다.
경찰에서 채증했다는 사진이 있음이 알려지고 허준영 경찰청장이 "시위현장에서 불상사가 있었다"고 밝힌 28일부터는 방송보도가 조금씩 달라졌다.
단신으로 일관하던 KBS는 이날 <"조사단 구성하자">라는 꼭지를 내보냈다. 하지만 "사인을 놓고 농민과 경찰 사이에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며 이번 사안을 계속해서 '논란'으로 치부했고, "쓰러져 있는 전씨 사진을 놓고도 양측의 말이 다르고 조사단 구성 문제에도 견해차가 크다"며 경찰과 범대위를 같은 비중으로 놓고 '엇갈리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허청장의 발언에 대해서도 "전씨가 시위 때 쓰러졌음을 인정하면서도 전씨가 당시 시위대 뒤쪽에 있었던 만큼,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 때문에 쓰러지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며 허청장의 '주장'을 상세히 전했지만, '눈감고 아웅'하는 식의 경찰 발표에 대한 비판은 찾아볼 수 없었다.
SBS는 이날 <뒤늦게 공개>에서 "경찰이 뒤늦게 시위현장에서 쓰러진 채 찍힌 사진 넉 장을 공개했다"며 "이런 사진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요? 아니면 알고도 감췄던 것일까요?"라고 경찰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전 보도에서 '주장'으로 다루던 내용에 대해서도 이날은 "경찰의 강경 진압을 규탄했다", "네개 종교 인권위도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고 보도하는 등 범대위측 주장에 무게를 싣는 것으로 보였다.
한편 MBC는 전용철씨가 머리를 떨군 채 들려나가는 모습이 자사 카메라에 포착됐다며 촬영된 화면을 공개했다. 27일 범대위에서 공개한 사진과 거의 비슷한 내용이지만 급박하게 옮겨지는 모습이 담긴 영상은 그 날의 정황과 전씨의 부상 정도를 시청자들이 보다 분명히 확인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경찰은 전씨가 반듯한 상태로 쓰러져 있었으며 폭행당한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고 밝혔다"며 설득력없는 경찰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소개했다. "현장에서 불상사가 난 것은 분명해 보인다"는 허청장의 말도 소개했지만 경찰이 여의도 집회장소를 침탈한 직후 부상당해 들려나가는 전씨의 모습이 자사카메라에서까지 확인되는 등 앞뒤 관계가 분명해졌음에도 경찰의 폭력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진상 및 책임 규명에 방송 적극적으로 나서야
사실 그 동안 시위현장에서 발생한 경찰의 과도한 '폭력적 진압' 행태는 한 두 번 제기된 문제가 아니다.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됐던 2001년 부평대우자동차 해고노동자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행사와 부안 방폐장 저지투쟁에 대한 경찰의 폭력진압 뿐만 아니라 최근에만 하더라도 하이닉스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현장에서 발생한 경찰의 폭력, 지난 7월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 당시 지휘관이 폭력진압을 선동하기까지 한 일 등 사람만 죽지 않았을 뿐 경찰의 과잉폭력진압으로 인한 '불상사'는 비일비재했다. 농민시위만 하더라도 해마다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부상자가 속출하다 이번 11월 15일에는 급기야 사람이 죽는 일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특히 '1001', '1002', '1003' 중대로 불리는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기동단'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백골단'에 비견될 만큼 '악명'이 높으며 이들 부대 스스로 '백골단을 이어받았다'며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방송보도들은 시위현장에서 발생하는 경찰의 폭력행위를 비판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 전용철씨가 시위 도중 경찰의 폭력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 사실이 명백해졌음에도 방송들은 이렇다 할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 동안 방송은 '쌀협상 국회비준 철회'와 '농산물 수입개방을 반대'하는 농민들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정부와 재계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보도하기 바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시대적 대세가 된 만큼 방송이 이후 대책마련에 대해서라도 차분하고 냉정하게 모색하는데 나서주길 바랬지만 이 정도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농민의 죽음에 대해서조차 마지못해 다루듯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 사안은 결코 간단하게 지나칠 문제가 아니다. 이는 쌀 비준안 처리 과정에서 일어난 불상사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시위과정에 발생한 사망사건'이다. 만일 국가공권력의 폭력으로 농민이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라면 마땅히 관련 책임자는 응분의 책임을 져야한다. 우리는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고 그 책임을 묻는데 언론이 앞장서야 한다고 본다. 그것만이 이번과 같은 불행한 일이 앞으로 반복되지 않게 하는 일이다. 방송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이라도 다해주길 기대한다.<끝>
2005년 11월 30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