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검찰의 'X파일' 수사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5.8.1)
등록 2013.08.20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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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앞서 '이건희'부터 수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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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대선 과정에서 벌어진 재벌과 권력, 언론의 유착을 폭로한 'X파일'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납득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31일 'X파일'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MBC 이상호 기자에게 8월 1일 중으로 검찰에 출석할 것을 통보했다. 지난해 12월 재미교포 박인회씨로부터 'X파일' 테이프를 건네받게 된 과정과 보도 경위 등을 조사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기자가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 받는다고 하면서도 "조사 과정에서 (신분이) 변할 수도 있다"는 말을 했으며, 이 기자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까지 취했다고 한다. 언론들은 이 같은 검찰의 태도가 '이상호 기자가 피의자 신분이 될 수도 있음'을 내비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 기자가 '피의자' 신분이 될 수 있다는 언급은 그가 테이프의 입수 과정에서 '부당한 거래'를 했다는 추정에서 나온 것이다.


검찰의 수사가 불법도청 문제와 테이프의 유출에 대해서만 이뤄지고 있는 데 대해 우리는 그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수사를 시작한 지 3일 만에 '신분 변화 가능성' 운운하면서 이상호 기자부터 조사하겠다고 나선 것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은 가장 먼저 테이프 제작 과정의 불법성을 부각시키고 테이프의 입수 과정에서 이 기자가 '부당한 거래'를 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부터 흘림으로써, 문제의 테이프가 담고 있는 추악한 유착의 실상들로부터 국민의 눈을 떼어놓겠다는 얕은 수를 쓰는 게 아닌가?
우리도 불법도청의 진상이 철저하게 규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불법도청을 했는지, 불법으로 도청된 자료들은 어떻게 악용되었는지, 이 같은 범죄행위의 정점에 누가 있는지 등을 명명백백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불법도청만 수사하고 테이프가 폭로한 권력과 자본, 거대언론 사이의 추악한 거래를 덮고 가서는 안된다. 지난 28일 우리 회를 비롯한 17개 시민사회단체들은 검찰의 수사가 자칫 불법도청 문제로만 흐를 것을 우려, 테이프 녹취록에 드러난 불법행위의 사실관계부터 먼저 규명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X파일' 테이프가 담고 있는 권력-자본-언론의 유착 실상을 밝히는 것이야말로 정권안보를 위해 '불법도청'을 저지르고, 불법도청으로 얻어진 자료가 다시 추악한 유착관계를 지탱시키는 '통치수단'으로 악용되는 구태를 뿌리 뽑는 길이다.
검찰이 이를 외면한 채 유착을 폭로한 기자부터 불러다 놓고 테이프의 입수 과정이 정당했는가 따지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물타기' 하는 꼴이다.


검찰이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X파일'을 통해 드러난 불법과 비리에 대해 철저한 수사 의지를 밝히는 일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지금 274개의 테이프와 녹취록에 대한 '정밀분석', 공씨를 대상으로 한 도청테이프의 제작 경위와 보관 방법, 유출 경위 조사, 이 기자에 대한 조사 등 불법도청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검찰이 'X파일'의 진상규명에 의지를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추가로 압수된 274개 도청테이프와 13권의 녹취보고서의 공개 여부를 놓고 비생산적인 논란이 증폭됨으로써 '불법도청' 의제만 부각되는 현상도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안기부 '미림' 팀장이었던 공운영씨가 숨겨둔 도청테이프들에 대해서도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고, 국민들은 그 가운데 중대한 사안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공개할 것인지 등 처리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 따라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문제는 그에 맞는 과정을 거쳐 풀어가되, 이미 공개된 불법과 비리에 대해서는 이를 단서로 지체없이 수사에 나서 그 진상을 밝혀야 한다.
지금이라도 검찰은 홍석현, 이학수, 이건희 등 'X파일' 테이프의 진짜 주인공들부터 소환해 수사해야 한다. 이들에 대한 수사 없이 이상호 기자 등을 소환 조사하겠다는 것은 검찰이 뒤가 구려 권력-재벌-언론-검찰 유착의 검은 커넥션을 보호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오늘(1일) 한겨레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대부분의 국민(85.2%)들이 'X파일' 테이프에 담긴 위법 내용을 수사해야 한다고 답했다. 검찰은 이와 같은 국민의 뜻을 거스르면서 도대체 누구를 보호하려는 것인가? <끝>

 

 
2005년 8월 1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